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갑작스런 질환으로 돌아가셨다. 그렇게 젊고 활력 넘치던 사람도 갑자기 이 세상에서 사라질 수 있음을 너무 일찍 알아 버렸다. 죽는 데에는 순서가 없다는 상식 정도는 그 나이에도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생각과 상상의 영역일 뿐 급작스런 죽음이 내게도 닥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은 미처 알지 못했다. 믿을 수 없는 아버지의 죽음을 서서히 현실로 느끼고 점차로 커지는 슬픔을 먹고 자라며 나는 툭하면 잘 우는 사람이 되었다. 그리고 어린 나이에 한 다짐, ‘나는 내일 죽을 수도 있으므로 오늘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아야 한다.’ 비장한 다짐이었지만 실제로 하고 싶은 것만 하며 살지는 못했다. 가족으로서의 의무와 주변의 기대와 미래에 대한 내 자신의 욕망에 의해 하기 싫은 일이지만 하고 싶은 일이라고 자신을 속이기도 하고, 어쩔 수 없다고 체념하기도 하고, 나중에 하자고 자신과 타협하기도 하며 살았다. 그래도 언제나 선택 앞에서는 주문처럼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네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이야?’
덕분에 변변히 이룬 것 하나 없는 삶이긴 해도 살아오면서 큰 후회는 없었고 지금 죽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다 아이를 낳게 됐는데 그 뒤로 좀 곤란해졌다. 내가 아무 때나 죽어도 되는 사람이면 안 되게 된 것이다. 나에게 의지하는 아이가 있었고 내가 죽어도 이 아이는 살아가겠지만 그래도 내가 있어야 이 아이의 삶이 덜 불안할텐데 하는 생각을 하니 ‘지금 죽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을 해도 되나 싶었다. 아이는 입버릇처럼 자기보다 하루만 더 살라고 얘기를 한다. 엄마 없는 삶을 상상하는 것이 두렵단다.
그러다 비행기 사고를 당했다.
죽음이 닥쳐오는 순간에는 지난 세월이 영화 필름처럼 휘리릭 지나간다고 하길래 비행기가 수직으로 하강하는 순간에 나는 ‘아, 나에게도 필름 재생의 순간이 오는구나!’하며 과연 어떤 장면들이 간택될 것인가 약간의 기대를 품었지만 그런 일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 주변에 당황한 승객들과 떠는 아이의 모습만이 눈에 들어왔을 뿐이다. 와중에 핸드폰에 메시지를 남기는 사람을 보면서도 ‘으이구, 저거 물에 빠지면 어차피 쓸모없는 행동일 텐데…….' 하면서 쯧쯧거리기만 했다. 필름은? 필름은 왜 안 돌아가는 건데? 그 순간 당황스러우면서도 ’어쩌면 내가 오늘 죽는 게 아닌가보다.‘라는 생각도 스쳤다.
그 위급한 순간에 오히려 차분한 마음이 들었던 이유를 지난 후에 생각해보니 아이와 함꼐 타고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죽어도 아이와 같이 죽는다는 생각이 내게 안도감을 줬다.
아마 혼자 비행기를 탔다면 내가 먼저 죽고 남겨지는 아이가 못 잊혀서 괴롭고 힘들었을 것이다. 아이가 나보다 먼저 죽는 것은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뜯기는 일이라 그 또한 죽는 것보다 더 괴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죽거나 살거나 아이와 함께라고 생각하니 아이가 생을 더 이어가지 못하는 것이 가슴 아프기는 해도 함께 가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을까.
이 일을 겪으면서 알았다. 나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많이 힘들었나 보다. 먼저 떠나는 아빠도 떠나는 길이 무척 힘들었을 거라는 걸 알겠고, 남겨진 가족들이 얼마나 정신적으로 힘들었는지는 내가 겪어봤기에 안다. 내 아이가 그런 힘듦을 겪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숨어 있다가 비행기 사고의 순간에 같이 떠나서 다행이라는 마음을 먹게 했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무사히 비행기 바퀴가 땅에 닿는 순간 안도의 숨과 동시에 내가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밀려왔다. 비행기가 필리핀 클락 공항으로 돌아갔기에 집에 오려면 어찌됐든 한번은 귀국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다시 비행기를 탄다는 생각만으로도 소름이 돋았다. 필리핀에서 배를 타고 한국으로 오는 방법은 없을까 찾아봤지만, 배편도 없을뿐더러 있다 해도 경비도 시간도 어마할 일일 것이다. 친구네 집으로 돌아가 친구가 준 수면제를 먹고 간신히 몇 시간 눈을 붙인 뒤 다음날 공항으로 가서 다시 비행기에 올랐다. 함께 탄 승객 중 어제 같이 사고를 겪었던 사람들의 얼굴에 나와 같은 긴장감이 배어 있었다. 비행기에 들어서자마자 비행기 시트 색깔이 다른 것을 보고 안도하는 내 마음과 똑같았는지 뒤에 선 승객이 ”와, 다른 비행기다! 다행이다!“라고 외쳤다. 다시 비행기를 탄다고 무서워하던 아이는 피곤한지 바로 잠이 들어 착륙할 때야 깨어 무사히 비행을 마칠 수 있었다.
이후로도 우리는 약간의 외상 후 스트레스를 겪었는데 그건 ”띵!“소리에 화들짝 반응하는 행동이다. 건물 1층에 서 있다가 도착하는 엘리베이터가 내는 ”띵“소리에 둘이 깜짝 놀라 몸을 딱지처럼 뒤짚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 소리가 비행기에서 기류 변화 때 내는 경고음하고 비슷했기 때문이다. 자가용에서 밸트를 안 매서, 문이 덜 닫혀서 띵 소리가 날 때도 우리 둘은 깜짝깜짝 놀란다. 그리고 서로를 보곤 웃는다.
그럼 귀국한 이후에 우리는 다시 비행기를 안 타게 됐을까? 이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면 평생 해외여행을 못 하고 살 거라는 생각에 바로 몇 달 뒤 아이와 나는 다시 비행기를 탔다. 약간의 긴장감을 도착할 때까지 안고. 나의 경우 잠 한 숨 못 자긴 했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다시 비행기를 탈 수 있었다.
국내 텔레비전 뉴스에도 보도됐던 이 사건을 겪은 후 죽을 뻔한 경험이 나에게 남긴 것은 역시 비슷하다. 언제 죽을지 모르니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한 되도록 지금 하고 살자. 가족을 한껏 사랑하며 살자. 그리고 남편아, 너는 알아서 잘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