빡센 군기 같은 것은 필요없다.

해본 알바 중에 제일 어려웠던 것은 무엇이었어요? 등산이라고 할 수는 없고 산책이라고 하기에는 제법 힘이 드는 어중간한 동네 뒷산을 걷는 운동을 하는 중에 일행이 물었다. 인삼건조장에서 일했던 것이 제일 어려웠죠. 그게 한 30년 전의 일이기는 한데, 지금이야 최신식 건조시설에서 인삼을 말리겠지만 그 시절에는 좌우에 층층으로 몇 단의 선반이 있는 건조장 안에 파란 불꽃이 이글이글 타오르는 연탄 화덕을 20여 개쯤 피워놓고, 대나무로 만든 채에 막 씻은 수삼을 널어서 건조했죠. 그리고 건조장에 들어가서 아래 선반에 있는 인삼 채를 위칸으로 올리고 위 선반에 있는 것은 아래로 내리는 작업을 했어요. 처음에 건조장에 들어가 보라고 해서 문을 열었다가 순간 숨이 턱 막혀서 문을 닫고 나왔던 기억이 지금도 나요.

인삼은 여름이 시작할 때부터 캐기 시작해서 늦가을까지 수확한다.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7, 8월에 연탄 화덕이 이글거리는 건조장 안의 공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었다. 여기가 바로 지옥이구나 싶을 정도였다. 늦가을 무렵 이제 건조장에 들어오는 인삼이 줄어들어서 그 일을 그만두고 연탄배달을 하기 시작했다. 그 시절에는 겨울에 쓸 연탄을 창고에 미리 쌓아두는 것이 김장하는 것과 같은 수준으로 중요한 월동 준비였다. 그렇게 연탄을 쌓아 놓으면 물기가 있는 연탄이 잘 말라서 화력 좋게 잘 탔고 연탄가스 사고 염려도 줄어든다. 연탄배달 일도 만만치 않게 어려운 일이지만 인삼건조장의 일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연탄배달이 놀면서 하는 일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말한 알바의 강도가 예상보다 세었던지 동행은 혹시 그렇게 어렵게 자랐는데 어떤 상처나, 나도 남들처럼 부모님이 뒷바라지를 해주셨으면 훨씬 더 잘나갔을 텐데 하는 등의 서운함 같은 것은 없느냐고 물었다. 그러게요. 그럴만도 하기는 한데, 어떤 상처 같은 것은 없었어요. 생각해보니 어렵게 자란 그 시절이 나에게 그림자가 되지는 않았다. 다만 영향이 있다면 인생을 재미있게 사는 법이라든지, 생일 같은 기념일을 챙기고 축하해주기도 하고 나도 축하를 받고 즐거워하는 등을 어색해하는 사람으로 살아온 것 등이 아쉽기는 아쉽다. 지금부터라도 달라지면 되겠지.


왜 상처가 없다고 느껴질까? 어려움은 상처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기백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신념이나 자긍심 같은 것을 단련시켜준다. 상처가 되는 것은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거나 학대를 당하거나 하는 등 인간의 존엄성에 상처를 받는 일이 누적되는 것으로 생기는 것 같다. 이것은 군대 생활을 떠올려 보아도 그렇다. 동계훈련이 시작되어 며칠 밤낮을 그 추운 벌판에서 텐트를 치고 잠을 자기도 하고, 밤새워 수십 킬로를 행군하여 진지를 구축하는 등의 고된 훈련은 군 생활에 대한 뿌듯한 추억이 되지만, 혐오스러운 것은 내무반 생활에서 겪는 일들이었다.


그런 면에서 보면 나는 다행스럽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누구로부터 이용당하지도 않았고, 학대를 당하지도 않았고, 신념에 반하는 행동을 하도록 압력을 받은 적도 없었다. 사람을 차별하거나 모욕감을 주는 그런 조직은 만들지 말자. 훈련이 고통스럽거나 해야 할 일들이 너무 많고 난이도가 높아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는 수준이거나,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 그런 일터라며 더욱이 서로를 존중하고 격려하는 문화를 만들자. 빡센 군기 같은 것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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