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이트가 간과한 것

프로이트가 간과한 것이라는 제목은 가당치 않습니다. 심하게 말하면 어디서 약을 팔려고 자극적인 문장을 던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면 제목을 바꾸든지? 하시겠으나 그냥 재미삼아 잡은 제목이니 이해하시고 잠간 읽어주십사하고 본론과 상관없는 이야기를 길게 하였습니다.


심리에 관심을 가지면서 자연스레 프로이트의 정신분석 그리고 융의 분석심리에 관한 입문서를 읽게 되었습니다. 두 사람 모두 분석이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인간의 무의식에 대한 분석과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인간의 인지와 정서 등 인간이 의식하는 즉 스스로 알고 있는 의식에 대해서 연구합니다. 그래서 우울증 치료기법을 보더라도 내담자가 지닌 자동적 사고 혹은 역기능적인 인식 구조를 고쳐서 치료하는 방법으로 접근합니다. 모두 인간의 의식과 관련이 있지요.


반면에 정신과 의사들이 주로 다루는 이론이자 기법인 정신분석과 분석심리에서는 인간 무의식의 역동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의식은 말 그대로 무의식이 알 수가 없죠. 그래서 분석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됩니다. 우리가 영화 등에서 보는 카우치에 편히 누워서 자유연상을 하며 떠오르는 모든 이야기를 제어하지 않고 이야기 하게 한다든지 혹은 꿈을 분석하는 방식 등으로 무의식 세계를 들여다보고 어떤 문제해 대한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갑니다.


약간의 책을 읽어보니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무의식과 분석심리에서 말하는 무의식은 상당히 다르게 이해되었습니다. 하나 동일하게 느껴진 것은 무의식의 거대한 힘에 관한 기술이었습니다. 무의식은 바다이고 의식은 섬이라는 비유로 소개되었습니다. 빙산의 비유도 있었구요. 즉 무의식은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중에 우리를 움직이는 거대한 에너지인 셈입니다.


프로이트는 무의식을 이드라고도 하였습니다. 정신분석은 인간의 정신을 이드(원초아), 에고(자아), 수퍼에고(초자아)로 구분합니다. 이드 즉 원초아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 성적 욕구와 공격성이 매우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동물적인 원초적 본능으로 이해가 되었습니다.


정신분석에서는 방어기제가 또한 중요한 개념으로 설명되고 있는데, 제가 이해하기로는 무의식 세계에 있는 원초아가 우리를 흔드는 것을 통제하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가 욕구 그대로 행동한다면 아마도 인간이라 할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사회적 가치규범과 양심 등에 따라서 우리의 동물적 본능을 잘 통제하면서 우리는 문화적 인간으로 생활합니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방어기제인거죠.


방어기제가 잘 작동하려면 에고 즉 자아가 건강해야 합니다. 자아가 약해지면 방어기제가 약해지고 그러면 무의식의 에너지가 마그마가 분출하듯이 솟구치고 그 결과 어떤 정서적 어려움 또는 신체적, 관계적, 정신적 등 역기능에 빠지게 됩니다.


프로이트가 말하는 인간의 정신구조와 방어기제에 대한 설명을 읽으면서 저는 인간에 대한 측은지심이 느껴졌습니다. 인간은 자기도 의식하지 못하는 죄된 본능의 역동을 어떻게든 통제하면서 살려고 발버둥치는 그런 존재로 보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융의 분석심리에 대한 글을 읽고 융이 말하는 무의식은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과는 매우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좀더 융이 말하는 무의식에 흥미와 호감을 가지게 되었지요.


프로이트가 말하는 무의식 즉 원초아는 대표적으로 성욕과 공격성과 관련이 있습니다. 동물적 욕구인 거죠. 그리고 슈퍼에고 즉 초자아는 높은 이상 혹은 사회적 규범, 양심 등에 관한 것으로 우리를 엄격하게 감독하는 사감 선생님 혹은 종교적으로보면 율법주의자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억압하는 역할을 한다고 이해되었습니다.


그리고서는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인간의 무의식은 잘 관리하고 억제해야하는 동물적 욕구 뿐일까? 인간에게는 영원과 거룩과 이상 등을 추구하는 강렬한 욕구가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저 심층의 무의식에 있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협 만화 등을 보더라도 도를 추구하기 위해서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룩과 이상과 선을 추구하는 것은 억압이 아니라 어쩔 수 없는 강렬한 욕구처럼 보여집니다. 인간에게는 신의 모습이 있으니까요? 동물의 모습과 신의 모습이 모두 존재하는구나 하는 것을 문득 깨닫습니다. 저는 신적 이상을 추구하려는 그 욕구의 봉인을 해제하고 기꺼이 따라 보려는 그런 마음도 요즘 생기고 있습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자기를 위해 남을 돕는 사람, 남을 이용하는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