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라는 숲, 관계라는 날씨

연초에 베트남 호찌민으로 잠시 여행을 다녀왔습니다. 한국은 전국을 꽁꽁 얼어붙게 만든 한파가 몰아닥쳐 서울 기온이 영하 10도를 오르내릴 때였습니다. 하지만 비행기로 5시간 남짓 날아간 호찌민은 영상 30도의 완연한 여름 날씨였습니다. 마침 건기라 습하지도 않고 쾌적했지요. 따뜻한 햇살 아래서 저렴한 물가와 여유로운 분위기를 즐기며 저도 모르게 이런 혼잣말이 나왔습니다. "아, 여기 정말 살기 좋다."


우리가 영어를 처음 배울 때 교과서에 자주 등장하는 문장 중 하나가 "Where are you from?(어디에서 오셨나요?)"입니다. 낯선 사람을 처음 만났을 때도 "어디 사세요?", "거기는 살기 어때요?" 같은 말은 손쉬운 스몰토크의 주제가 됩니다. 그만큼 내가 발 딛고 서 있는 곳의 기후, 날씨, 지형 같은 자연적 환경은 우리 삶의 질을 결정짓는 무척 중요한 요소입니다.


하지만 '살기 좋다'는 느낌이 단지 날씨와 물가만으로 결정되는 것일까요? 환경은 분명 우리의 건강과 행복에 지대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렇기에 모든 생명체는 생존을 위해 자신이 처한 환경에 적응하려 필사적으로 노력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적응해야 할 진짜 환경은 영하의 추위나 영상의 더위 같은 자연환경만이 아닙니다. 바로 사람입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사람이라는 거대한 세상 속에 살고 있습니다. 내가 매일 마주하는 상사, 동료, 가족이 곧 내가 겪는 날씨이자 기후입니다. 과거 수렵 채집 시절에는 자연의 변화를 읽고 맹수를 피하는 것이 생존의 열쇠였지만, 현대 사회에서 우리가 부딪히고 적응해야 할 진짜 변화는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관계의 파도입니다. 그렇다면 이 복잡하고 미묘한 '사람이라는 숲'에서, 우리는 어떻게 적응하고 건강하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요? 관계 환경에 적응하는 법을 배우는 것, 그것이 현대인의 생존을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일 것입니다.


생존을 위한 본능, 적응

생물학적으로 볼 때, 살아남은 종(種)은 가장 강한 종도, 가장 똑똑한 종도 아닙니다. 변화하는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한 종입니다. 찰스 다윈이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발견한 핀치 새가 대표적인 예입니다.


원래 같은 조상에서 갈라져 나온 이 새들은, 자신이 살게 된 섬의 환경에 따라 부리의 모양이 각기 다르게 진화되었습니다. 딱딱한 씨앗이 많은 섬에 사는 핀치는 씨앗을 깨기 좋게 부리가 뭉툭하고 두꺼워졌고, 곤충이 많은 섬에 사는 핀치는 좁은 틈새를 쪼기 좋게 부리가 뾰족하고 길어졌습니다. 만약 뾰족한 부리를 가진 새가 딱딱한 씨앗만 있는 섬으로 갔다면 굶어 죽고 말았겠지요. 이처럼 자연환경에 자신의 신체 형질을 맞추는 것은 생명체에게 생사가 걸린 문제였습니다.


인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뇌의 깊은 곳에는 수만 년간 빙하기의 추위와 맹수의 습격이라는 혹독한 자연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형성된 생존 본능이 각인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21세기를 사는 지금, 우리가 맞춰야 할 부리의 모양은 조금 달라졌습니다.


달라진 정글, 사람 관계

물리적 맹수는 사라졌지만, 우리는 관계라는 더욱 복잡하고 미묘한 정글 속에 살고 있습니다. 생각해 보면 사람의 일생은 끊임없이 새로운 관계 환경에 던져지고, 그 안에서 적응해 가는 과정의 연속입니다.


우리는 태어나자마자 가족이라는 최초의 관계 환경을 마주합니다. 부모와의 애착 관계 속에서 생존의 기초를 배우지요. 조금 더 자라면 유치원과 학교라는 사회적 정글로 나아갑니다. 친구들과 어울리고, 선생님의 규칙을 따르며, 때로는 따돌림이라는 폭풍우를 만나 허우적대기도 하고 단짝 친구라는 쉼터를 찾기도 합니다. 성인이 되어 남녀가 만나 사랑을 할 때도 우리는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것처럼 낯선 상대방의 문화와 언어에 적응해야 합니다.


특히 현대인에게 가장 가혹하고도 중요한 환경은 바로 직장입니다. 과거 평생직장이 당연했던 시절에는 한 번 입사하면 그곳의 문화에 서서히 젖어들며 정년까지 지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수시 채용과 이직이 보편화된 요즘, 우리는 수년마다, 혹은 수개월마다 완전히 새로운 '사람 환경'으로 이주해야 합니다.


새로운 회사로 이직한다는 것은 단순히 업무가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나를 둘러싼 공기, 즉 사람이 바뀌는 것입니다. 전 직장에서는 통했던 나의 유머나 소통 방식이, 마치 뾰족한 부리가 씨앗 섬에서는 무용지물이듯, 새로운 조직의 팀장이나 동료들에게는 전혀 통하지 않거나 오히려 오해를 살 수도 있습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나도 이 새로운 관계의 토양에 뿌리내리지 못해 시들어버리는 인재들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합니다.


건강한 삶의 척도: 사회적 웰빙

그렇다면 이 복잡한 사람 세상에서 '건강하게 산다'라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할까요? 사회심리학자이자 정신건강 연구자인 미국 에모리 대학교(Emory University)의 코리 키즈(Corey Keyes) 박사는 정신 건강을 진단하는 새로운 프레임워크를 제시했습니다.


그는 진정한 웰빙(Mental Well-being)이 세 가지 기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합니다. 첫째는 기분 좋은 감정을 느끼는 '정서적 웰빙', 둘째는 개인의 성장과 자아실현을 뜻하는 '심리적 웰빙',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가 바로 '사회적 웰빙(Social Well-being)'입니다.


우리는 흔히 마음 건강을 '내 기분(정서)'이나 '나의 꿈(심리)'의 문제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키즈 박사는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타인 및 공동체와 얼마나 건강하게 연결되어 있는지가 삶의 질을 결정한다고 강조합니다. 사람이라는 환경 속에 사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척도인 셈입니다.


과연 나의 '사회적 웰빙'은 안녕한지, 키즈 박사가 제안한 척도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질문들에 답해보시기 바랍니다.


<나의 사회적 웰빙 체크리스트>

1. (사회적 통합) 나는 내가 속한 공동체(직장, 모임, 이웃)에 소속감을 느끼는가?

2. (사회적 기여) 나는 내가 하는 일이 다른 사람이나 사회에 가치 있는 기여를 한다고 느끼는가?

3. (사회적 수용) 나는 사람들을 기본적으로 믿을 만하고 선하다고 생각하는가?

4. (사회적 성장) 나는 우리 사회(또는 조직)가 더 좋은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고 믿는가?


이 질문들에 "그렇다"라고 답할 수 있다면, 당신은 사람이라는 숲에서 건강하게 뿌리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관계 환경의 핵심 자원: 독립과 신뢰

하지만 이론을 안다고 해서 실전이 쉬워지는 것은 아닙니다. 낯선 사람, 혹은 나를 평가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틈에 섞이는 건 여전히 두려운 일입니다. "저 사람이 나를 싫어하면 어쩌지?", "내가 거절당하면 어쩌지?" 하는 불안은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사람이라는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준비물은 화려한 처세술이 아니라, 바로 용기와 자신감입니다. 그리고 이 용기는 역설적이게도 독립적이고 자주적인 마인드에서 나옵니다. 타인의 시선이나 평가에 내 존재 가치를 전적으로 맡겨버리면 우리는 늘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내 삶의 주인으로 우뚝 서 있다는 단단한 자존감이 있어야, 타인이라는 환경에 휘둘리지 않고 그들과 대등하게 마주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홀로 설 수 있는 단단한 마음의 근육이 생겼다면, 이제는 타인과 더불어 사는 지혜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때 기억해야 할 것은 인간관계의 오랜 황금률입니다. 바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는 원칙입니다.


이 원칙은 관계의 열쇠가 상대방이 아닌 나에게 있음을 알려줍니다. 우리는 흔히 상대가 먼저 잘해주기를 기다리지만, 황금률에 따르면 내가 존중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존중하고, 내가 환대받고 싶다면 내가 먼저 환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합니다.


우리 속담에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라는 말은 이 황금률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사람은 거울과 같아서, 두려움을 안고 잔뜩 경계하는 사람에게는 곁을 주지 않지만, 먼저 다가와 환한 미소로 신뢰를 보내는 사람에게는 굳게 닫힌 마음의 빗장도 열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이 환경이라면, 내가 먼저 따뜻한 온기를 내뿜는 난로가 되어보는 건 어떨까요? 내가 뿜어낸 온기가 주변 공기를 데우고, 결국 그 따뜻해진 공기 속에서 숨 쉬게 되는 건 바로 나 자신일 테니까요.


우리는 관계 정원사이자 개척자

당신은 어떤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까? 서두에서 던졌던 질문을 다시 한번 꺼내봅니다.


잠시 눈을 감고 당신을 둘러싼 '사람 환경'을 떠올려 보십시오. 당신의 숲은 어떤 모습인가요? 따뜻한 햇살 같은 격려가 흐르고 있나요, 아니면 차가운 비난의 비바람이 몰아치고 있나요? 혹은 무관심이라는 건조한 사막 한가운데 서 있지는 않은지요. 내가 발 딛고 선 이 관계의 토양이 척박하다면, 아무리 좋은 씨앗(능력)을 가지고 있어도 꽃을 피우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자연환경과 달리, 관계 환경은 우리 스스로 가꾸고 개척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단순히 주어진 날씨에 순응해야만 하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닙니다. 정원을 망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그대로 방치하는 것입니다. 반면에 부지런한 정원사는 잡초를 뽑고 물을 주며 아름다운 정원으로 가꿔갑니다. 관계 정원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나에게 해로운 환경이라면 과감히 떠나 더 나은 공동체를 찾아 나설 수 있는 개척자이기도 합니다. 나의 행복을 위해 나를 둘러싼 사람의 숲을 주도적으로 디자인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의미의 환경 적응입니다.


지금 세상은 온통 인공지능(AI)과 휴머노이드 로봇 이야기로 뜨겁습니다. 머지않아 이들이 인간이 하는 작업의 대부분을 대체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인간은 쓸모없어지는 것일까요? 만약 인간을 단순히 의식주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 기능(Function)으로만 본다면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인간 삶의 본질은 노동 그 자체가 아닙니다. 삶의 본질은 의미를 추구하는 데 있으며, 그 의미는 결국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관계 속에서 발견됩니다. 물론 우리는 반려견이나 영화 속 알투디투(R2-D2) 같은 로봇과도 정서적 교감을 나눌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서로의 영혼을 울리고 삶의 깊은 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것은, 결국 사람과 사람 사이의 체온이 닿는 관계뿐입니다.


그러니 부디 용기를 내십시오. 관계가 두려운 것은 당신만이 아닙니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는 저 타인들도, 실은 당신만큼이나 관계를 어려워하고 거절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한강 작가가 말했듯이 내가 지금 비에 젖고 있다면 타인 또한 그 비를 맞으며 떨고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순서는 명확합니다. 먼저 비에 젖은 나 자신을 따뜻하게 보살펴주십시오. 그리고 나를 돌보는 그 너그러운 마음으로 타인을 향해 깊은 연민을 품어보십시오. "너도 나처럼 힘들었구나, 너도 비를 맞고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상대를 바라보고 보살필 때, 우리는 비로소 서로에게 멋진 사람으로 성장하고 진정한 행복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용기, 그리고 그 온기로 타인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가는 용기. 그 작은 용기가 당신이 사는 세상을 가장 아름다운 곳으로 만들 것입니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사랑하는 사람은 상처를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