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라고 쓰다 보니 영화 혹은 드라마에 나오는 장면이나 대사를 종종 인용하게 되는 일이 생겼다. 그래서 왜 그럴까 하고 궁색한 변명을 찾기 위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한다. 글은 모름지기 공명을 만들기 위함인데 그러려면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어떤 단초가 필요하다. 붙어다니는 친구 아닌 다음에야 공유하는 추억이나 사건이 무엇이 있을까? 반면에 인기 드라마는 많은 사람들이 보고 웃고 울기도 하니 그 장면들은 꼭 희노애락을 함께 해온 친구들 간에 공유하는 추억 같은 것이 된다. 그래서 드라마를 자주 인용하나 보다. 아니 드라마의 한 장면을 인용하면서 글을 쓰면 되지 왠 그리 궁색한 변명을 하는지. 쯔쯧. 자신감을 가져.


김태리가 고등학교 펜싱 선수로 나오는 드라마를 아주 재미있게 보고 있다. 나는 작가들을 존경한다. 주인공 중의 한명인 유림이가 핸드폰을 사주는 엄마와 나누는 대화 중에 나오는 대사이다.


“마음이 무엇을 해줄 수 있는데? 마음은 빚 안 갚아 주잖아?” 그리고 시간이 좀 지나서 까먹었는데 누가 누구에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런 대사도 나왔다. “몰랐는데 마음으로 갚아지는 빚이 있더라. 몰랐어?”


마음은 무엇일까? 바람같이 정처가 없고 보이지도 않고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겠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다가, 마음은 너무도 확실하고 더 이상 분명할 수 없이 확실한 실체이자 우주이기도 하다.


2천년 전에 예수라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스스로 말했던 젊은이가 나를 위해 죽었고, 부활했고, 지금도 나와 함께 있다는 설교를 매주 듣는다. 들으면서 가끔 생각한다. 2천 년 전에 하나님이 나를 위해서 하신 일은 이제 충분히 들었으니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지금은 무엇을 하고 계신 지에 관해 말씀이 아니라 실제의 경험으로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을 중학교 시절부터 지금 50 중반에 이른 나이에도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다가 알게 된다. 마음이야 말로 실체이며 우주인 것을. 하나님의 신비는 오묘하다는 것을.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그분의 뜻은 높다는 것을. 나의 마음을 바꾸시고 그래서 우주를 바꾸신다는 것을 어렴풋이 알게 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위로 받기를 거절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