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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동전 야구장 답사기

이제 실현 불가능 프로젝트

by sposumer

나는 아직도 가보고 싶은 곳이 너무 많은 사람이다. 하지만 길던 짧던 여행에 가장 필요한 것은 일상을 뒤로 하고 떠날 수 있는 용기다. 하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 용기는 구멍 난 풍선처럼 점점 더 쪼그라들고 있다. 이런 내가 일상에서 가끔 용기를 내어 찾아가는 곳은 서울 시내에 있는 ‘동전 야구장’이다.


<사진 1. 이제 사라진 교대역 4번 출구 앞 동전 야구장>


‘동전 야구장’이라는 단어는 국립국어원은 물론이고 네이버에서도 그 뜻을 정의해주지 않은 단어로 다른 명칭으로 부르는 분들도 많다. ‘동전 야구장’이라는 단어가 낯선 분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정의를 해본다면 ‘연식 야구공을 사용하는 배팅 연습장으로, 타석에서 일정 금액의 동전을 투입하면 타석 맞은 편에 위치한 기계에서 투수가 투구하는 것처럼 연속적으로 공이 나오는 곳’이다.


아, 요즘은 스크린 골프장처럼 정식 규격 마운드와 거리를 갖춘 멋진 전자 야구 연습장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몇 만원에 이르는 비용이 문제가 아니라 최소한 2명 이상이 모여야 즐길 수 있다는 점과 저녁 시간에는 회식을 마친 아저씨들이 몰려들어 예약이 쉽지 않다는 점도 단점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동전 야구장의 장점은 두 가지이다.


첫째, 500원짜리 동전 하나와 약간의 용기를 가지고 명쾌한 스트레스 해소가 가능하다. 지역에 따라서 500원 동전 두 개가 필요한 곳도 있으나 이를 고려하더라도 대한민국 직장인이 잠시나마 단돈 천원으로 몸을 움직이며 스트레스 해소를 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점을 고려하면 동전 야구장의 존재가치는 충분하다. (편의점에서 250ml 코카콜라 한 캔을 마셔도 천원 이상이 필요하다)


둘째, 약간은 시간과 장소에 제약이 있으나 일상 생활 중 틈틈이 배팅 연습이 가능하다. 본격적 야구 연습을 위해서 주말을 기다릴 수 밖에 없는 슬픈 사회 야구인들 성에 차지는 않겠지만 양복을 입고도 사무실 근처 혹은 출퇴근길에 알루미늄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연습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커피 한 잔 보다 나은 진정한 일상의 여유라 할 수 있겠다. (출퇴근길 근처에 동전 야구장이 있는 분들은 정말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동전 야구장을 이용하다 보면 여러가지 아쉬움들이 있으나 이제 서울 시내에서 동전 야구장을 찾기도 쉽지가 않은 것이 현실이라 부족한 모습이라도 그대로 있어 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감지덕지하다고 생각하고 오늘도 동전 야구장의 축축한 코팅 장갑을 한 손에 끼고 타석에 서본다. (원래 백팩에 내 배 팅장갑을 넣고 다니는데, 오늘은 백팩이 없다)




위 부분까지 2016년도에 써둔 글이다. 게으름 때문에 미루고 미루다 답사하려던 동전 야구장들이 대부분 사라져 버렸다. 원대한 계획은 ‘나의 동전 야구장 답사기’라는 글제목으로 동전 야구장별 특징, 500원 동전 하나에 야구공이 몇 발이 나오는지, 투구 거리는 어떤지 등을 포함하려고 했다. 더불어 대부분 동전 야구장은 타이어가 돌아가면서 야구공을 앞으로 튀겨내는 스타일로 작동이 되는데, 기계를 어떻게 조정했는지에 따라서 야구공 제구가 전혀 안되기도 한다. 이렇게 쓰고 보니 매우 거창한 프로젝트인데, 이제 답사할 동전 야구장이 충분치 않아서실현 불가능한 프로젝트가 되었다. 내가 자주 가던 동전 야구장은 강남역, 교대역, 서울대입구역, 이수역에 있는 곳이었다. 지나가다 보니 강남역과 교대역의 동전 야구장은 아주 깨끗이 사라졌다.(동전 야구장 부지를 팔아서 건물이 올라갔다) 서울대입구역은 안간지 오래되어서 동전 야구장이 아직 있는지 모르겠고, 이수역에 있는 동전 야구장은 고물상과 같이 운영을 하는 곳이라서 시설이 가장 좋지 않다. 하지만 이수역 동전 야구장에서라도 알루미늄 재질 방망이를 휘두르며, 공이 배트에 잘 맞았을 때 나는 ‘깡!’ 소리를 듣고 싶다.


인생에서 내가 원하는 무엇 혹은 누군가가 늘 존재할 것이라는 것은 큰 착각이다. 몇 년째 연락을 못한 후배가 갑자기 신문 부고란에 등장했다. 마지막에 너와 인사를 나누었던 자리에 너는 웬지 서있을 것 같은데… 너는 이제 세상에 없구나. 난 니가 전공과 무관하게 로스쿨을 편입하고 변호사를 하고 있는지도, 결혼해서 우리 아들보다 큰 딸이 있는지도 몰랐다. 미안하다!


<사진 2. 교대역 동전 야구장 앞의 버스 정류장>

문득 동전 야구장에게도 미안하다. 오늘은 퇴근길에 강동역 24시 감자탕집 위에 있는 동전 야구장이라도 들리고 싶다. 동전 야구장아, 너 그냥 거기에 있기는 한거니? 거기 있기만 하면 된다. 기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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