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하고 합리적인 습관을 담은 루틴 커피 F&B 브랜딩
저가 커피 시장은 포화 상태일까요? 반은 틀리고, 반은 맞습니다. 국내로 한정하면 포화가 맞아요. 그런데 해외로 눈을 돌리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매일 먹는 소비재를 한국만큼 저렴하고 빠르게 프랜차이즈로 굴리는 모델은 생각보다 흔하지 않거든요. 한국에서 레드 오션인 구조가, 다른 시장에서는 오히려 ‘블루 오션’이 되기도 하죠.
루틴커피는 그 틈에서 출발했어요. 단순히 가성비 커피 브랜드를 하나 더 만드는 게 아니라, 저가 커피를 ‘스마트한 합리적 습관’으로 재정의한 거였죠. 그렇다면 이 정체성은, 디자인과 브랜딩에서 어떻게 구체화됐을까요? 루틴커피 브랜딩을 담당한 정은우 디렉터와 채송이 디자이너를 만나 그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정은우 디렉터(이하 은우): 국내에서는 저가 커피 시장이 이미 포화에 가까워요. 하지만 클라이언트는 한국의 저가 커피 프랜차이즈 모델이 해외에서 더 잘 먹힐 수 있다고 봤어요. 매일 먹는 소비재를 한국만큼 저렴하게, 한국만큼 빠르게 프랜차이즈로 키우는 곳이 생각보다 없거든요. 한국에서는 레드 오션이지만, 다른 시장에선 그게 곧 경쟁력이 될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첫 지점은 규모보다 루틴 커피만의 ‘기준’을 만들 수 있는 곳이어야 했어요. 브랜드가 어디서부터 시작했는지가 이후 확장 서사를 결정하니까요. 확실하게 성과를 만들 수 있고, 브랜드의 기준을 세울 수 있는 자리. 그 출발점을 ‘고려대’로 정한 건 클라이언트의 판단이었어요.
은우: 기존 저가 커피 시장이 가진 이미지를 탈바꿈시키고 싶었어요. 목표는 이거 하나였어요. 저가 커피를 ‘스마트한 합리적 습관’으로 보이게 만드는 것. 하루에 한 번은 들르게 되는 곳. 여기서 하루를 깨우고, 리듬을 시작하는 곳이요. 같은 가격이라도 ‘절약’처럼 보이는 것과 ‘합리적인 선택’으로 읽히는 건 완전히 다르잖아요.
클라이언트가 처음부터 강조했던 건 루틴커피를 리추얼한 동력 장치로 만들고 싶다는 거였어요. 단순히 ‘가성비’를 내세우는 브랜드가 아니에요. 그래서 메시지도 ‘하루를 여는 첫 번째 습관’으로 어필하고 싶어했죠. 그래서 1호점에서부터 그 정체성을 증명하려고 했어요. 고려대 이외에도 직장인·IT 밀집 지역이나, 실리콘밸리처럼 상징이 강한 곳을 먼저 선점하는 방식이죠. “똑똑한 사람들이 마시는 커피”라는 인상을 상권으로 먼저 만들고, 그 다음에 확산시키는 전략이에요.
은우: 제일 먼저 고민한 건 “루틴하다”는 말을 어떻게 직관적으로 보이게 만들까였어요. 코로나 이후로 리추얼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더 강해졌잖아요. 블루보틀처럼, 심볼만 봐도 그 브랜드가 떠오르는 상태를 만들고 싶었어요. 그래서 ‘루틴’이라는 단어를 그대로 모티프로 삼았어요. 시계처럼 돌아가는 시간으로도 보고, 스케줄러처럼 칸을 나누는 구조로도 보고, 시간표처럼 선과 칸으로도 풀어냈죠. 여러 방향으로 제안했지만 최종적으로 채택된 건 시간표 모티프였어요. 1호점이 학생회관에 들어가는 구조였던 만큼, 학생들이 매일 보는 시간표가 루틴커피의 리추얼을 가장 빠르게 설명해준다고 판단했어요.
은우: 어떻게 해야 구구절절 말하지 않아도, 아이콘만 보고 “아, 루틴커피구나”가 될까 고민했어요. 컵 형태 시안이 채택됐을 때 클라이언트가 했던 말이 기억에 남아요. “블루보틀처럼 됐으면 좋겠다”는 얘기였거든요. 그 말의 핵심은 디자인이 비슷해지자는 게 아니라, 그 정도로 즉시 인지되는 상징성을 갖고 싶다는 뜻이었어요. 한 번 보면 기억에 남고, 별다른 설명 없이도 브랜드가 읽히는 상태요.
초반에 리서치를 정말 많이 했어요. 저가 커피 브랜드들을 쭉 보면 공통점이 있더라고요. 각 브랜드가 하나씩 ‘강점’을 갖고 있어요. 어떤 브랜드는 메뉴가 압도적으로 다양하거나 가격 자체가 메시지가 되죠. 예를 들어 어떤 브랜드는 “이 가격에 이런 메뉴까지?”라는 쪽으로 강점이 선명하고요. 그래서 저희도 계속 그 질문을 붙잡았어요. “그럼 루틴커피의 강점은 뭐지?” 단순히 가성비를 한 번 더 외치는 건 의미가 없으니까요.
그때부터 방향이 조금 선명해졌어요. 루틴커피가 가져갈 강점은 ‘가성비’가 아니라 합리적인 선택처럼 보이는 습관, 그러니까 ‘루틴’ 자체였어요. 문제는 이걸 메시지로 설득하면 너무 느리다는 거였고요. 그래서 저희는 ‘루틴’이라는 말을 어떻게 하면 한 번에 읽히게 만들 수 있을까를 디자인의 출발점으로 잡았어요.
채송이 디자이너(이하 송이): 초반 전략 단계에서 “루틴커피는 어떤 톤앤무드로 가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이미 있었어요. 도시적이고, 스마트하고, 합리적인 선택처럼 읽히는 브랜드. 그 결을 기준으로 시안을 설계했어요. 그런데 어느 순간, 캐릭터 아이디어가 갑자기 등장하면서 전략이 조금 흔들렸어요. 특히 1호점이 학생회관에 들어간다는 이야기가 나오니까, 클라이언트가 그 지점에서 살짝 혹했던 것 같아요. ‘대학가니까 캐릭터가 더 먹히지 않을까?’ 같은 생각이요. 하지만 방향이 흔들릴 때일수록, 결국 답은 처음 세운 전략 안에 있더라고요. 그래서 다시 전략으로 돌아가서, 그 톤을 끝까지 밀어붙였어요.
송이: 학생회관 안에 있는 카페라는 게 특수한 상황이잖아요. 매일 같은 사람들이 같은 시간대에 오가고, 수업 시간표처럼 하루의 리듬이 이미 정해져 있고요. 그래서 여기서 시작한 브랜드는 ‘취향’보다 습관으로 먼저 읽힐 수밖에 없어요. 루틴커피가 말하는 ‘루틴’이 오히려 이 공간에서는 설명이 아니라 환경 자체로 증명되는 셈이죠.
은우: 디테일을 진짜 사소한 데서 많이 만들었어요. 예를 들어 매장 측면 간판은 모서리까지 감싸듯이 꺾어 넣었는데, 그게 그냥 장식이 아니라 포스트잇 캘린더가 떠오르도록 설계한 거였어요. 심볼 안에 있던 모티프를 그대로 갖다 붙인 게 아니라, 모서리에 ‘꺾어서’ 넣어서 공간에서 한 번 더 재밌게 읽히게 만든 거죠. 컬러도 브랜드 컬러만으로 밀어붙이기보다, 교내 학생회관이라는 환경에 맞춰 공간에 생기를 주는 제3의 컬러를 따로 잡았어요. 밝은 연두색 타일을 써서 공간 전체가 조금 더 살아 보이게요.
은우: 클라이언트는 처음부터 결론을 한 방향으로 좁히기보다, 가능성을 넓게 열어두는 쪽에 가까웠어요. 그래서 저희도 한 가지 안에 몰아넣기보다, 여러 갈래로 제안하고 비교할 수 있게 가져갔어요. 결과적으로 이 프로젝트의 원칙은 단순했어요. 제한을 두지 않고, 일단 제안해보자. 오히려 그 방식이 더 빠르게 좋은 답으로 수렴하더라고요.
송이: 저는 가이드라인을 정말 ‘운영의 기준’으로 봐주셨던 순간이 제일 뿌듯했어요. 브랜드 전략가도 따로 계셨는데, 가이드 문서의 표현이나 규정 같은 디테일을 꽤 집요하게 질문하시더라고요. 보통은 전달해도 안 보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루틴커피 팀은 “이걸 실제로 쓰겠다”는 느낌이 분명했어요.
저희도 그만큼 기준을 제대로 세우고 싶었어요. 브랜드 디자인 가이드는 브랜드 디자인 가이드대로, 공간은 공간대로 작동 방식이 다르니까 브랜드 가이드와 공간 가이드를 분리해서 설계했거든요. 같은 브랜드라도 제품/그래픽과 공간은 ‘보이는 방식’이 다르니까요. 그걸 클라이언트가 꼼꼼히 읽고 질문해주니까, “아, 우리가 만든 게 진짜로 브랜드의 룰이 되겠구나” 싶었고요. 그 순간이 되게 좋았어요.
송이: 사실 아쉬움이라기보다, 새로운 욕심이 생긴 프로젝트였어요. 저는 매장 단위 디자인이 거의 처음이었거든요. 그동안은 인쇄물 중심으로 해왔는데, 실제로 매장이 열리고 나서 현장에 가보니까 공간감이 확 체감되더라고요. ‘내가 만든 게 진짜로 사람들 동선 안에서 작동하는구나’ 하는 경험이 정말 신기했어요. 동시에 더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크게 들었고요. “여기서 이런 디테일을 더 챙길걸” 같은 생각도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송이: 저는 결국 진심을 전달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브랜드를 만들겠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겐 각자의 진심이 있잖아요. 왜 시작했는지, 어떤 기준을 지키고 싶은지, 어떤 태도로 고객을 만나고 싶은지요. 디자이너의 역할은 그 진심을 예쁘게 꾸미는 게 아니라, 소비자가 알아볼 수 있는 형태로 번역해서 전달하는 것이라고 느꼈어요.
그 과정에서 전달자는 디자이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디자이너의 진심도 자연스럽게 섞이더라고요. ‘이 브랜드가 이렇게 읽혔으면 좋겠다’는 마음, 끝까지 설득력 있게 만들고 싶은 욕심 같은 것들요. 그래서 브랜드를 만든다는 건, 누군가의 진심을 대신 말해주는 일이면서도, 결국은 내가 믿는 기준으로 그 진심을 더 선명하게 만드는 일인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