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매치 포인트>를 보고
스포일러가 다분합니다
이 영화의 평에는 주로 운 좋은 크리스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럭키 크리스는 자칫 스포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뺀다면 영화 이야기를 할 수가 없다
나 역시 최근 뒤늦게 이 영화를 보게 되면서 간단한 한줄평들을 통해 스포를 당하고 말았는데
그럼에도 두 시간이 조금 넘는 동안 앉은자리에서 한 번도 움직이지 못하고 우디 앨런의 이야기에 잠식당하고 말았다
얼핏 삶에 치열하게 대응하는,
시골청년의 부유층을 향한 레벨업 고군분투,
혹은 사랑(love)과 욕망(lust) 사이를 오가며 모두 즐기는 파렴치한 유부남에게 망할 운(luck)이 따라붙은 찝찝한 이야기로 결국 크리스만 해피엔딩인 스토리로 보일 수 있다
크리스처럼 비관적인 동시에 낙천적인, 인생에 자조적인 태도의 주인공이 있을까
사랑도 욕망도 열심히 쫓는다
쫓는다기보단 그것 역시 따라붙었달까
마치 결말로 다다른 것이 결국 운이듯
사랑도 욕망도 행운인지 불운인지 다가왔다
상류층 톰과 친해지고 그의 동생 클로에의 맘에 들어, 사윗감으로 눈도장을 찍게 되고 장인어른의 회사에 취직하며 고공 승진하는 사이 처음부터 눈에 들었던 톰의 전 약혼녀 노라와의 감정에 휩쓸린다
이 모든 것은 비웃기 위해 쓰인 수단처럼 불륜도 살인도 덤덤하게 지나간다
하지만 상황에 몰입시키면서 쫄리는(?) 감정은 어쩔 수 없다
크리스의 운에 대한 스포를 당해서 안 들키겠지... 잘되겠지.. 싶었지만 당최 어찌 해결이 될지 이 상황을 어찌 크리스가 헤쳐나갈지 이야기를 풀어나갈 의무가 없는 나조차 조마조마했다
결론은 정말 운이었다 순도 100%의,
극단적인 상황 속에서 정신없이 증거인멸을 하던 크리스가 흥분하며 내던진 반지에 슬로가 걸릴 때
모두는 직감한다 저 반지가 크리스의 운명을 결정짓는다는 것을
마침내 반지가 강물 속으로 빠지지 않는 결정을 지었을 때
익숙하게 내려지는 판단은 '저 반지로 인해 크리스가 곤란해지겠군' 일 것이다
미약하게나마 죄책감을 느끼는 크리스에게 노라와 이웃집 할머니가 나타났을 때 그 반응 또한 우습다
어떤 경험으로 인해 동기부여를 강하게 받아 주장이, 선악이 확실한 캐릭터들에 비해선 훨씬 현실적이다
상황이 그렇게 됐지만 그것만이 내 살길이었고, 어찌 되어 들키게 되더라면 그 대가를 받겠다
그게 정의이고 그렇담 삶에도 아직 정의가 있는 거니까
그 대가를 위해 형사의 꿈에 계시(?)가 내려졌지만 크리스가 흥분하며 내던진 반지가 정의를 박살 낸다
주인 없이 나뒹군 반지는 마약쟁이 손에 들어가게 되고 그가 살해당하면서 반지는 형사들에게 증거로 수집된다
단숨에 모든 의심과 누명이 사라지며 다시 부유하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게 되는 크리스는 클로에가 그토록 바라던 아이를 낳는다
금수저로 태어나며 운과 함께 평생을 살아온 클로에의 오빠 톰은 아이에게 축복해주며 말한다
'훌륭한 것도 좋지만, 운이 장땡이에요'
크리스는 안도의 한숨을 쉴까 아님 평생을 죄책감이란 감옥에 살까
클로에는 크리스의 아이와 행복한 가정으로 살까 아님 그녀를 속이고 부를 누리고 자하는 허수아비와 살까
노라는 그저 욕망만 쫓은 대가를 치른 걸까 아님 운이 없어 사랑과 욕망에 바스러진 걸까
사랑도, 욕망도 아닌 운
인생은 어디까지가 내 손안에 있는지 알 수 없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내가 정할 수 있는지도 물론 알 수 없다
정해져 있는지도, 본인이 정해나가는 건지도 알 수 없다
한 치 앞을 모르는 인간이란 존재는 모르는 그 모든 것들을 '운'이라 부른다
그것이 내게 행운이었는지 불운이었는지도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