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살 아들과 독박 캠핑
지금 살고 있는 강동구 아파트로 이사와서 아들이 태어났다. 아들은 어렸을 때부터 집이 아닌 곳에서도 잘 놀고 잘 잤다. 캠핑을 다니기도 적합한 체질이라서 아들이 2살때부터 캠핑도 다녔다. 집에서 정말 가까운 강동그린웨이 가족캠핑장은 가보고 싶었지만, 늘 온라인 예약에서 실패했다. 대학교 수강신청에서 인기있는 교양 강의를 신청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금요일을 포함한 주말 캠핑장 예약은 늘 좁은 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캠핑장 예약은 더 어려워졌다. 아이가 있는 집에서 실내 공간보다는 야외 공간이 더 안전할 것 같아서 그런 것인지 좋은 캠핑장 예약은 더욱 더 어려워졌다. 별 생각없이 4월달 예약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강동 그린웨이 가족캠핑장 예약 사이트에 들어갔는데, 평일은 예약이 가능했다. 회사를 다닐 때라면 평일 예약은 불가능했다. 연차를 사용했다고 하더라도 회사에서 터지는 큰일들은 꼭 내가 연차를 낸 날에 터져서 불꽃놀이처럼 구경을 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고 있지 않으니, 용기를 내어서 평일에 캠핑장을 예약했다.
아이와 캠핑은 아내와 둘이 준비를 해도 힘든 일이다. 아직은 추울 수도 있어서 등유 난로까지 챙겨야 해서 일은 더 커졌다. 아내가 아들의 간식거리와 옷가지를 챙겨주었지만, 그래도 내가 할일은 아주 많았다. 제일 걱정이 되는 것은 텐트를 설치하는 동안에 아들을 돌봐줄 사람이 없는 것이었다. 보통은 아들과 비슷한 아이가 있는 집과 같이 캠핑을 간다. 그러면 부모들이 텐트 2동을 설치할 동안 아이들은 아이들끼리 잘 노니까.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아들도 보면서 텐트를 설치해야 한다. 그래서 평소에 사용하던 면 소재의 캐빈(cabin) 텐트가 아니라 이보다는 설치가 간단한 돔(doom)를 준비했다. 캠핑을 떠나기 전날에 짐은 잘 챙겨두고 한번 점검을 했다. 밥을 오래 먹는 아들이 그나마 먹는 미역국과 양념 돼지고기까지 미리 사서 냉장고에 넣어두었다.
캠핑 당일 일정은 아주 빡빡했다. 아침에 아들을 어린이집에 데려다주고, 타이어 공기압 체크 경고등이 뜬 차를 타이어 가게에 가서 점검했다. 그리고 오전 자전거 배달을 하고, 오후 1시 30분에 돌아와서, 차에 짐을 실었다. 오후 2시 30분이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시간이라서, 맞춰서 출발해야 했다. 카트로 차에 짐을 3번 정도 나르고 시간 맞춰서 출발하려고 보니, 마실 물을 안챙겼다. 물론 캠핑장 매점에 물을 팔겠지만 조금 비쌀 것이니 다시 집에 올라가서 2리터 생수 패트병을 챙겨서 출발했다. 어린이집 선생님과 나온 아들은 캠핑을 간다고 무척이나 좋아했다. 차로 10분만에 캠핑장에 도착했다. 처음 가본 캠핑장이라서 주차장 입구를 찾았지만 다른 주차장 입구가 있을지 더 들어갔다가 한 바퀴 뺑돌았다. 오후 3시쯤 캠핑장 관리실로 가서 체크인을 했다.
아이들의 안전을 생각하면 캠핑장 안에 차가 다니지 않는 것이 제일 좋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주차장에서 캠핑장 사이트까지 짐을 실어 날라야 한다. 이 거리가 길면 길어질 수록 괴롭다. 아웃도어 브랜드 다닐 때, 마케팅팀 캠핑을 내가 기획을 했는데, 일부러 주차장에서 캠핑장 사이트까지 짐을 손수레로 옮겨야 하는 강화도 함허동천 야영장으로 했던 것이 갑자기 기억났다. 나이 앞자리가 4자가 되어서 그런지, 주차장에서 캠핑 사이트까지 짐을 몇 번 나르는 것은 힘이 들었다. 그리고 아들은 짐을 나르는 카트를 타고 놀고 싶어했다. 한 손에는 짐을 들고 아들이 타고 있는 카트에 짐을 살짝 실어서 짐을 나르니 한 30분이 걸렸다. 사이트 예약을 할때 화장실 등 편의시설이 가까운 곳으로 했는데, 산책로 바로 옆이라서 힘이 드니 산책하는 어르신들이 스피커로 듣는 트롯트 및 유튜브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그리고 산책을 마치고 신발을 청소할 수 있는 에어건이 가까이 있어서 '푸시이~ 쉬잇~ 쉬잇'하는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텐트를 설치하는 동안 다행히 아들은 비눗방울과 땅파기 등을 하면서 잘 놀았다. 해먹도 일부러 가져갔는데, 해먹도 좀 타고 텐트 설치는 마쳤다. 매점에도 한번 가서 말랑말랑해서 주물럭 거리기 좋은 장난감도 하나 샀다. 매점에 장작을 팔지 않아서 물어보니 이 캠핑장은 장작 사용은 금지라고 했다. 일부러 장작도 하남에 있는 캠핑용품점에 가서 사왔는데, 장작불을 구워먹을 마쉬멜로우까지 한 방에 날아가버렸다. 나는 아직도 고집스럽게 텐트 안에 넣는 에어메트를 핸드펌프로 바람을 채우고 있는데, 이번에는 모터펌프가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텐트 설치는 마쳤지만 이제 바로 저녁 준비를 해야 했다. 땅파기 놀이까지 마친 아들에게는 비장의 무기를 꺼낼 수 밖에 없었다. 바로 유튜브를 볼 수 있는 아이패드였다. 서울시에서 제공하는 무료 와이파이가 잘 터져서 아들은 평소보던 스마트폰보다 큰 화면으로 유튜브를 실컷 볼 수가 있었다. 춥지 않게 등유 난로에 불을 붙여서 아들 옆에 놓아주니 아들은 부족한 것이 없는 상태가 되었다.
하지만 나에게 주어진 자유는 아주 제한적이었다. 좋아하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를 블루투스 스피커로 들으면서 저녁을 준비했다. 아무리 숯이 불이 잘 붙고 착화제가 있다고 해도, 언제나 숯에 불을 붙이는 것은 어렵다. 토치로 불을 붙이면 꼭 불똥이 튀고, 부채로 바람을 적당하게 부치면 더욱 그렇다. 열심히 불을 붙이면 더워서 자연스럽게 맥주를 마시게 된다. 맥주 한캔을 다 마실 때쯤에 불을 붙였다. 강동 그린웨이 가족캠핑장이라서 가족 단위가 많을 줄 알았는데, 예약을 하고 오지 않은 사람도 많아서 캠핑장은 전체적으로 횡했다. 20대들끼리 와서 고기를 구워먹는 모습도 있었다. 20대들이 왁자지껄 떠드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 내가 그들처럼 즐겁지 못해서 그런지 심술이 났다. 김이 빠진 맥주를 마시면서 아들이 좋아하는 양념 돼지고기를 구웠다. 고기를 뒤집고 자르고, 비계가 많은 부분은 내가 먹고, 유튜브 삼매경인 아들에게 따끈한 양념 돼지고기를 대령했다.
아들은 입으로는 맛있다고 말을 했지만, 유튜브에 푹 빠져서 잘 씹지를 않았다. 양념 돼지고기를 다 구울 때까지 아들 옆에 앉아서 떠먹일 방법은 없었다. 즉석밥과 즉석 미역국을 데워서, 아들의 저녁상은 다 차렸다. 나는 껍질도 안 벗긴 오이를 쌈장에 찍어 먹으면서 저녁상을 준비했는데, 아들은 여전히 저녁상에는 관심이 없었다. 힘이 쭉 빠졌다. 그래도 양념 돼지고기는 마저 구워야만 했다. 내가 먹고 싶어서 산 U자 모양의 킬바사 소세지는 이미 식었고, 맥주도 김이 다빠졌다. 이제 아들 옆에 붙여 앉아서 열심히 저녁을 먹였다. 30분 이상 열심히 저녁을 먹이고 아들이 남긴 것들을 먹었다. 퇴근한 아내와 영상 통화를 했는데, 아들은 엄마에게 관심이 없고 아직 도착하지 않은 레고 소방차에만 관심이 있었다. 엄마까지 신경질이 나게한 영상통화는 짧게 끝났다. 장작을 피울 수가 없기 때문에, 마쉬멜로우도 장작불 색깔을 무지개 색상으로 만들어주는 매직파우더도 사용할 수가 없었다. 단촐하게 준비한 저녁 음식은 내가 다 먹어치웠고, 남은 것은 맥주 뿐이었다. 코로나 때문에 샤워장을 운영하지는 않아서 씻는 것은 건너뛰지만 아들의 이빨을 닦아주어야만 했다. 캠핑용 싱크통에 물을 받아서 그릇 등을 대충 넣고, 등유 난로를 텐트 입구 앞으로 옮기고, 잠자리에 누워서 아들에게는 늘 그렇듯 유튜브를 한편 또 보여주어야만 했다.
유튜브가 끝나고 정신없이 잠이 들었다. 새벽 1시쯤에 오토바이 소리 때문에 일어났다. 산책로 주변에서 오토바이가 왔다갔다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너무 화가 나서 텐트 문을 열고 나가려고 할때 캠핑장 당직 직원이 나온 것 같았다. 오토바이 소리의 주인공은 "화장실이 어디에요?"라는 어설픈 변명을 했다. 오토바이 소리가 사라졌고, 다시 잠이 들었다. 오전 6시 30분쯤 '쉬잇' 하는 신발 청소용 에어건 소리에 잠에서 깼다. 산책로 바로 옆 우리 텐트 주위에는 노인분들이 벌써 산책을 하고 계셨다. 어제 마무리 하지 못했던 일이 생각나서, 아이패드와 블루투스 키보드를 꺼내서 헬리녹스 택티컬 오피스(거창한 이름이지만 캠핑가서 쓰면 좋은 휴대용 책상)에 올렸다. 물을 끓여서 G7 블랙커피 믹스를 스텐인레스 캠핑컵에 타서 마셨다. 식어버렸던 미역국과 굳어버린 양념 돼지고기와 달리 커피가 아직 따뜻했다. 캠핑와서 처음 맛보는 내 자유시간이었다.
금요일 미팅 때 논의할 내용을 30분 정도 걸려서 정리했다. 이제 뭔가 좀 써볼까 생각을 하다가 점심 전에 철수를 하려면 할일이 많았다. 캠핑용 싱크통에 있는 냄비와 그릇들부터 먼저 씻었다. 이것저것 정리를 하고 있을 때쯤에 아들이 일어났고, 우유 데워주고 안매운 라면(아들은 사리곰탕면을 이렇게 부른다)을 끊여주었다. 역시나 유튜브 삼매경으로 잘 먹지를 않아서, 라면을 먹여주다 보니 내 라면은 또 퍼져버렸다. 철수를 하면서 중간에 캠핑 카트를 타고 놀기도 하고, 유아 숲 체험장에서 몇 가지 장애물 등반도 하다 보니 12시가 넘어서 짐을 다 챙겨서 캠핑장을 떠났다.
여기까지 읽어보면 누구나 애랑 혼자 캠핑을 가는 것은 고생길이라는 생각을 할 것이다. 그렇지만 이번 독박 캠핑으로 잊지 못할 추억 하나가 생겼다. 저녁 8시 30분쯤이었다. 아들이 저녁밥도 잘 안먹고, 나는 내 마음대로 맥주 한잔도 못 마셔서 짜증이 나있을 때, 유튜브를 보면서 밥을 입에 물고 있던 아들이 밤하늘을 보면서 이렇게 말했다.
"아빠, 별 좀 보세요!"
눈을 들어서 별을 보니 평소에 볼 수 없었던 별들이 밤 하늘에 총총히 박혀있었다. 아들이 아니었다면 저 별들도 못보고 혼자 씩씩거리고 있었을텐데, 아들이 참 고마웠다. 나는 일상에서도 그럴 것이다. 바쁘다는 이유로 놓치고 있는 것이 얼마나 많을까? 잠깐 밤 하늘을 별을 보는 것이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지만, 1년에 밤 하늘의 별을 몇 번이나 볼까? 힘은 들었지만 언제 아들과 단둘이 또 캠핑을 갈 수 있을지 모르니, 가슴벅찬 하룻밤이었다. 주말에 캠핑에서 제대로 세척하지 못한 장비들을 세척하고 정리를 마치고, 힘들었던 독박 캠핑을 잊을 때쯤 잠자리에 누운 아들이 나에게 불쑥 이렇게 말했다.
"아빠, 캠핑가서 힘드셨죠? 밥 잘 안먹어서 죄송해요"
평소 '죄송해요'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하는 아들이지만, 이렇게 이야기를 하니 내가 캠핑장에서 얼마나 저녁밥을 안 먹는다고 다그쳤는가 반성을 하게 됬다. 우리 또 둘이 캠핑가자. 저녁밥을 잘 안먹어도 좋아. 같이 오래 밤 하늘의 별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