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아빠가 거의 한 달 동안 제대로 달리지를 못했다. 네가 태어나기 전과 비교하면 아빠도 엄마를 도와서 너를 돌볼 때가 있으니 달리기를 할 틈을 내기가 조금 어려워지기는 했어. 그렇지만, 너 때문에 달리기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은 핑계다. 7월부터는 더위라는 새로운 핑계가 하나 더 늘어서 아빠가 더욱 게을러구나.
우리는 세상에서 어느 정도는 자유롭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것도 많다. 그중에 대표적인 예가 날씨란다. 아빠가 어렸을 때 있었던 일들이 모두 명확하게 기억이 나지는 않아.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소풍 가기 전날에는 제발 비가 오지 않았으면 기도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아빠가 어른이 되어 회사에서 일을 할 때도 비가 오지 않기를 기도한 적이 있어. 야외에서 진행되는 행사는 아무리 열심히 준비하더라도 행사일에 비가 오면 행사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만족시키기는 쉽지 않단다. 올해 여름은 사람들이 지긋지긋하다고 할 만큼 무덥단다. 달리기에도 선선한 날씨에 달리는 것과 비교한다면 쉬지는 않아. 그래도 날씨가 덥기 때문에 도저히 달릴 수 없는 건 아니란다. 누구에게나 달리기에 좋은 날씨가 있을 거야. 그러나 누구에게나 달리기에 완벽한 날씨는 없어.
8월이 되면서 날씨는 더 더워졌다. 아빠는 달리다가 그만두지 않을 방법을 생각하다가 달려서 회사 사무실까지 가기로 했다. 출근은 꼭 해야 하니까, 더워도 포기할 수 없도록 한 거야. 보통은 아빠가 퇴근할 때 노트북을 집으로 가지고 오는데, 전날 회사에서 노트북을 놓아두고 퇴근했어. 또, 집에서 달린 후에 갈아입을 옷과 마실 물 500ml를 트레일 러닝용 배낭에 챙기고 잠자리에 들었어. 원래는 아침 7시에 집에서 출발하려고 했는데, 꾸물거리다 7시 30분에 집에서 출발했어. 집에서 출발해서 횡단보도를 2번 건너면 한강시민공원으로 갈 수 있어. 한강시민공원을 향해 달려갈 때부터 숨이 턱턱 막혔지. 그래도 한강시민공원에 들어서면 시원하겠지 생각을 하면서 꾹 참고 달렸다. 그렇지만 더운 날씨는 강물도 뜨뜻하게 덥혀둔 탓인지 한강시민공원에 들어섰는데도 시원하지가 않았어. 보통 아빠가 살살 달린다고 생각하면 시계를 보지 않고 한 5km는 달릴 수 있는데, 시계를 보니 집에서 고작 3km를 달려왔더구나. 물을 마시고 달리는데 아스팔트 산책로도 뜨거워져서, 발바닥까지 뜨끈뜨끈한 느낌이 들더라. 물을 마셔서 잠실종합운동장을 지나서는 화장실에도 잠깐 들렸어. 그리고 한강시민공원을 나와 삼성역부터는 인도로 달렸지. 인도로 달리니까 삼성역, 선릉역, 역삼역까지 오는 동안 신호등이 있어서 어느 정도 쉬면서 달릴 수밖에 없더라.
인도에는 가로수 덕에 그늘이 있어서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어. 르네상스호텔 사거리에서 역삼역 쪽으로 가는 오르막길이 마지막 고비였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힘들게 달리지는 않았단다. 회사 사무실 근처 사우나에서 샤워를 하고 냉탕에 들어가니, 해외 리조트 수영장에 있는 사람들도 하나도 부럽지 않을 만큼 시원했단다! 샤워를 마치고 옷을 갈아있으면서 달린 거리와 걸린 시간을 보니 집에서 사우나까지 10km도 되지 않더구나. 달린 시간도 약 43분 정도였어. 뜨거운 날씨를 생각하면 1시간 정도는 달려하지 않을까 예상했는데, 아빠의 예상이 틀렸다.
이번 주 일요일 아침에는 비가 왔어. 아빠는 제대로 자전거를 탄지도 오래돼서 네가 자고 있는 동안 한강시민공원으로 자전거를 타러 나갔다. 한강시민공원 자전거길을 따라 하남 스타필드가 보이는 곳까지 다녀왔단다.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잠깐 앉아서 쉬는데, 자전거를 탈 때랑 비교해서 별로 시원하지가 않더라. 자전거를 탈 때는 불어오는 바람이 시원해서 그런가 봐. 뜨거운 햇살에 비에 젖은 도로는 금방 말라버려서 기대한 것처럼 시원하지 않았지만 자전거도 오랫 만에 타니까 참 좋더구나. 자전거로 약 37km를 달렸는데, 조금 힘들기는 했지만 힘든 마음보다는 즐거운 마음이 훨씬 컸지.
아직은 날씨가 덥지만 아빠는 여름이 가기 전에 또 달리려고 해. 덥다는 핑계로 달리지 않았지만 실제로 달려보니 생각했던 것처럼 힘들지만은 않았으니까. 편지 첫 부분에도 이야기했지만 인생에는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참 많아. 역시나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날씨 탓만 하기보다는 아빠 마음대로 달려고 해. 게다가 이번 여름은 달리기를 해도 덥지만, 가만히 서있어도 더우니까 말이야. 갑자기 아빠가 너에게 분유를 먹일 때 발받침으로 사용하는 룰루레몬 요가블럭에 새겨진 슬로건이 생각났어. CHOOSE A POSITIVE THOU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