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부터 함께 해 밤늦게까지 동고동락하는 고3의 담임들은 한 해가 끝나고 나면 다른 학년을 담임했을 때와는 다르게 서로 끈끈한 동지애가 생기는 경우가 많다. 너무 많은 시간을 고립된 느낌으로 함께 하기 때문이다. 물론 그래서 사이가 더 틀어지는 사람들도 생기지만. 고3의 입시 상담이 다 끝난 1월 중순, 고3을 함께 했던 선생님들과 함께 제주도로 해단식을 하러 가게 되었다. 그 당시 나이가 젤 어렸던 나는 가정을 떠나 며칠의 자유를 얻어 신난 선생님들과는 다르게 그다지 흥미가 동하지 않는, 개다가 자비로 떠나야 하는 여행이 썩 내키지 않았지만 그래도 함께 고생한 선생님들과 한 해를 마무리한다는 마음으로 김포공항으로 향했다. 새벽부터 만나 일 년을 보낸 우리는 역시나 새벽부터 공항에 속속 도착해 교무실에서처럼 아침 인사를 반갑게 나누었다. 하늘이 꽤 흐린 날이었다.
친하게 지냈던 같은 국어과 선생님의 얼굴이 어둡다. “샘, 무슨 일 있어요?” 내가 묻자 선생님은 내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나 사실 비행기 처음 타보거든. 왠지 긴장되고 무서워서. 자기는 타 봤어?”
“아, 샘, 수학여행 안 가보셨구나? 고2 담임 해 본 적 없으세요?”
“어, 없어.”
당시에 고등학교 2학년들은 비행기를 타고 수학여행으로 제주도를 많이 가는 추세여서 싫으나 좋으나 고2 담임들은 수많은 꾸러기들을 이끌고 난장이 된 비행기를 정신없이 타 본 경험들이 있다. 비행기를 탄다는 사실 자체에 대한 개인적인 긴장감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애들 단속하기에 바빴기 때문에 첫 비행이어도 탑승에 대한 긴장감을 내비치는 사람들은 없었다. 하지만 처음 하늘 위를 기계 덩어리 하나에 의지해 날아보는 것에 대한 긴장이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해보지 않은 경험을 시도해야 할 때 신체는 본능적으로 방어 기제를 작동시키기 마련이다.
“걱정 마세요. 안 해 봐서 무서운 거지 막상 타 보면 자동차 타는 것보다 오히려 아무 느낌 없을 때가 많아요. 그나저나 첫 비행 축하드립니다!”
땀이 찬 선생님의 손을 잡으며 다른 손으로 손등을 토닥여주자 선생님은 다소 안도한 듯한 표정이 되어 이따가 자기 옆에 꼭 앉으라면서 두려움을 토하지 않으려는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81억 명의 사람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장담하지 말아야 할 것이 내가 옳다는 믿음, 넌 틀렸다는 확신, 비행기는 자동차보다 흔들림이 덜하다는 말이다.
탑승이 시작되자 선생님은 창밖이 보이는 자리는 절대 못 앉겠다고 해서 우리는 가운데 섹션에 앉게 되었다. 안전 교육이 시작될 때부터 선생님의 얼굴에는 이미 말 그대로 핏기가 사라졌다. 가뜩이나 하얀 피부가 창백하다 못해 누렇게 떠서 나는 그제야 선생님이 말했던 무서움이 단지 처음이라 느끼는 긴장 정도가 아니라 공포에 가까운 감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스쳤다. 마주 잡은 손에선 스펀지를 짜듯이 땀이 엄청 배어 나와서 내 손까지 흠뻑 젖었다. 드디어 비행기가 활주로에 대기하다가 굉음과 함께 내달리기 시작하자 옆에서 가쁜 호흡이 들리기 시작했다. 반대쪽 손까지 급하게 이쪽에 포개며 숨을 몰아쉬는 선생님의 모습에 나도 같이 긴장이 돼 눈을 감고 숫자에 맞게 들숨날숨을 쉬어 보시라고 하면서 숫자를 세기 시작했는데 선생님에겐 내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것 같았다. 숨소리가 점차 빨라지더니 얼굴이 정말 샛노래졌다. 상승하는 중이라 승무원도 호출하지 못하고 정말 선생님의 숨이 넘어가면 어쩌나 걱정하면서 손만 쥐고 괜찮다고 반복해서 말하는 것밖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1분도 안 되는 그 시간이 어쩜 그리 길게 느껴지던지. 드디어 비행기가 안전 고도에 오르자 호흡의 속도가 조금씩 늦춰지고 나는 다소 안도하며 승무원을 불러 물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런데 그때, 선생님이 다시 내 손을 꼭 잡으며 다른 한쪽 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다. 상황을 직감한 나는 “봉지!” “빨리!”를 외쳤고 승무원의 재빠른 움직임으로 봉지가 도착하는 순간 입을 막은 선생님의 손가락 사이에서 줄줄 물이 흘렀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도 선생님은 민폐를 끼치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손으로 올라오는 토사물을 막아낸 것이다. 승무원의 도움으로 토사물을 정리하고 나서도 선생님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일반적인 멀미려니 생각했는데 탈진해서 얼굴색이 돌아오지 않는 선생님의 모습에 걱정이 슬슬 되기 시작했다. 제주도는 그리 길지 않은 비행시간이면 가는데도 그날은 어찌나 길게 느껴지던지.
창가에 앉은 사람들이 창밖을 다들 내다보는 것을 보니 제주도가 보이는가 싶었다. 비행기는 벨트 사인 등을 켜고 착륙을 준비시켰다. 이제 다 왔다며 걱정 마시라고 선생님께 말하자 선생님도 눈을 감고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아, 근데 하늘은 참 잔인하기도 하시지, 자동차보다 편안하기는 개뿔! 갑자기 기류가 변하면서 비행기가 쑤욱 상승하더니 당황할 겨를도 없이 갑자기 훅 밑으로 수직 하강을 했다. 너무 급작스럽게 큰 낙차를 보이자 다른 승객들의 입에서도 동시에 으악! 하는 비명인지 탄성인지가 터져 나왔다. 한 짐칸의 문이 덜 닫혔는지 휙 열리기까지 했다. 나도 너무 놀라 숨을 들이쉬었다가 고개를 휙 돌려보니 선생님의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비행기 하강보다도 더 무서운 장면이었다. “샘! 샘!” 부르며 몸을 흔드는데 또 한 번의 상승. 아... 젠장! 큰일 났네. 하는 순간도 잠시, 샘의 고개가 갑자기 푹 고꾸라졌다. ‘워메... 이게 뭐여. 이를 어째!’ 나는 승무원 호출 버튼을 계속 누르고 반대편 옆자리 선생님도 놀라 선생님을 흔들며 불러댔다. 선생님을 마구 흔들자 그녀는 잠시 눈을 다시 떠서 우리를 안도하게 했으나 이내 다시 고꾸라졌다. 다행히도 비행기가 바로 착륙을 하고 승무원이 달려왔다. 승무원이 맥을 짚고 몸을 주물러주자 선생님은 이내 깨어났다. 긴장해서 기절한 것 같다고 승무원이 말하며 계속 심장이 빨리 뛰고 상태가 안 좋은 것 같으면 내려서 바로 병원에 가시라고 당부를 했다.
요란한 출발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해단식 여행 내내 제주도의 날씨는 그야말로 급작스런 변화의 연속이었다. 승합차를 타고 가는 30분 동안에도 길을 돌면 비가 눈으로 바뀌고 다시 길을 돌면 해가 내리쬐고 다시 언덕을 오르면 먹구름이 끼더니 우박이 쏟아지고 산 길로 들어서면 옆에서 내리는 눈(제주도에서 옆으로 쏟아지는 눈을 처음 보았다)에 유리창 한쪽이 새하애지며 승합차가 기우뚱거렸다. 정말 어마무시한 바람과 눈과 비였다. 결국 우리는 3박 4일 내내 거의 숙소 실내에서만 머물다가 밥때가 되면 젤 가까운 동네 식당에서 간신히 밥을 대어 먹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오름도 바다도 산도 거의 볼 수 없어서 여기가 제주인지 고3 교무실 안인지 알 수 없는 3일을 보내니 과연 이 팀과 무사히 육지로 돌아갈 수나 있을까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마지막 날 여기저기 끊긴 도로 상황을 라디오로 들어가며 한 시간이면 갈 공항을 몇 시간이 걸려 돌고 돌아 기다시피 공항으로 이동했다. 지나가는 길엔 미끄러져 사고가 난 차들이 군데군데 눈에 띄었다. 우리는 일찍 출발한 덕분에 간신히 시간에 맞춰 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거긴 공항이 아니었다.
공항은 또 다른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30년 만에 내린 폭설이라는 뉴스가 공항 대합실 텔레비전에서 쉼 없이 흘러나오고 대합실은 온종일 결항인 비행기 때문에 제주를 떠나지 못한 수많은 사람으로 가득했다. 오는 내내 화장실을 못 들러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갔더니 줄도 줄이지만 위생 상태가 엉망이었다. 편의점에서 요기라도 하려 했건만 편의점 음식은 이미 동난 지 오랜 듯했고 물도 살 수가 없었다. 고픈 배를 달래며 티켓 창구로 갔더니 여행을 기획한 선생님이 창구 직원과 얘기 중이셨다. 당연히 우리의 항공편도 결항. 문제는 우리가 묵을 숙소도 없을뿐더러 대여한 승합차도 이미 반납했다는 것. 제주가 고향인 선생님이 지인들에게 전화를 돌려 간신히 공항 근처의 허름한 민박을 하나 잡고 우리는 모두 짐을 이고 지고 두툼히 쌓인 눈밭을 한참 걸어 숙소에 가서 쪽잠을 자며 하루를 보냈다.
다음날도 공항 상황은 나아지지 않아서 급한 일로 육지로 가야 하는 사람들의 아우성으로 창구는 이미 싸움터가 되어 있었고 우리도 표가 나올 때까지 무작정 공항에서 대기하라는 소리만 들을 뿐이었다. 공항에 몰려들어 기다리는 사람에게 티켓의 우선권이 주어질 확률이 높기에 우리는 공항 밖을 나가 숙소에서 대기할 수도 없었다.
복잡한 공항에서 내내 서서 기다리자니 다리가 아파왔다. 나는 공항 안을 돌아다니다가 편의점 옆에서 라면 박스를 몇 개 주워왔다. 그걸 그나마 한갓진 화장실 옆 바닥에 깔고 앉아 있으려니 피곤한 와중에도 좀 쉴 수가 있었다. 그때였다. 한 방송국에서 취재를 나왔는지 기자가 혼돈의 카오스가 된 공항 상황에 대한 브리핑을 하더니 “그러면 공항에 발이 묶인 시민을 만나보도록 하겠습니다.”라며 고개를 돌리고 두리번 거라다가 나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이러시면 안 된다고요, 저 지금 꼬락서니가 말이 아니라고요!’라는 마음속 외침을 그가 들었을 리 없다. 화장실 옆 종이 판자 위에 떡진 머리로 앉아 있는, 초라한 행색의 배고프고 지친 사람. 그에게 이 이상 완벽한 인터뷰이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9시 뉴스를 장식하며 공중파에 데뷔했고 친구들에게 전화가 걸려오기 시작했다. 너 맞냐는 전화부터 시작해 출세했다는 전화까지 걱정보다는 폭소를 참는 목소리가 더 많았음은 물론이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데뷔했다는 연예인의 인터뷰를 들을 때마다 ‘에이~ 설마~’ 했었는데 나도 길거리 캐스팅으로 브라운관에 데뷔를 한 후 어떤 소속사의 연락도 없이 고군분투한 제주 출신 선생님 덕분에 그날 밤을 넘기지 않고 비행기를 가까스로 탈 수 있었다.
옆자리 선생님의 긴장이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두 번의 사고가 나지 않기 위해 선생님에게 미리 멀미약이 처방되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잠이 하나도 오지 않는다고 했다. 탑승 전부터 땀이 엄청나게 배어 나오는 손을 연신 닦는 선생님의 핏기 없는 안색을 보자니 다시 비행기를 타셔도 되나 심각하게 걱정이 되었다.
선생님은 평소에 일을 참 잘하신다. 일을 잘한다는 건 다양한 의미가 있다. 선생님은 교사로서 주어진 기본적인 업무뿐만이 아니라 바쁜 와중에도 연구 대회에 계획서를 직접 내셔서 새로운 프로젝트를 따 올 정도로 적극적으로 교사 생활을 하신다. 하지만 그런 점 때문에 선생님이 일을 잘한다고 말하는 건 아니다. 내 일이 아닌 일을 조금이라도 하면 억울하거나 인정받고 싶어서 내가 한 성과를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니는 나와는 다르게 선생님은 조용하고 묵묵하게 모든 일을 한다. 아이들에게도 화 한 번 내는 일 없이 언제나 조곤조곤 차근차근 말씀하신다. 수십 명의 아이를 챙기고 정신없는 공문과 보고 속에서 일을 놓치고 구멍을 내기 십상인 학교라는 북새통의 현장에서 차분하고 꼼꼼한 선생님의 성품은 언제나 나에게 귀감이 되었다.
그런 선생님이기에 자기 통제 불능의 이런 순간이 선생님은 물론이고 지켜보는 나도 당황하게 만들었다. 누구나 취약한 부분이 있다. 어쩌면 항상 완벽했던 사람일수록 스스로를 통제하고 억압하고 긴장하는 일이 많기에 공황에 시달리기 쉬울 수 있다. 비행기라는 공간은 특히나 위기 상황이 닥쳤을 때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는, 무력감을 경험하기 쉬운 공간이다. 터뷸런스를 비롯한 비행기 안의 여러 돌발 상황에 우리가 유독 힘들어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이후로도 비행기를 못 타셨다. 한 번 더 타야 할 순간에 같은 경험을 하셨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일로 인해 나는 선생님을 더 편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모든 게 완벽하기만 해서 빈틈이 없을 것 같은 사람에게서 나와 같은 허당미를 보게 되었다고나 할까. 떨리는 손으로 내 손을 먼저 덥석 붙잡던 선생님의 손이 반갑기도 했다. 손 내밀어 주세요. 잡아 드릴게요. 혼자 다 하려고 하지 마시고요.
거지꼴을 면치 못하고 바닥에서 뒹굴거리던 공항에서 벗어나 높은 하늘로 날아오르면서 선생님의 손을 꼭 잡는다. 우리에게 어떤 공황장애가 온다 해도 손 내밀 옆사람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공간이 나를 압도하는 두려움의 중력을 함께 거슬러 오르기를. 눈보라와 비바람이 가로막아 한 발 더 늦게 가더라도 결국은 원하던 집에 당도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