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너 어디까지 해봤니?

by 운동화

타인의 자랑을 들을 때 당신은 어떤 식으로 반응합니까? 정말 부러워서 호응해주기, 정말 부럽지만 가짜로(좋겠다는 말에 진심이 없음) 호응해주기, 부럽지만 나는 그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인 양 자랑의 가치를 폄하시키기, 부러워 내 신세가 체념이 되면서 우울해지기, 부러워서 주먹을 불끈 쥐고 그처럼 되고 싶어지기 등등…….


타인이 자랑할 때 별로 신경쓰지 않는 사람이 있다. 나 이외의 사람에겐 전혀 관심이 없어서 상대가 무슨 자랑을 하든 제대로 듣지 않는 나르시스트,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라 상대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내겐 의미가 없어서 그가 자랑하는 내용이 부럽지 않은 자기확신이 뚜렷한 사람, 이도 저도 아닌데 부럽지가 않다? 그건 본인에게 화제와 관련해 더 큰 자랑거리가 있는 경우다. 이 마지막 유형의 사람은 상대의 자랑을 가소롭게 듣고 있다가 이야기의 틈이 생겨 자신이 자연스럽게 끼어들 틈을 보느라 내심 초조하게 앉아 있다. 대화를 경청하는 듯 보이지만 머릿속으로는 자기 얘기를 어떻게, 언제 꺼낼까 궁리하느라 골몰해 있는 것이다. 나는 이 세 유형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대부분의 인생을 남을 지속적으로 부러워하면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도 타인이 어떤 자랑을 하든 부럽지 않은 자랑거리가 하나 있다. 바로 세 번째 사람이 되어 전전긍긍 이야기를 꺼낼 타이밍을 엿보는 화젯거리가 나에게도 있는 것이다.


언어적령기 아이가 영어를 배울 때 영어권 환경에 한 해라도 통째로 던져놓는 것이 학원 백날 다니는 것보다 나았다는 선례를 첫째를 통해 우연히 갖게 된 친구는 둘째에게도 효율적인 영어 학습의 기회를 주고 싶다며 필리핀으로 아이 둘을 데리고 유학을 떠났다. 하지만 생활은 생각과 달랐다. 문화가 다른 교민 사회에 잘 녹아들지 못하고 밤마다 우울함과 외로움에 시달리며 자기가 왜 남들이 보기에 극성 엄마가 되어 그깟 영어가 뭐라고 타지에서 외롭게 이러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하던 친구는 통화의 말미에는 언제나 ”그래서 필리핀은 언제 놀러 올 거야?“라며 방문을 재촉했다.


여행을 좋아하는데도 유독 그 해는 움직이는 게 꺼려져서 가봐야지 하면서도 발권을 계속 미루다가 친구가 오면 딱 좋겠다는 날짜(아이들의 학교 방학)에 임박해서야 표를 끊고 아이를 데리고 비행기에 올랐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가 반갑고 좋았는데도 이상하게 기운이 안 나고 흥도 나지 않던 일주일의 여행을 마치고 친구와 잘 지내다 만나자는 포옹을 나눈 뒤 귀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한밤중 출발에 아이도 나도 피곤하고 졸려서 잠깐이라도 눈을 붙이려고 했는데 유독 비행기 안이 추웠다. 저가 항공이라 제공되지 않는 담요까지 승무원에게 요청하여 받아 목까지 끌어 올려 덮고 눈을 감았지만, 냉기는 가시지 않았다. 가방에서 카디건을 꺼내 아이에게 입혀주고 담요까지 덮게 했지만 나도 아이도 추워서 덜덜 떨었다. 워낙 추위를 많이 타는 체질이라 그런가 보다 하고 있었는데 여기저기서 승객들이 승무원에게 담요를 요구했다. 결국 승무원들이 담요가 다 떨어졌다는 답변을 곤혹스럽게 하고 다니게 됐고 승객들은 기내가 왜 이렇게 춥냐며 투덜댔다. 건장하고 열이 많아 보이는 남성들까지 춥다고 몸을 으스스 떠는 모습에 기내가 춥긴 추운가보다 생각하면서 나는 필리핀 상공 위에서 한 치 앞을 모른 채 담요를 덮고는 몸을 오들거렸다.


띵. 띵. 띵. 갑자기 벨트 사인 등이 들어왔다. 비행기를 탈 때 제일 듣기 싫은 소리다. 기류 변화를 예고하는 그 소리는 언제 들어도 머리칼을 곤두서게 하는 긴장감이 배어 있다. 소리와 동시에 기체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 너무 심한데? 싶은 생각을 할 틈도 없이 이제껏 내가 겪어본 경험의 최대치를 뛰어넘는 흔들림이 시작됐다. 승객들의 놀란 비명이 동시에 기내를 채웠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기체의 요동에 딸도 무섭다며 내 손을 움켜 잡았고 나 또한 팔걸이를 그러쥐었다. 기내에서는 승무원도 빨리 자리로 가서 착석하라는 방송이 나왔다. 재빨리 정해진 위치로 돌아가서 앉는 승무원들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비행기가 심하게 앞으로 기울어지기 시작했다. 나를 포함 승객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스피커가 지지직 켜지는 소리가 나더니 공포를 극대화시키는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기내에 요동쳤다. “압력 장치 고장! 압력 장치 고장! 급강하! 승객들 벨트 메세요, 승무원들 벨트 메세요!!!” 어떤 상황이 전개되는지 몰라 어리둥절하다가 숨이 멎을 듯이 외쳐대는 기장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자 아! 정말 큰일 났구나! 라는 자각의 스위치가 켜 지면서 “고장”이라는 두 글자가 고막에 꽂혔다. 그 순간 몸을 얼어붙게 만드는 것이 눈앞에 나타났다. 비행기가 미친 듯이 흔들리는 우당탕탕 소음 속에서 갑자기 타타다닥 푸덕푸덕 소리와 함께 공중에서 떨어진 그것, 오 마이 갓! 산소호흡기였다.


비행기가 이륙 준비를 위해 그아아앙 소리와 함께 석유 냄새를 뿌리며 천천히 활주로로 이동할 때 약간의 긴장감을 담아 응시하게 되는 안전교육 화면에서만 보아왔던 사물, 노란 깔대기 끝에 부실하게 비닐 봉다리 하나가 달린 산소 호흡기. 그 노란 깔대기 수백개가 승객들 자리마다 무수히 폭죽 속의 종이처럼 떨어져 내렸다. 비행기의 흔들림에도 여유롭게 앉아 있던 옆자리 아저씨마저도 호흡기를 보는 순간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다시 기장의 흥분된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터져 나왔다. “빨리 산소 마스크 쓰세요! 마스크 쓰세요!!”


손이 너무 떨려서 산소 호흡기가 매달린 줄을 제대로 잡기도 힘들었다. 화면에서 봐 왔던 대로 경련이 일어나는 손으로 내 머리에 마스크 밴드를 쓰며 아이에게 말했다. “혼자 쓸 수 있어? 엄마 먼저 쓰고 씌워줘야 하는 거 알지? 엄마가 씌워줄게, 기다려! 걱정마!” 말하는데도 손이 덜덜 떨려서 제대로 마스크 밴드를 머리에 끼울 수가 없었다. 정신을 다잡고 얼른 내 머리에 밴드를 쓴 뒤 아이 머리에도 밴드를 씌워줬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마스크를 썼는데도 입에 댄 깔대기 끝의 비닐 봉다리가 부풀지 않았다. 깔대기에 달린 좌우 고무줄 밴드를 당겨 깔대기를 밀착시킨 다음 다시 숨을 쉬니 봉다리가 조금씩 부풀기 시작했다. 아이가 불안에 떠는 목소리로 “엄마, 내 봉지는 안 부풀어!”라고 내 손을 잡고 흔들어 아이 깔대기를 조절해 보았지만, 아이의 봉다리는 부풀지 않았다. 산소 호흡기는 한 열에 좌석 수보다 두어 개가 더 많게 떨어졌기에 나는 얼른 아이의 산소 호흡기를 벗기고 다른 걸 씌웠다. 역시나 잘 부풀지 않았다. 아마도 아이의 호흡이 약했던 데다 긴장되어 숨을 제대로 내쉬지 못해서 그랬던 것 같다. 그래도 아까보다 봉지가 천천히 부풀어 오르는 것이 보여 불량은 아닌가보다 할 뿐이었다. 봉다리가 부풀지 않는 상황은 평소 보던 안내 방송 화면에서는 알려주지 않았던 장면이라 나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다. 그때였다.

“숭무원 승무원!! 내꺼 고장났어! 빨리 와!”

“여기, 여기도 안 돼!”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여기저기서 승객들이 호흡기가 작동을 안 한다고 산소가 안 나온다고 난리를 치기 시작했다. 승무원을 부르는 목소리들이 뒤섞여 기내는 혼란의 도가니가 되었다. 이 와중에도 비행기는 계속 무지막지하게 흔들리며 롤러코스터가 하강하듯이 앞으로 쏠린 채 급강하를 하고 있었다. 그야말로 대환장 파티였다. 승무원들은 자기 자리에 앉은 채로 큰 목소리로 호흡기는 이상이 없을테니 밴드를 끼고 숨을 천천히 쉬면 된다고 외쳤다. 기장의 방송, 승객의 비명, 승무원을 부르는 소리, 중얼중얼 어디엔가 기도를 하는 소리, 핸드폰 메시지를 남기는 소리, 숭무원의 안내 외침, 기체가 흔들리며 내는 우당탕탕 소리, 그 무수한 소리 한가운데에 앉아 흔들리는 의자 팔걸이 위에 얹힌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아이를 바라봤다.


아, 이렇게 죽는구나. 죽음 직전에는 지난 시간이 영화 파노라마처럼 흘러간다는데 왜 나의 영화는 시작이 안 되지? 의아해하다가 신기한 경험을 했다. 내면이 아주 고요해지면서 모든 소음이 내 몸 뒤로 서서히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고요 속에 아이와 나 둘만 앉아 있었고 이렇게 아이와 둘이 갈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미안한 말인지 좋아할 말인지 모르겠지만 함께 오지 않은 남편은 어떻게든 이후에도 잘 살겠지 싶어서 걱정되진 않았다. 아이를 보고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괜찮을 거야. 아이는 덜덜 떨면서도 나를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도 이 장면을 생각하니 눈물이 찔끔 난다.


이 글을 쓰고 있으니 내가 죽지 않은 건 이미 알았을 것이다. 압력 장치가 고장난 비행기는 자동항법장치의 작동으로 압력을 맞춘답시고 급강하하면서 낮은 고도까지 빠른 속도로 내려왔고 기장이 시의적절하게 자동운항에서 수동운전으로 전환하여 비행기를 조정해 안정된 상태를 되찾았다. 비행기는 관제탑의 지시를 기다리며 공중을 선회하다 이륙한지 한 시간여 만에 다시 필리핀 클락 공항에 무사히 착륙했다. 지면에 바퀴가 덜컹하면서 닿는 순간 승객들은 울음을 터트리기도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한동안 침묵 속에 가만히 앉아 있었다. 승무원들은 기내를 돌아다니며 승객들의 상태를 살폈다. 산소 호흡기가 안 되는데 와 보지도 않냐고 소리소리를 지르던 아저씨 여럿에게 승무원이 가서 산소호흡기 상태를 확인했다. 모두 다 역시 작동은 잘 되었다. 고장이 아니라 흥분이 문제였다. 항공사에 근무하는 지인의 말에 의하면 비상시에는 항공법에 따라 승무원도 벨트를 매고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해서 승객이 부른다고 올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한다. 착륙 시 승객들의 대피를 도와야 하므로 승무원들이 흔들리는 기체에서 일어섰다가 다치게 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착륙 뒤에도 비행기 문은 한 시간 넘게 열리지 않았다. 무사히 착륙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사람 마음은 참 간사한 것이라 승객들은 왜 문을 안 열어 주냐며 다시 난동을 피우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이 문을 여는 데 시간이 걸린다고 설명해도 난동이 멈추지 않자 기장이 방송을 했다. 압력 장치가 고장이 났기 때문에 기내와 외부의 압력을 맞추는 기능이 작동하지 않아서 자연스럽게 서서히 기압이 맞춰질 때까지 기다렸다가 문을 열어야지, 안 그러면 문을 여는 순간 승객들의 고막이 다 터진다고 엄포를 놓았다. 그제야 난동을 부리던 승객들도 조용해졌다.


우리 앞자리에는 갓난아이와 단둘이 친정에 다녀오려고 한국으로 가던 선교사의 부인이 앉아 있었는데 아이가 놀라고 갑갑한지 울기 시작했다. 승객들이 짜증 섞인 얼굴로 이쪽을 자꾸 쳐다봤다. 아이 엄마가 아이랑 단둘이 얼마나 무서웠을까를 생각하니 가슴이 오그라드는 기분이었다. 핸드폰을 켜 뽀로로 동요를 틀어주고 가방을 뒤져 사탕을 찾아 작게 쪼개 아이 입에 넣어주니 아이가 울음을 그치고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아이 엄마와 기다리는 동안 집은 어디인지 부모님 나이는 어떻게 되는지 일상을 나누는 대화를 했다. 이 공포와 떨림과 긴장을 잊기 위해 우리는 평소라면 궁금하지도 않을 사소한 이야기들을 원래 알던 친구 사이인 양 시시콜콜 나누었다. 그리고 드디어 문이 열렸다. 후끈한 공기를 들이쉬며 아이의 손을 잡고 비행기 밖으로 발을 내디뎠을 때의 안도감은, 무사히 아이를 낳았을 때만큼이나 컸다.


새벽 차가운 공항 의자에 앉아 항공사의 뒷수습을 기다리는 지루한 몇 시간이 지나는 동안 기다리던 승객들은 지치고 화가 나 다시 소란을 피우기 시작했다. 대체 항공편은 왜 준비가 안 됐는지, 호텔 안내는 왜 안 하는 건지, 기장과 지점장은 나와서 왜 사과를 안 하는 건지부터 시작해 흡연실을 열어달라, 아침은 언제 주냐, 내가 얼마나 바쁜 사람인지 알고 이렇게 묶어 놓냐 등등 기다림에 지친 목소리들이 점점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결국 승객들의 항의에 기장과 승무원들이 불려 나왔고 남자들 몇이 순식간에 달려 나가 기장의 목덜미를 움켜잡고 분노를 표출하기 시작했다. 소규모 항공사라 급작스러운 사고에 대한 일 처리가 부족하고 직원도 없어서 우왕좌왕 하는 상황은 맞았지만, 사람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대기실이 소란해지자 현지 공항경찰들까지 출동해서 곤봉 같은 것들을 들고 소란을 피우면 연행하겠다고 늘어서는 바람에 대기실의 분위기는 긴장감과 살벌함에 숨을 못 쉴 정도가 되었다. 그때 한 아저씨가 일어나서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분, 아무리 바쁘고 화가 나도 우리 예의는 지키면서 기다립시다. 지금 제 옆에 앉아 있는 이 친구는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받고 귀국하는 중이었습니다. 여기서 기다리는 동안 아버지는 결국 운명 하셨고요. 이 친구보다 더 긴급한 사안을 지닌 분이 계십니까? 이 친구도 지금 조용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자, 어떻게 하시겠어요?”


아저씨의 한 마디에 좌중의 소란은 한순간에 가라앉았고 모두 조용히 대기실 밖으로 나가기로 하였다. 기진맥진한 채로 입국장으로 들어온 나는 유리창 안으로 터오는 동을 멍하니 바라보며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응, 잘 도착했어?” 잠기운이 묻어있는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친구에게 울먹이며 말했다.

“나 아직 필리핀이야. 엉엉”


사람들이 모여 터뷸런스에 대한 경험을 무용담으로 자랑할 때마다 나는 가소롭다는 표정으로 좌중을 훑어본다. 그리곤 거들먹거리며 한 마디 툭 던진다.

“여기 산소 호흡기 껴 본 사람 있나?”

모두가 졌다는 낭패의 표정이 되어 나를 쳐다본다. 압도적 자랑거리가 생겼다는 자부심을 느끼며 생각한다. 사람이 죽을 고비를 넘기면 득도하고 깨달음을 얻는다던데 너는 참 아직 멀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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