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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 후에 남은 것들

가족을, 새로이 만나는 청년

by 봄아범


봄(태명)이 친구와 싸웠다. 같은 반에서 제일 예쁘다는 친구 여름(가명). 생각만 해도 좋다는 고백에 놀라움의 웃음이 났다. 키즈카페에 갈 때도 항상 옆자리에 앉던 단짝. 다른 친구와 삼각관계가 되어 양손을 붙들려 곤란해하던 여름의 표정. 이제는 여름만이 아니라 아들인 봄까지 당황과 분노를 섞은 얼굴을 서로에게 보였다. 하원하는데 소리를 지르는 것을 떼어내느라 애를 먹었다. 소년의 세계에 아빠가 자연스럽게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넌지시 봄에게 여름과 무슨 일이 있었냐고 물었다. 여름이 자신에게 소리를 질렀다고 한다. 봄은 시끄러운 소리를 듣기 힘들어서 친구를 밀었단다. 자신이 제일 사랑하는 중장비, 불도저 ‘빌리’처럼. 의기양양한 말 한마디에, 하원길 자동차의 브레이크를 밟을 뻔했다.


내가 이겼어.



이기고 싶은 건 사람의 본능일까. 유치원을 다닐 때는 키가 더 큰 친구가 이긴 것 같았다. 우유를 열심히 마셨다. 장염에 걸렸다. 초등학생 때는 태권도 겨루기에 승리를 거머쥔 검은띠를 맨 친구를 동경했다. 기합을 열심히 외쳤다. 파란 띠에서 멈춰버렸다. 고등학생 때는 3점 슛을 넣어 농구 경기를 이기고 환호하는 선배가 멋져 보였다. 슛 연습을 열심히 했다. 키는 안 크고, 무릎통증만 얻었다. 대학에 들어갔다. 수강 신청에 먼저 접속하는 친구처럼 승전보를 만들고 싶었다. 실패 후, 원하지 않는 수업에 결석했다. 취업을 준비할 때는 면접에서 승리해 먼저 입사하는 친구를 시샘했다. 나도 이기고 싶었다. 질투를 하니까, 될 일도 안 되었다. 아이와 함께하는 주말. 수많은 사람들 사이에서 승리해야 더 풍요롭게 보낼 수 있었다. 테마파크를 가기 전에는 수레 형태 유아차인 웨건과 주차 발레파킹을 예약해야만 했다. ‘마감’이라는 두 글자가 ‘예약 가능’으로 바뀔 때까지 새로고침을 눌러냈다. 인기 많은 전시장이나 공연을 참여하려면 피를 튀기는 예약 전쟁, 피켓팅에 승리해야 했다. 가까스로 공연 좌석을 잡아내면, 주차 자리 전쟁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중주차라도 할라치면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올까 봐 불안했다. 혹여, 차를 빼달라는 차주의 애타는 외침이 않을까 싶었다. 아이는 부모를 닮는다. 이겨야만 하는 상황에 결국 이겨내는 나의 모습. 그 이상으로 불안한 아빠인 나. 변화가 필요했다.




의식적으로 양보를 했다. 공연장 둘째 줄에 앉아있었다. 아내가 피켓팅에 승리한 덕분에 앞에서 관람하는 체험형 공연이었다. 한 모녀가 앞까지 걸어 나왔다. 아이를 더 가까운 자리에 앉히고 싶은 엄마의 마음이 보였다. 무엇보다, 봄에게 양보를 보여주고 싶었다. 흔쾌히 자리를 내어드렸다. 엄마는 감사하다고 기쁘게 웃으며 말했다. 아이는 겸연쩍어하는 표정이었다. 그럼에도, 엄마가 앉아서 보라고 말하니까 쭈뼛거리며 앉았다. 이내 불편한 듯이 일어났다. 아이의 귀가 눈에 들어왔다. 청력을 도와주는 보청기. 멈춰버린 내 눈과 아이 엄마의 눈이 마주쳤다.


“아이가 아픈가 봐요.”

"네. 다음 주에 귀 수술을 해요. 잘못되면 청력을 잃을 수 있다고 하네요."

"!"

수술 전에
아름다운 소리를 들려주고 싶어서 왔어요.
감사합니다.


이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다는 걸 아이에게 말로 가르쳤다. 그것을 알려주려는 행동으로 내가 더 배웠다. 아이에게 제일 좋은 것을 주고 싶은 엄마의 간절한 마음. 그 마음에 부응해 딸이 손으로 그리는 하트. 두 사람의 모습이 클래식의 선율보다 더 아름다웠다. 여자친구를 밀친 봄에게 말한다. 무엇보다, 승리를 원하고, 실패와 우울감에 빠졌던 나에게 말한다. 꼭 이겨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진다는 생각보다 나누는 마음이 건강하다고. 나의 뜻을 꺾겠다고 얄팍한 마음을 가졌더라도, 더 큰 것을 느끼고 배울 수 있다고. 공연이 끝나간다. 온 마음을 다해 박수를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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