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만으로, 충만한 남자
잠이 오지 않았다. 며칠째인지 세기도 어려웠다. 분명히 어두우면 편히 잠들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칠흑 같은 곳에 누우니까 오히려 눈이 말똥말똥했다. 이사 오기 전의 집을 떠올렸다. 넓은 창에 들어오는 가로등 빛이 그리웠다. 지금의 창문은 8분의 1 정도는 될까. 그마저도 나무에 가려서 새어 들어오는 빛은 한 줌이 안 되었다. 그렇다고, 초등학생 때처럼 부모님에게 가고 싶지도 않았다. 내 방보다 더 좁은 곳에 펴 놓은 요에 내가 누울 곳은 없었다. 나에게 넓은 방을 내어주고, 자신들은 쪽방에서 잠드는 사랑을 그때는 몰랐다. 그저, 아버지와 어머니를 원망만 했을 뿐. 상영관에 처음 들어갔을 때처럼, 눈을 여러 번 감았다 떴다. 이 어둠에 익숙해지기를 바라면서. 그리하여, 긴 밤에 편안히 잠들기를 바라면서.
J의 집은 유난히 밝았다. 환경미화 준비로 모인 친구의 보금자리에 주눅이 들었다. 아파트도 복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이어지는 복도에 마법처럼 방이 계속 나왔다.
“다음에는 반장 집에도 가자!”
나의 속도 모르고 말하는 J가 괜히 야속했다. 환영의 의미로 친구의 어머님이 주신 오렌지 주스 때문일까. 얼마 지나지 않아서 소변이 급했다. 화장실을 다녀온 개운함보다, 이어서 화장실을 사용한 J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당혹감이 훨씬 컸다.
뭐야! 김지현!
오줌 냄새 너무 심해! 뭘 먹은 거야?
“……. 피곤해서 그런가.”
그 순간부터였다. 초등학생 때 오줌싸개를 놀리고 피하듯이, 친구들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천천히 바뀌었다. 함께 학급 임원을 맡았던 J와 Y가 둘이서만 대화하는 횟수가 늘었다. 장난이 섞인 꺼지라는 농담이 전혀 웃기지 않았다. 처음 당해보는 따돌림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다. 애꿎은 진한 소변 냄새의 이유를 찾듯이, 말수는 줄고 생각만 늘었다. 도대체 내 친구는 왜 나를 그렇게 밀쳐냈을까.
“쉬 마려.”
소변을 말하는 아이의 말이 반갑다. 봄(태명)이 배변 연습을 하기 시작했다. 서서 보는 시도를 한다. 변기에 생각보다 많은 양의 오줌이 찬다. 색깔이 꽤 노랗다. 자신이 만들어 낸 것을 신기한 듯 골똘히 쳐다본다. 씨익 웃으면서 일상에서 내가 했던 말을 그대로 한다.
쉬가. 노란색이네. 비타민을. 먹었나?
생후 33개월의 웃음을 중학생이었던 나도 보일 수 있었을까. 지나고 나면, 별일이 아닌 것으로 우리는 참 많이 신경을 쓰면서 산다. 소변 냄새가 진하다는 놀림도. 나를 빼고 수군거리는 목소리도. 욕이 섞인 농담도. 웃음으로 넘기지 못했던 1999년의 나를 토닥인다. 시원하게 볼 일을 본 아이를 칭찬했다.
쉬도 많이 하고! 정말 잘했어!
단순히 아이의 배변에만 박수를 친 것이 아니었다.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혼자 하는 것에 아낌없는 찬사를 전한 것이다. 그제야, 내가 따돌림당했던 이유를 어렴풋이 깨달았다. 냄새가 난다고 나를 제외시킨 것이 아니었다. 역할분담을 한답시고 친구들에게 명령조로 말했다. 환경미화의 게시판을 내 마음대로 꾸미려고 했다. 다른 임원인 친구들의 의견을 귓등으로 들었다. 그들은 자기 잘난 맛에 사는 중학교 1학년 학생이 재수가 없었던 것이다. 해우소에 다녀온 것처럼 개운해졌다. 아이와의 시간 덕분에 과거의 나를 만났다. 그때의 자신을 똑바로 바라본다. 반성으로 배운 겸손을 간직한다. 힘들었던 지난날은 흘려보내버린다. 봄의 성장을 칭찬할 앞으로의 시간을 기대한다. 변기에 물을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