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은 정보이다.

똘이는 신기하게도 몇 개의 단어에 반응을 한다. 그 중의 하나가 산책이다. 어때 산책 갈까? 하고 말을 건네면 이 녀석은 끙끙거리며, 안절부절하다가 멍멍하고 큰소리로 짖는다. 그래 산책을 가야겠지!

녀석을 데리고 이른 아침에 안양천으로 산책을 나왔다. 근데 걷다가 어떤 아저씨가 큰 소리로 누군가에게 무어라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참 별일이다. 일요일 아침부터 왜 그런데? 속으로 생각하고 계속 걸었는데, 안양천 건너편에 있는 운동장에서 뽀얀 연기들이 거의 불이 난 수준으로 피어오르는 것이 보였다. 저게 머지?


늘 걷던 코스대로 다리를 건너서 운동장 쪽으로 걷다보니 정체 모를 연기는 다름 아닌 먼지였다. 조기 축구회에서 운동장을 평탄하게 하려고 트럭 뒤에 커다란 H빔을 매달고 운동장을 이리저리 달리고 있었고, 바로 거기에서 마치 삼국지에서 적군을 속이기 위해 말에 나무를 매달고 달려서 먼지를 피어올렸다는 그 장면처럼 먼지가 자욱하게 일고 있었다.


그냥은 지나칠 수 없어서 운동장에 모여 있는 몇 명의 조기축구회 사람들에게 큰 소리로 항의를 했다. 아니 지금 무엇하시는 거예요? 저렇게 먼지를 일으키면 어떻게 합니까? 대충 쳐다보고는 무시를 하더니 계속해서 항의를 하니 예~ 미안합니다. 곧 끝납니다라는 별놈이네 하는 표정으로 던지는 말뿐이었다. 이러지 마세요 하고 지나쳐 걷는데 여전히 트럭은 H빔을 끌고 다니며 먼지를 일으키고 있다. 나는 다시 돌아서서 그들에게 큰 소리로 항의를 했는데 그제야 그들도 트럭에 큰소리로 이제 그만해 하고 신호를 보냈고 트럭은 운동장 옆으로 빠져나왔다. 나는 트럭에서 내리는 조기 축구회 멤버로 보이는 사람에게 다음에도 이렇게 하면 신고하겠다는 경고를 했다.


걷다가 보니 내가 왜 이렇게 화가 났을까 하는 생각이 났다. 예전에는 화를 내고는 화를 내었다는 그것에 마음이 불편했는데, 지금은 화를 내는 것이 좋은 면이 많다는 것을 알기에 화를 낸 것을 후회하지 않고 다만 화가 난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게 되었다.


바짝 마른 운동장에서 H빔을 끌고 달리면 먼지를 일으킨 그 몰상식한 행동을 보면 당연히 화가 나겠지. 아까 내가 들었던 큰 소리를 질렀던 사람도 분명 먼지를 일으키는 사람들에게 항의했던 것이리라. 이런 생각도 하겠지만, 나는 내 안에 내가 모르던 화가 쌓여있다는 것을 갑자기 알아차리게 되었다.


잠간 생각해보니 지난 몇 주간 스트레스가 많았다. 그리고 또 다른 곳에서 억제라는 방어기제를 너무 많이 사용해왔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조금 전에 화를 낸 것은 그런 나에게 예상치 않았던 긴장을 완화시키는 분출구의 역할을 했던 거였다.


감정은 확실히 의미있는 정보를 제공해준다. 다만 그 정보는 암호화되어 있어서 해석이 필요할 때가 종종 있다. 스파이가 보내주는 기밀 정보라고 해도 좋겠다. 그런 정보를 해석하지 않고 소홀히 여기다보면 큰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 무엇인가 느껴진다면 이 감정은 머지? 어디서 온 것이지? 하는 호기심으로 가만히 바라보고 인사를 건네자. 그런 관심 만으로도 나를 흔들던 그 녀석을 좋은 친구로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조금 거칠기는 했지만 오늘 아침에 화를 내며 항의를 한 것은 나를 위해서 좋았고, 안양천을 산책하는 시민들을 위해서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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