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팀24] 조용한 사람은 왜 작게 보일까

이미지는 말로 만들어지고, 기록으로 바뀐다

by 봄날의 초원

어느 시점부터 사람의 말보다 결이 먼저 보인다.

특별히 눈치가 빠른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반복해서 보이는 것들이 있다.


조직에는 비슷한 듯 다른 두 사람이 있다.

잘 모르는 것도 거리낌 없이 풀어내는 사람과

아는 것만 말하려는 사람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은 막히지 않는다.

빈틈은 말로 메운다.

듣는 쪽은 고개를 끄덕인다.


말을 아끼는 사람은 자주 멈춘다.

확실한 것만 꺼낸다.

확신이 없으면 말하지 않는다.


둘 중 무엇이 더 낫다고 하기는 어렵다.

선택이 다를 뿐이다.

한쪽은 영향력을 넓히고

다른 한쪽은 오류를 줄인다.


조직은 전자를 더 쉽게 알아본다.

가까이 보지 않으면

말이 매끄러운 사람이 더 유능해 보인다.


결과보다 설명이 먼저 보인다.

설명이 되는 사람이 기억에 남는다.

그렇게 만들어진 인상은 오래간다.


시간이 지나면 세부는 흐려진다.

남는 것은 대체로 이미지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에 대한

대략적인 결만 남는다.


문제는 그 이미지가

말의 양에 따라 쉽게 기울어진다는 점이다.

조용한 사람은 실제보다 작게 보이고

말이 많은 사람은 실제보다 크게 보인다.


그 이미지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흐릿하지만 오래간다.


그래서 기록이 필요하다.

말을 많이 하지 않아

제대로 드러나지 않은 사람의 일을

다시 꺼내기 위해서다.


이미 굳어진 이미지를

조금씩 흔들기 위해서다.


가만히 두면

그 사람이 한 일은 점점 작아진다.

그게 그대로 남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다.


나는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방식을 바꾸었다.


성과를 기록하게 하고

지난 일을 문서로 정리하게 했다.

그리고 그 기록을 기준으로

당사자가 직접 말하게 했다.


지난 금요일에는

팀원에게 한 해의 일을 정리해 보라고 했다.

시간이 지나면 대부분 잊힌다.

잘한 일도 함께 사라진다.


기록하지 않으면

없었던 일처럼 남는다.


조직은 공정하지 않다.

성실함은 저절로 드러나지 않는다.


말이 많은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보인다.

조용한 사람은

드러내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미 보이는 사람에게 빛을 더하지 않는다.

대신 보이지 않던 사람의 일을 꺼내

그쪽으로 시선을 옮긴다.


빛을 받지 못하던 사람에게

빛이 닿게 하는 일.


나는 그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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