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 연휴의 배달음식 픽업
올해 5살이 된 아들의 친구가 집에 놀러 왔다. 5살 동갑 친구로 아빠는 미국 주재원 발령을 받아서 이미 미국으로 출국했고, 엄마와 출국이 예정되어 있다. 점심때가 되어서 짜장면을 시켜서 먹기로 했다. 집 주변 중국집에 전화를 해보니 모두 전화를 받지 않는다. 통화가 된 곳은 구정 연휴라서 휴무라는 컬러링이 흘러나왔다. 배달앱을 켜고 포장이 가능한 중국집을 찾았다. 마라탕집은 문을 연 곳이 많은데, 짜장면을 파는 중국집은 천호역에 단 한 곳이 문을 열었다. 짜장면, 짬뽕, 볶음밥, 탕수육... 친숙한 메뉴들을 포장 주문했다. 내가 자전거 배달을 할 때 사용하는 배달 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섰다. 배달 가방을 들고 나서는 아빠를 아들과 아들의 친구가 재미있어할 만도 하지만 두 명 모두 헬로카봇 장난감을 가지고 노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중국집까지는 집에서 약 700미터. 자전거 배달을 할 때 배달음식 픽업을 자주 가는 천호동 로데오 거리 입구에 중국집이 있었다. 걸어간다면 좀 거리가 있지만 자전거 배달을 할 때 타는 자전거로 5분 만에 중국집에 도착했다. 자전거를 세우고 중국집이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배달 앱에는 12시 27분에 음식 픽업이 가능하다고 나왔고, 내가 중국집에 도착한 시간은 12시 30분이었다.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에게 포장주문한 음식을 가지러 왔다고 말했다. 종업원이 앞으로 20분에서 30분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홀을 둘러보니 점심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4개의 테이블에 앉아있다. 테이블에서 식사 중인 사람들도 음식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사람들도 있고, 배달 전표만 뽑아서 붙여둔 비닐봉지도 서너 개가 보인다. 꼼짝없이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20분간은 입구 쪽 의자에 앉아서 조용히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에도 손님이 두 팀 정도 더 왔다. 배달음식을 가지러 라이더 한 명도 도착했다. 12시 50분, 홀에서 일하는 종업원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물었다. '주문이 많이 밀렸다'라는 답만 하기에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하는지 다시 물었다. 10분은 더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배달앱을 켜서 음식이 늦게 나오는 경우에는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찾아봤다. 내 주문에 대한 채팅창이 있었고, 이 채팅창은 사람이 아니라 똑똑한 챗봇이 지키고 있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인 '음식이 늦게 나와요'라는 항목을 찾아보았으나 찾을 수가 없었다. 기타 항목으로 갔다가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기를 세 번 정도 반복하다가 짜증이 나서 채팅창을 닫았다.
테이블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던 손님 한 명도 음식이 언제 나오는지 종업원에게 물었다. 나와 비슷한 답변을 들은 것 같고, 홀에 있는 손님 음식을 먼저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하더니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내 옆에 앉아있는 라이더 분께 주문번호를 확인하면서 말을 걸었다. 나와 마찬가지로 12시 27분 픽업으로 되어있는 것을 보고 왔는데 계속 기다리는 중이었다. 내가 배달을 하는 상황이었으면 엄청 답답해하면서 종업원에게 재촉을 할 것 같은데, 라이더는 가끔 일어서서 주방 상황을 확인할 뿐, 아무 말 없이 기다리고만 있었다. 구정 연휴라서 문을 연 식당이 많이 없는 것 같고, 점심시간이라서 배달이 몰리는 것도 이해한다. 하지만,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죄송하다는 말 한마디가 없는 종업원까지 이해하기는 힘이 들었다. 드디어 종업원이 한 봉지를 포장을 했고, 이 한 봉지는 내 것이었다. 종업원은 포장한 음식을 내게 건네줄 때도 아무 말이 없었다.
사실 나는 이 봉지가 내 것이 아니라 묵묵히 기다리던 라이더의 것이었으면 했다. 봉투를 받아 들고 나오면서 라이더에게만 새해 복 많이 받으시라고 인사를 건넸다. 라이더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고, 내 귀에는 '배달의 민족 주문'이라는 경쾌한 목소리가 연속으로 들렸다. 중국집에서는 배달 접수를 막았다가 다시 켠 것 같았다. 배달가방을 매고 계단을 걸어 내려오면서 주문을 하고 거의 1시간만에 나온 짜장면 때문에 머리가 복잡했다. 내 아들이 좋아하는 짜장면, 좀 더 행복하게 픽업을 할 수는 없는 것인가? 내가 자전거 배달을 하면서 중국집에서 짜장면이나 짬뽕을 픽업하는 경우는 많았다. 음식이 늦게 나온 경우도 종종 있다. 한 번은 홀에 있는 종업원(사장님일 수도 있겠다)이 "아이고, 배달이 너무 밀려서... 여기 커피라도 한 잔 드시면서 기다려요"라고 했던 것이 기억난다. 배달을 할 때는 물을 마시면 화장실을 가야 하기 때문에 권해주신 자판기 커피를 마시지 않았지만 그 작은 배려가 떠오른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다. 하지만 각자의 입장이 있다고 하더라도 서로를 배려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음식이 늦게 나온다는 것에 대해서 원칙만을 설명하는 중국집 종업원, 테이블에 앉은 손님에게 음식을 먼저 줘야 한다고 말한 손님, 마지막으로 배달음식이 늦게 나와도 이야기할 곳이 없는 앱(사람이 만들고 사람이 업데이트한다) 모두 배려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든다. 중국집 종업원에게 음식 언제나 오냐는 질문을 열심히 한 나 역시 음식을 빨리 받아갈 내 입장만 생각했다. 30분 이상 배달 음식을 기다리고 있던 라이더만 앞에 이야기 한 사람들과 달리 누군가를 위한 배려를 갖춘 것 같다. 그 라이더는 음식 언제 나오냐고 물어봐야 달라질 것이 없는 상황을 많이 겪어봐서 그런 것일까? 묵묵히 음식을 기다리던 라이더처럼 올해는 어떤 상황에서도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한 해를 살아보자고 다짐해본다. 이런 배려들이 모이면 그래도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P.S. 한 밤중에 자다가 일어나 냉장고에 남아있던 시원한 짬뽕 국물과 탕수육을 먹고 작성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