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와 똑같은 오늘

성실한 관성이라는 감옥, 시스템 로그에 찍힌 에러 메시지

by 행복한자유인

지난밤 나는 내게 주어진 현실을 인식하고 내적 동기 회복을 위해 다짐했다.


하지만,

다음 날 아침 나는 이전과 똑같은 느낌으로 일어나 회사로 향했다.


소프트웨어 개발 분야에서 레거시 코드라는 것이 있다. 오래된 코드다. 한때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돌렸던 핵심 로직일 수 있고, 사업적인 성공을 이끈 코드다. 역설적이게도 환경과 기술이 변하면서 그 코드는 시스템의 확장을 막는 기술 부채가 된다. 그 레거시 코드를 건드리는 것은 쉽지 않은 선택이다.


지금까지,

나는 지금의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준 사고의 방식, 소통의 스킬, 생활 태도가 있다. 성공했던 경험도 있고 가치 기준도 있다. 정답이라고 믿는 의사 결정 구조도 있겠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고 재미를 느끼고 최적화하고 시간이 흐르고 나면,

하나의 방식, 즉 그 일을 이렇게 해왔다고 하는 자신만의 노하우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단단해진 최적화 이후에는 새로운 변화와 방식을 도입하는데 방해가 된다. 특히, 새로운 사람들과 협업하거나 좀 더 젊은 친구들과 일하게 되면 문제가 생긴다.


‘이게 기본이지, 이렇게 해야지,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는데…’라며 내 방식이 정답인 것처럼 행동한다.


그 최적화가 다른 이가 보기엔 답답하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변화가 어렵다. 변화를 지향하고 변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나 자신이 변하지 않을 때가 많다.


유명한 강연자의 발표를 듣는다. 발표자의 멋진 인사이트를 느낀다. 무언가에 홀린 듯 달라진 나를 기대하지만, 어느 순간 똑같은 자신을 경험한다. 그리고 또 다른 강연을 찾아 듣는다. 강연자의 통찰과 경험이 내 것이 되지 않고, 무한 반복으로 제자리에 있게 된다. 일시적 고무 현상이다.


다짐과 선언이 중요하지만, 금세 잊히는 경우도 많다. '작심삼일(作心三日)'


내 삶의 문제를 이해하고, 문제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해결책을 찾은 것처럼 기대한다.

그러나 나는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보내고 있다.


가장 최적화되고 익숙한 방식으로 일하고 있다. 성실하게 일하고 있는데 마음은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다. 예전의 만족감은 더 이상 느껴지지 않는다.


떠오르는 단어들이 있다.

경로 의존성(Path Dependency), 관성(Inertia, 慣性), 권태(Boredom, 倦怠).


이 단어들을 살펴보면, 비전 상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내가 운영하는 ‘나’라는 시스템은 무척이나 안정적이지만 확장이 멈춘 상태이다. ‘성실한 관성’이라는 감옥에 갇혀있는 건 아닐까?


내적 동기 회복을 위해 다짐했지만, 나의 의존성, 관성의 힘이 나를 막는다. 그리고 곧 뒤따라 오는 것들이 있다. 권태라는 이름으로,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무기력이라는 이름으로. 정체라는 이름으로.


그래서, 희망적이다.

비전 상실은 실패가 아니다. 다음 성장을 위한 공백기이다.

공백기에는 잡음이 들릴 수 있다. 우리는 잡음에 신경 쓴다. 한번 들리기 시작하면 계속 들린다.


떠오르는 단어를 추가한다.

불안(Anxiety), 무기력(Lethargy), 정체(Stagnation).


이 단어들은 내 삶의 시스템 로그에 찍힌 에러-이렇게 부르고 싶지는 않지만- 메시지들이다.


그래서 희망적이다. 역설적이게도.

잡음이 들린다는 것은 내 시스템이 아직 살아서 움직이며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증거다. 역설적이게도.


어제와 똑같은 오늘을 보내고 있다는 자각, 그 자체가 이미 기존의 관성에 균열을 내는 첫 번째 '외력'이다.


비록 아침의 발걸음은 이전과 같았다.


하지만,

내 안의 로그를 읽어내기 시작한 나는 이미 어제의 내가 아니다.


쌓인 로그들을 살펴보면서 비전 상실이라는 여정을 흥미롭게 진행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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