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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관이란 게 더는 무서운 게 아니더군

가족을, 새로이 만나는 청년

by 봄아범


누구나 집중이 잘 되는 장소가 있다. 나에게는 대중교통이 그렇다. 모두가 피곤한 출근길 지하철은 구립도서관 제1열람실과 다를 게 없다. 대부분 꽉 차 있는 좌석에 두어 개 비어 있는 공간을 차지하면 그 시간이 참 소중하다. 도착역과 정거장은 마감이다. 이번 역은 을지로 3가. 을지로 3가 역입니다. 직장에 가까워지는 안내 방송이 들릴 때까지 응축해 놓았던 마음을 쏟아낸다. 결국 글은 내가 쓰는 것이 아니다. 마감이 쓴다. 종종 들리는 사람들의 대화는 오히려 집중력을 더 높여준다. 때문에, 출근길과 퇴근길에 글을 쓰는 것은 습관이 되었다. 그럼에도, 문장의 흐름이 막힐 때가 있다. 다음 문장의 단어를 골몰하며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낯선 남자의 손가락이 입에 가 있었다. 삼성전자의 주가가 회복되기 전에 팔아치워 버렸던 걸까. 손톱을 씹기 시작한다. 한 일자로 입을 앙 다문 것은 모바일 게임 승급전이 잘 안 풀리는 모양인 걸까. 그는 언제부터 잘근잘근 손톱을 만나는 습관이 생겼던 걸까. 엉덩이를 붙이자마자 노트북을 여는 나를 향해. 연신 손가락과 손톱을 넣는 그를 향해. 1999년에 데뷔한 모던 록 밴드 롤러코스터가 노래를 부른다. 습관이란 게 무서운 거더군. Bye-Bye. Bye-Bye. 헤어진 연인에게 습관적으로 인사를 하며, 이제는 정말 보내줘야겠다는 다짐이 담긴 노랫말. 손가락을 넣지 말아야지 하면서도, 헤어지지 못하는 지독한 관계. 처음 보는 남자가 그랬다. 생후 41개월의 봄(태명)이 그랬다. 그리고, 초등학교를 다니는 내가 그랬다.




심심했다. 손가락과 손톱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몇 번 같이 놀다 보니까, 손톱을 3M 테이프로 입에 붙여 놓은 것 아닐까 싶게 뜯어댔다. 손톱을 자를 일도 없었다. 앞니의 끝이 손톱에 갈려 작은 톱니바퀴 모양을 보였다. 그만하라는 어머니의 잔소리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도대체 왜 그러냐는 질문도 귓등으로 들었다. 솔직히 이유를 몰랐다. 패턴은 있었다. 주어진 숙제를 안 했을 때나 일기를 밀렸을 때. 먹지 말라던 왕꿈틀이 젤리를 한 봉지 다 비웠을 때. 숙제는 했냐, 일기는 썼냐, 뭐 먹었냐는 질문을 받을까 봐 꿈틀대는 마음을 손톱으로 진정시켰다. 어린 학생답게 도서관에서 읽은 전래동화가 손톱이 입에 향하는 걸 멈추게 했다. 주인공이 아무렇게나 둔 손톱을 들쥐가 먹는 도입. 그와 똑같은 사람으로 변한 들쥐와 싸우다 주인공이 집에서 쫓겨나는 전개. 주인공이 데려간 고양이가 가짜 사람을 물어 들쥐인 게 밝혀지며 죽어버리는 마무리. 손톱, 발톱을 잘 버리자는 교훈을 가진 이야기가 하나도 교육적이지 않았다. 들쥐처럼 내가 내 손톱을 먹으면 내 몸에 내가 자라나지는 않을까. 내 위장에서부터 새로운 내가 태어나서 커진다면 언젠가는 위를 터뜨리지 않을까. 내가 터지고 새로 생기는 나는 나인 것인가. 내가 아닌 것인가. 상상 그 이상의 상상력을 가진 덕분에 전래동화는 잔혹동화로 바뀌었다. 그제야, 황급히 손가락 끝에 딱딱한 조각을 손톱깎이에게 양보했다.




37개월 아기에게 전래동화가 들릴 리는 없었다. 요즘 봄(태명)의 손가락 끝은 초등학생이었던 나와 닮아있다. 손톱을 깎아줬던 게 언제였나. 뜯어먹다가 날카로워진 부분이 낮잠을 자는 동안 얼굴을 할퀴기를 여러 번. 그럴 때마다 손톱 칼로 모난 곳을 갈아주었다. 손가락을 빠는 걸로 시작해서 손톱까지 흐르는 섬세하고도 정교한 작업. 주로 어린이집을 하원하고 집으로 향하는 차 안에서 이루어졌다. 잔혹동화로 소년의 습관이 멈추었듯이, 아기의 언어로 행동을 멈추게 하고 싶었다.


“손톱에는 병균 친구들이 많아. 병균이 몸에 들어가면 아야 해. 그럼 병원에 가야겠지? 구급차 앨리스가 지나간다! 저 차를 타게 되는 거야. 빼야지. 아빠 말 안 들리니."


안 되겠다. 지금 바로 응급실로 가자!


아빠의 으름장에 그제야 손을 입에서 뺀다. 잠깐의 한숨으로 상황을 진정시키고 다시 운전에 집중한다. 안전 운전의 기본은 전방 주시다. 뒷좌석 카시트에 앉은 아기를 매 순간 확인하기는 어려웠다. 몇 분 후, 룸미러를 통해 손가락을 다시 입으로 넣는 아이가 눈에 들어온다. 출발할 때 보인 아이를 향하는 부드러운 시선이 날카롭게 변한다. 봄은 금세 주눅이 든다. 훈계와 협박으로 차량 내 공기가 무거워진다. 아빠와 아이의 마음에 병균 친구들이 찾아온 것 같다. 어떻게 하면 봄이 이야기하는 ‘아빠의 단호한 말투’로 앨리스가 오지 않는 상황을 만들 수 있을까.




아이의 단어만 사용했지, 아이의 마음을 바라보지 못했다. 아빠가 된 지금의 상황만 생각했지, 내가 소년이었을 때 감정을 응시하지 못했다. 1997년의 소년 김지현은 불안했다. 숙제를 안 한 것을 들킬까 봐. 일기를 안 써서 손바닥을 맞을까 봐. 왕꿈틀이를 먹고 다시는 젤리를 먹지 못할까 봐. 비로소, 아이에게 묻는다.


“불안해?”

“응.”

“왜 불안할까?”

아빠랑 멀리 있으니까.


아기의 마음을 물었더니, 부모의 행동을 말한다. 함께 놀고 싶은데, 물리적으로 떨어져 있는 아빠와의 거리가 답답했을 거다. 매일 같은 풍경에 흘러나오는 동요로만 버텨야 하는 시간이 고되었을 거다. 잠깐 정차할 때마다, 퇴근했음에도 쌓이는 업무를 처리하느라 스마트폰으로 단절된 아빠가 느껴졌을 거다. 그제야, 노려보는 시선을 거둔다. 정차할 때마다 아이를 바라보고 손을 잡는다. 이어서 약속한다. 함께 할 때는 휴대전화와 잠깐 헤어져 있기로.




봄은 여전히 손가락을 입에 넣는다. 하원하는 중에 아이와 눈이 마주친다. 잘못된 습관인 걸 아는 봄이 슬그머니 손을 입에서 뺀다. 나는 물개박수를 치며 칭찬을 한다.


잘했어! 그렇게 조금씩 헤어지면 되는 거야!


주눅 들었던 아이의 표정이 이내 안도감으로 바뀐다. 손가락을 입에 넣고, 화를 냈던 시간이 입에서 손톱을 거두고, 박수를 받는 놀이가 된다. 막히는 하원길에 조금은 숨통이 트인다. 신호등이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브레이크를 꽉 밟은 발에 힘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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