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 요엘서 2장 28절에 나오는 문장이다. 정확히는 늙은이는 꿈을 꾸고, 젊은이는 비전을 보게 될 것이다고 되어있다. 융이 말하는 무의식 개념을 공부하다가 위 문장이 떠올랐다. 연결시켜보는 것이 무리일까? 그럴 수도 있겠지만 전혀 억지는 아닐 것 같은데 하는 지점이 있어서 잠간 적어본다.
무의식은 미지의 영역이다. 개발되지 않은 우리들의 모습이다. 미분화되어 있어 미숙하고 거칠고 어쩌면 의식이 가지고 있는 기준에 어긋나기 때문에 억눌러져 있는 우리의 숨겨진 모습일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말하는 자기(self)는 의식과 무의식 모두를 포함하는 전체로서의 나를 말한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기개발은 우리의 무의식을 제외하고는 성립할 수 없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식의 영역조차 온전히 발전시키기가 쉽지 않다. 대표적인 방식이 나의 재능과 강점을 발견하고 수련하여 발전시키는 일이다. 미래에 내가 되고자 하는 모습을 구체적이고 도전적인 목표로 설정하고 생생하게 상상하는 비전을 보는 일은 가슴 설레는 일이다.
그렇게 열심히 인생을 살고서는 50을 넘기면서는 후회가 찾아오고 또 마땅히 후회해야한다. 그 후회는 잘못한 것에 대한 반성이 아니다. 다시 돌아가면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 시절은 그것이 최선이었다고 돌이킬 수 없다고 있는 그대로를 수용하라는 격려이다. 그렇다면 후회는 없다고 말해야지 않을까? 후회는 50을 넘어서면 생애의 발전 주기 단계에서 볼 때 꼭 거쳐야 하는 과정처럼 보인다. 마치 10대에 사춘기를 경험하듯이 말이다. 후회를 통해서 돌아보지 못했던 사실상 돌아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나의 참모습 아직 분화되지 않은 미성숙한 자기의 일면에 이제야 관심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는 진실로 성숙의 여정을 다시 시작하는 것이다.
무의식과의 대화 수단으로 유용한 도구가 꿈이라고 알려져 있다. 꿈에서 혼란스럽게 오고 가는 이미지들은 의식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얼핏 보기에는 말이 되질 않아서 흔히들 개꿈이라고 하지만 몇 번 경험해본 꿈 해석으로 보면 정말 대단한 메시지가 담겨있었다.
후회가 다가온다면 부끄러워할 것도 없다. 그는 인생의 후반전을 이끌어줄 소중한 동료이다. 50대를 넘어서서 이제 안정기에 접어들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젊은 시절보다 더 흥미진진한 미지의 세계 우리의 무의식의 세계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늙은이야 말로 꿈을 꾸어야할 시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