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이 약하다. 새로운 장소에 가면 항상 화장실 위치를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알게 된 뒤에야 비로소 마음 편히 장소에 집중할 수 있다. 화장실이 더러우면 참고 안 가는 친구들이 많은데 나는 화장실의 위생 상태에 별로 구애를 받지 않는 편이다. 한 번은 대학가 주점 화장실을 이용하게 되었는데 문을 열자마자 괴성과 함께 문을 쳐 닫고 나올 정도의 비위생을 자랑하는 화장실이었다. 나는 코를 막고 조용히 옆에 있는 뚫어뻥으로 막힌 변기를 뚫고 물티슈로 변기를 닦고 바닥에 널브러진 화장지들을 화장지로 주워 쓰레기통에 담고 깨끗해진 화장실을 보고 흡족하게 볼일을 보고 나왔다. 과민성 대장을 가진 자에게 화장실을 가리는 것은 사치다. 화장실을 가리다간 더 엄청난 뒷수습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쌀 수 있는 환경으로 화장실을 만드는 것이 더 현명한 행동이다.
관련하여 나의 또 다른 습관은 카페나 음식점에서 트레이에 담아 준 냅킨이 남았을 때 다시 카운터에 내지 않고 꼭 주머니에 챙겨 넣는 것이다. 냅킨을 챙기는 것은 내 볼일이 급할 때나 더러운 공중 화장실을 청소하기 위해 필요한, 만약의 사태를 위한 준비다. 휴지가 없으면 불안하다. 그래서 내가 입었던 겉옷이나 바지 주머니에는 이런저런 가게의 냅킨들이 항상 뒤섞여 있고 때론 까먹고 옷을 세탁기에 넣었다가 갈가리 찢긴 냅킨을 수많은 빨래 더미에서 일일이 뜯어내며 자신을 저주하는 일이 생기곤 한다.
해외에서 돈을 받는 화장실 앞에서 저지당했을 때의 충격은 잊을 수 없다. 눈앞에 텅 빈 화장실이 있는데 낼 동전이 없다는 이유로 입구에서 제지하자 분노가 폭발하여 수납원을 밀치고 입장하여 불을 끈 후 화장실 칸 안에서 손톱을 뜯으며 어떻게 나가지 전전긍긍했던 쓰라린 경험은 내게 배변할 권리의 평등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돈이 없는 자 싸지도 말라! 는 비윤리적 제도 앞에서 나의 분노는 정당하다고 되뇌면서도 차마 수납원 눈을 마주칠 수 없어 고개를 푹 수그리고 나가자 되려 그는 너 같은 애 가끔 있으니 이해한다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으며 가라는 시늉을 해 나를 더 비참하게 만들었다.
짧은 거리를 갈 때는 대중교통으로 지하철보다 버스를 더 선호한다. 풍경이 보이는 게 좋기 때문이다. 하지만 먼 거리를 갈 때 고속버스와 기차의 선택지가 있다면 나는 가격과 시간을 불문하고 무조건 기차를 탄다. 기차에는 화장실이 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처음 장거리 버스의 화장실을 발견한 것이 내겐 커다란 문화적 충격이었고 화장실 버스의 시급한 국내 도입이 이루어지지 않는 이유가 여전히 궁금한 사람이기도 하다.
같은 이유로 비행기 안에 화장실이 있다는 것이 나에겐 안도감을 준다. 하지만 비행기 화장실은 사용하기에 불편한 점이 몇 가지 있다. 기차처럼 칸막이 문밖에 화장실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 화장실 문 앞에서 기다리다가 들어가야 한다는 점, 칸 수가 많지 않고 남녀 혼용이라는 점, 비상등이 켜질 때는 이용할 수 없다는 점, 배식 트레이가 복도를 막고 있을 때나 식사 중일 때 일어나서 갈 수가 없다는 점, 창가에 앉았을 시 옆 자리 사람을 불편하게 하면서 굳이 화장실 가는 것을 알려야 한다는 점, 한 줄 서기가 잘 안 되기 때문에 안에서 볼 일을 볼 때 내 줄에 선 사람이 자신의 나쁜 운을 탓하기 전에 빨리 나가야 한다는 정신적 압박이 있다는 점 등. 그럼에도 존재만으로 비행기 안의 화장실은 내게 큰 위안이다.
베트남 다낭에서 가족 여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이었다. 당연히 내가 선호하는 좌석은 비행기 복도석이다. 창밖 풍경 따위는 내게 크게 중요하지 않다. 갈 수 있을 때 갈 수 있는 자의 아름다움이 더 시급하니까. 가족 여행이라 옆자리 승객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기에 처음엔 3열의 가운데에 앉아 출발했다. 두 시간 정도 지났을 무렵 알싸한 신호가 감지된다. 밤비행기라 옆에서 곤하게 잠들어 있는 남편을 깨워 자리에서 일어나게 한다. 좌석 틈이 좁아 어쩔 수 없다. 1차 방문을 마쳤지만, 아랫배의 긴장감이 사라지지 않는다. 아예 남편과 자리를 바꿔 앉는다.
그런데 오늘의 느낌은 아주 영 달랐다. 그냥 싸륵거리는 것이 아니라 장을 쥐어짜는 듯한 통증과 함께 식은땀이 줄줄 흐르기 시작했다. 평소 전생이 동남아인이었음이 분명하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 가족은 동남아 음식을 아주 잘 먹을뿐더러 먹고 탈이 난 적도 없다.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귀국 하루 전 아이가 열이 많이 나서 하루 앓아누운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어떤 전조였나? 비행기 타기 직전에 탑승구 앞에서 남은 돈을 턴다고 사 먹은 쌀국수가 문제인가? 아니면 같이 마신 생맥주? 그건 남편도 같이 먹고 마셨는데? 먹은 음식들을 되짚어 생각하며 나의 화장실 방문은 시작되었다. 밤이라 기내 등이 꺼진 상태에서 화장실 문을 열 때마다 밝은 빛이 기내로 쏟아져 화장실 앞자리 사람들은 눈을 찌푸렸다. 세 번째 방문할 때는 화장실 앞자리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데 ‘또 너야?’하는 힐난의 눈빛이 분명했다고 혼자 생각하며 네 번째부터는 옆 라인 화장실을 돌아가서 이용했다.
어느덧 나의 화장실 투어는 맨 뒤 세션에 있는 화장실까지 이어졌고 덮개가 열린 창밖은 푸르스름한 빛을 띠며 새벽을 알리고 있었지만 나의 장은 여전히 암흑 속이었다. 몇 번을 갔는지 세기도 지칠 정도로 나의 들락거림은 계속되었고 똥꼬도 점점 헐어갔다. 기운은 빠질 대로 빠져서 몸을 가누기도 힘들었으며 옷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었다. 그렇게 수차례의 화장실 투어가 이어지던 어느 순간, 두려워하던 일이 발생했다.
띵. 띵. 띵. 벨트 표시등이 켜지고 방송이 시작되었다. 착륙 준비를 한다며 기내의 불이 환하게 켜지고 승무원들이 좌석들을 확인하며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어둠을 틈타 화장실을 꿀벌처럼 분주히 오가던, 그러나 꿀이 아닌 다른 것을 모으던 나는 불이 켜진 것만도 당황스러웠지만 좌석 표시등의 존재가 더 두려웠다. ‘안돼에~~~~~!’ 긴장감에 배가 더 뒤틀리는 기분이었다. 벨트를 찰칵 끄르고 벌떡 일어섰다. 승무원이 제지하기 전에 화장실로 달려가야 했다. 앞쪽에서 다가오는 승무원과 눈이 마주치는 순간 나는 뒤로 몸을 홱 돌려 화장실로 내달렸다. “저, 승객분!?” 승무원의 부름을 뒤로하고 나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변기에 앉는 순간 안전한 곳에 도착했다는 안도감이 나를 감쌌다. 마음은 이미 착륙한 기분이었다. 그때였다.
쾅쾅쾅! “승객분, 나오세요. 착륙 시에는 화장실을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나오세요.”
‘누가 그걸 모르냐고요, 밖에서 죽으나 안에서 죽으나 제겐 별 차이가 없어요. 그냥 날 내버려 둬요!’라고 속으로 외칠뿐 침묵 속에 화장실 변기 옆 봉을 잡고 앉아서 나는 히죽 웃고 있었다. 승무원 한 명이 더 달라붙은 모양이다. 다른 목소리가 내게 나오라고 종용한다. “착륙 시 기내가 흔들리면 화장실은 위험합니다. 나오십시오.” 저는 밖이 더 위험하다고요. 착륙 안내가 나오고 이십 분 정도는 더 허공에 있을 텐데 그 사이에 내 장이 비명을 질러도 두세 번은 더 지를 것이다. 도저히 자리로 돌아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하도 밖에서 문을 두드리자 결국 나는 큰 소리로 외쳤다. “저 그냥 여기 있을게요. 배가 너무 아파요. 꽉 잡고 있을게요.”
기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머리통을 문에 박아가며 내 장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래도 변기 위에 앉아 있는 지금 이 순간이 너무나 안심되었다. 기체가 흔들리는 소리가 요란하니 내 똥꼬가 내보내는 끔찍한 공기압 소리도 덮이는 것 같아 좋았다.
그렇게 착륙과 함께 나에게 고요한 평정의 세계가 다시 찾아왔다. 거짓말같이 비행기가 땅에 닿는 순간 비행 내내 미친 듯이 뒤틀리던 장이 안정을 되찾고 있었다. 더 이상 꾸르륵 소리도 나지 않고 장을 쥐어짜는 느낌도 사라졌다. 땀도 가시고 화이트아웃도 끝나고 이제야 세상이 제 시야를 찾고 선명해졌다. 문을 열고 나오자 비상구에 앉아 있던 승무원이 나를 보면서 기가 막히다는 듯이 웃었다. 곤한 잠에 빠졌던 남편은 내가 세 시간 동안 벌였던 사투는 꿈에도 생각 못한 채 어디 갔다 왔느냐는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나 지옥문 앞까지 갔다 왔어. 으엉엉...’
다낭 여행은 내게 몇 년 만에 충분한 휴식을 주었던 가족 여행의 추억과 땀으로 젖은 옷, 헐은 똥꼬를 선물했다. 그리고 카타르시스(배설의 쾌감)의 진정한 의미를 알게 해 준 문학적 성취도 남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