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18] 사람은 평가가 있는 곳에서 달라진다

우리는 왜 평가에 민감해지는가

by 봄날의 초원

회사를 다니다 보면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보게 된다.

문제가 생기고, 누군가 원인을 찾아야 하는 순간이 온다.

그때 사람들의 태도는 놀랄 만큼 빠르게 달라진다.


조금 전까지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하던 사람이

갑자기 말을 고르기 시작하고,

자신이 한 일과 하지 않은 일을 나누고,

설명의 순서를 조심스럽게 정리한다.


누가 먼저 말하는지,

누가 어떤 표현을 쓰는지,

누가 어디까지를 자기 일이라고 하는지에 따라

분위기는 미묘하게 바뀐다.


처음에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왜 이렇게 쉽게 책임을 피하려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자존감이 낮아서 그런 것일까 생각했다.

자기 잘못을 인정하면 스스로가 무너질 것 같아서,

그래서 다른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는 것 아닐까 생각했다.


또 어떤 경우에는 완벽주의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수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성향,

흠을 남기고 싶지 않은 마음.


그런데 회사라는 곳에서 오래 지내다 보니

조금 다른 이유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가가 시작되는 순간,

사람은 달라진다.


회의는 기록으로 남고,

보고는 문서가 되고,

결과는 결국 사람에 대한 판단으로 이어진다.


그 순간부터 중요한 것은

무엇이 사실인가 보다

어떻게 보이는가가 된다.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보다

그 선택이 어떤 평가로 돌아오는지가 먼저 계산된다.


이건 특별히 비겁해서라기보다

어쩌면 아주 자연스러운 반응일지도 모른다.


사람은 인정받고 싶어 한다고 말하지만

조금 더 정확히 말하면

위험해지고 싶지 않아 한다.


평가가 나빠지는 것,

능력이 부족하다고 보이는 것,

조직 안에서 신뢰를 잃는 것.


이런 가능성이 보이는 순간

사람은 스스로를 지키는 쪽으로 움직인다.


문제를 해결하는 방향이 아니라

문제와 거리를 두는 방향으로.


그래서 사소한 일에도 설명이 길어지고,

필요 이상으로 책임의 경계가 그려지고,

아무도 묻지 않은 이야기까지 먼저 꺼내게 된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평가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그렇게 된다.


생각해 보면

회사만 그런 것도 아니다.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순간,

우리는 모두 조금씩 연기를 시작한다.


더 괜찮은 사람처럼 보이고 싶고,

덜 부족한 사람으로 남고 싶고,

가능하면 문제와는 상관없는 위치에 있고 싶어진다.


그 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 역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가끔은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는 정말 인정받고 싶어서 이렇게 애쓰는 걸까.

아니면 인정받지 못할 때 생기는 불안을

견디기 싫어서 그러는 걸까.


평가는 사람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어쩌면 사람을 다르게 행동하게 만드는 조건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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