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May 10. 2023

혼자 훌쩍 떠난 여행

존재 그 자체의 행복

호주에 온 지 벌써 두 달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동안 참 많은 일들이 있었는데 처음으로 여유가 생겨 혼자 여행을 가기로 결정했다. 여행을 통해 지난 두 달을 회고하고, 앞으로의 목표를 점검해 보려고 한다. 1박 2일 짧은 여행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요즘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감정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것들을 걱정하고, 기대하고 있는지. 나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많다. 나랑 하는 데이트라니! 여느 데이트보다 떨리고 설렌다.




아침 일찍 일어나 바이런 베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번 여행은 나에게만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에 휴대폰을 방해 금지 모드로 설정했다. 그리고 여행 동안에는 구글 맵과 유튜브 뮤직 기능만 사용하기로 결정했다. 휴대폰이 없어 심심했던지 나는 곧바로 잠이 들었다.


눈을 뜨자 파아란 하늘과 연두색 나무들이 가득한 작은 도시가 보였다. 바이런 베이였다. 작은 가게들이 오밀조밀 이어진 길을 걷다 한 브런치 카페를 발견했다. 흘러나오는 노래도 좋고, 앉아있는 사람들이 다 행복해 보였다. 점심을 위한 완벽한 장소라는 생각에 얼른 가게로 들어갔다. 촉은 지난 세월이 만든 빅데이터라고 했던가. 내 빅데이터는 구글 리뷰 못지않게 훌륭했다.


그러고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 피크닉을 위해 바다로 향했다. 바다가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돗자리를 편 뒤 책을 읽고, 사람들을 구경하고, 한참 동안 파도를 바라보았다. 온전한 자유를 느끼고 싶어 윗도리를 훌렁 벗어던지고 태닝도 했다. 수영복도 슬리퍼도 선크림도 준비되어 있지 않았지만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한 두어 시간이 지났을까. 다음 행선지를 고민하다 관광 명소는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 아주 맛있는 쿠키를 판다는 가게, 90% 확률로 돌고래를 볼 수 있다는 등대,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다는 농장. 여기까지 와서 안 간다니 아쉽긴 했지만 끌리지 않았달까.


대신 여러 가게를 구경하면서 self 생일 축하 파티를 위한 도구들을 샀다. 끝장나는 디저트, 귀여운 와인과 고블렛 잔, Birthday Girl에게 어울리는 연두색 나시와 형형색색 초까지. 그러고는 밤바다를 구경했다. 하염없이 비워지고 채워지는 파도가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는 생각을 했다.


호스텔에 들어가 샤워를 하고, 혼자만의 파티를 시작했다. 평소 같았으면 다른 친구들에게 먼저 말을 걸었겠지만, 오늘은 온전히 나에게만 축하받고 싶어 가장 구석에 위치한 작은 테이블로 향했다. 속으로 중얼중얼 소원을 빌고 수줍게 외쳤다.

“생일 축하해! 사랑해!”


특별하지도, 대단하지도 않은 여행이었다. 여행을 떠날 때 다짐했던 목표들을 다 이루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존재하는 것 그 자체로 충분히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우리는 종종 잘 doing 하느라 잘 being 하는 것을 놓치며 산다. 매일 to-do list를 점검하지만 요즘 내가 어떤지, 언제 행복한지, 어떤 생각을 하는지는 살피지 않는다.


나는 잘 being 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자주 행복하고, 자주 웃는 사람이 되고 싶다. 그래서 결심했다. 앞으로 한 달에 한 번, 존재 그 자체의 행복을 위한 안식일을 가지겠다고.

이전 08화 나를 살게 하는 다정함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