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닥에 휴지가 떨어져 있는 것을 보고 주우려고 생각하던 참이었는데, 마침 지나가던 상사가 휴지를 주워서 쓰레기통에 버리라고 한마디 한다. 그 순간 휴지를 주우려고 했던 마음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고 난데없이 속마음에 당신이 줍지 왜 시키고 그래! 하는 뾰족한 감정이 올라온다. 엄마와 딸이 다투는 장면을 드라마 등에서 자주 보는데 싸움의 발단은 거의 대부분 비슷한 레파토리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예를 들면 딸이 된장찌개를 끓이고 있는데 옆에서 엄마가 머라 한마디 하고 그러면서 말다툼이 시작되고, 내가 뭘 하든 그냥 내버려둬! 왜 옆에서 자꾸 참견이야! 엄마는 옆에서 이거 해라 저거 해라 그러면 좋겠어! 하는 다툼으로 번지고 조금 전의 그 화목했던 순간들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지는 장면 등이다.
지시를 받는 것을 대부분 사람들은 좋아하지 않는 것 같다. 그래서 지시형 리더는 바람직하지 않은 리더십 유형이지 않을까 하는 좀 억울한 평판을 받는다. 그래서 오해를 받는 지시형 리더의 진가에 대해 변호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사실 알고 보면 가장 친절한 리더십은 바로 지시형 리더십이다. 어쩌면 가장 불친절한 리더십은 위임형 리더십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지시가 필요없는 상황인데 자꾸 지시를 하려고 하니 문제가 된다. 지시가 필요한 상황에서 지시를 해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가장 고마운 사람인 거다. 예를 들어 당신이 몇 시까지 어디를 꼭 가야만 하는데 초행이어서 길을 헤매고 있다면 가는 방법을 제대로 지시해주는 사람이 최고로 친절한 사람이 된다. 그때 당신에게 당신은 할 수 있어요. 나는 당신을 믿어요라고 말해주고는 자기 갈 길을 가는 사람은 정말 몰인정한 사람인 거다.
온수역 지하철에서 어떤 맹인이 큰 소리로 ×번 출구가 어디냐며 도움을 청하고 있었다. 그는 급히 어디를 가야만 했던 것 같다. 나는 그를 도우려고 여기로 오세요. ×번 출구는 이쪽입니다 하고 큰 소리로 그를 불렀다. 하지만 그는 나에게로 오지는 않고 계속 ×번 출구가 어디냐면 큰소리로 다급히 말할 뿐이었다. 나는 속으로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참고 계속 그에게 큰소리로 말했다. 이쪽으로 오세요. 그리고 신호를 주려고 박수를 치기도 했다. 그는 나의 도움에는 반응하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짜증이 올라서 그냥 가려던 순간, 어떤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 그에게 다가가 2번 출구? 어디 가려고? 말을 걸면서 자신의 팔을 잡게 하고는 천천히 그를 이끌어 함께 걸어갔다. 그 순간을 떠올리면 참으로 나의 급한 성미가 부끄러워진다.
나에게는 너무 당연하고 쉬운 것이기에 앞을 못보는 분의 어려움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몰랐던 거다. 일도 그럴 때가 많다. 나에게 너무도 쉬운 것이지만 처음하는 사람에게는 벽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그럴 때 누군가가 명확한 지시를 준다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는 거다. 지시형 리더는 참 친절한 사람이다. 다만 지시가 필요 없는데, 상황 파악 못하고 지시를 내리는 그것도 엉뚱한 지시를 내리는 바보는 제외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