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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폭 운전자가 타고 있어요

가족을 새롭게 만났다

by 봄아범


나는 유턴을 할 수 있었다. 내비게이션이 알려준 그대로만 가면 되었으니까. 주말 오후 1시에 올림픽대교를 건너 올림픽대로를 거쳐야 하는 경로. 실시간 교통상황을 확인할 때마다 더 빨간 쪽은 올림픽대로였다. 붉은빛은 나에게 하는 경고처럼 들렸다. 지현아. 여기는 틀렸어. 강변북로를 선택해. 때문에, 막히는 올림픽대로를 안내하는 내비게이션 속 여성의 음성이 낯설었다. 당연히 듣지 않았다. 역시 여자 말을 잘 들어야 했다. 강변북로를 진입하자마자 빨간 동그라미가 경로에 찍혔다. 교통사고. 위치는 영동대교 한복판으로 여겨졌다. 아니나 다를까, 사고지점 즈음부터 정체가 시작되었다. 이대로라면 다리를 건너기 어려워 보였다. 우회로를 선택했다. 막히는 게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정체를 빠져나가려는 자. 자기 차선과 순서를 지키려는 자. 주고받는 클락션 속에서 나는 양보하는 자였다. 봄(태명)에게 동화책으로 읽어 준 문장 덕분이었다.


무슨 일이든 순서가 있어.
빨리 가는 것보다 같이 가는 게 중요한 거야.


현실이 동화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 양보를 하다 보니까 양보만 하고 있었다. 내가 양보받지는 못한 채 같은 자리에서 5분을 머무니까 조바심이 났다. 좌측 깜빡이를 키는 것으로 부족해 차창을 내렸다. 손을 내고 흔들어도 차선 변경이 어려웠다. 옆 차에 바짝 붙어야 비로소 들어갈 공간이 생겼다. 한때 유행했던 말이 핸들을 뒤흔들었다.


unnamed.jpg 정신 차려! 이 각박한 세상 속에서!


그때부터 양보는 없었다. 앞 차의 뒤 범퍼와 키스할 정도로 바짝 붙었다. 내 앞으로 오려는 자동차를 향해 거세게 경적을 눌렀다. 사고 현장을 지나 영동대교의 끄트머리에 다다라서야 잔뜩 힘을 준 어깨가 편해졌다. 그제야, 아내의 나직한 세 글자가 들렸다.


자기야…….


그녀는 실내 천장에 달린 어시스트 핸들을 꽉 잡고 있었다. 룸미러를 통해 굳어있는 그녀의 표정과 긴장한 봄의 얼굴에서 걱정과 실망감을 읽었다. 두 사람 너머 붙어 있는 스티커의 문구가 새삼스러웠다. 아기가 타고 있어요. 주변 차량은 이렇게 읽지 않았을까. 난폭 운전자가 타고 있어요.




거친 운전의 역사는 2002년 월드컵 즈음인 학생 때부터 시작되었다. 집에서 학교. 학교에서 학원. 학원에서 집. 오며 가는 길을 버스로 다녔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시간이 제일 아까웠다. 지금처럼 지도 애플리케이션이 도착 시간을 알려주는 시스템도 없었다. 언젠가는 오겠지만, 지금은 오지 않는 버스가 야속했다. 눈앞에서 버스를 놓치면 이상하게 울화통이 터졌다. 자동차로 다니는 사람에게 뒤처지는 기분이었다. 학생 할인 특가로 자전거를 샀다. 나 홀로 레이싱의 서막이 열렸다. 허벅지가 터져라 질주하면서 인도와 갓길을 오갔다. 지선 버스의 뒤꽁무니를 따라가도, 배기가스를 배부르게 먹어도 상관없었다. 귀를 때리는 버스 기사의 경고 클락션을 무시한 채 앞질렀다. 마침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는 참이었다. 아. 보행자와 자전거에게는 녹색불이지. 뭐가 중요할까. 내가 먼저 가는 게 제일이다. 사거리를 가로질렀다. 다급한 호루라기 소리가 들렸다. 제복 가슴팍에 박힌 글귀에 얼굴이 굳었다. 교통경찰. 설마 자전거에게 과태료라도 부과할까. 그는 브레이크를 잡고 멈춘 나에게, 이런 경우를 처음 본다는 표정으로 외쳤다.


학생!
무단횡단이랑 역주행을 같이 한 거 알고 있어?




나만 역행하는 기분이었다. 반지하 집에 들어가려면 계단을 내려가야만 했다. 떡볶이와 어묵을 포장했을 때는 황급히. 소변이 급할 때는 다급히. 시험을 못 봤을 때는 힘 없이. 내려가기만 했다. 친구들의 방향과 달랐다. 계단이나 엘리베이터로 올라가서 각자의 대문을 여는 그들이 부러웠다. 시작도 안 했는데 지는 게임에 참여한 것 같았다. 왜 나만 내려가야 하나. 화가 났다. 엉뚱한 도로에다가 화풀이를 했다. 길에서만큼은 지고 싶지 않았다. 자동차의 경적을 배경 음악쯤으로 여겼다. 경찰의 훈계에도 고라니와 같은 주법은 변하지 않았다.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집에 도착했다. 난간에 주차하는 자전거 바퀴조차 아래를 향한다. 큰 한숨을 쉬면서 자물쇠를 채우는데 러닝셔츠만 입은 B2호 주민의 인사가 들렸다.


안녕? 공부 열심히 해라.


B1호에 살면서 101호나 202호만 부러워했지, B2호를 쳐다본 적이 없었다. 집 앞 마트까지 걸을 때 발 높이에 있는 수많은 반지하 가정을 눈여겨본 적이 없었다. 이웃의 덕담이 단순히 학업을 독려하는 말로만 그치지 않았다. 위만 바라보았던 나에게 전하는 조언이었다. 너 혼자만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나도 있다고. 혼자가 아니라고.




영동대교를 건너도 여전히 막혔다. 2002년의 마음으로 주변을 다시 둘러보았다. 나만 느림보가 아니었다. 도로는 서로 먼저 가려고 하는 마음을 가진 거북이의 모임이었다. 누구나 천천히 갈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기 어려워 보였지, 다리를 건너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화가 나는 일이 아니었다. 봄에게 습관적으로 한 말을 곱씹는다. 일찍 도착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 혼자만 고생하는 것이 아니라는 위안. 목적지에 도착했다. 나의 모습을 돌아본다. 실수를 인정하는 것부터 다시 시작한다. 함께 온 아내와 아이에게 말한다.


미안해.
난폭운전을 견디느라 고생 많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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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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