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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May 07. 2023

나를 살게 하는 다정함

나의 이방인 친구들과 함께 하는 생일 파티

5월 5일은 나의 생일이었다. 나도 나이가 든 건지 더 이상 생일에 설레지도, 특별한 하루를 기대하지도 않았다. 어쩌면 축하받을 사람이 많이 없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아차린 똑똑한 뇌가 내가 실망할 것을 염려해 기대하지 않도록 내 뇌를 작동시켰는지도 모르겠다.


내 생일 계획은 이랬다. 어학원 친구들과 함께 한국 식당에서 저녁이나 먹고 헤어지는 것. 이것마저도 사실 내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가는 건 아니었다. 타이밍이 좋게도 내 생일이 어학원에서의 마지막 날이었고, 어학원에서는 다 같이 한국 식당을 가는 액티비티가 있었다. 그걸 기회 삼아 친구들과 맛있게 한식이나 먹자 했던 것이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생일이라는 말도 굳이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몇몇 친구들이 내 생일이 5월 5일임을 알게 되었다. 친구들은 나 몰래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른 채 조용하고 담담하게 생일을 맞이할 준비를 했다. 혼자 미리 생일 파티를 하고, 나한테 보내는 편지도 썼다.


생일이 다가오자 갑자기 이번 주 일정을 묻는 친구들이 많았다. 먼저 같이 일하는 친구 엘라와 치즈카가 그랬다. “Do You have any plans today? If you okay, We wanna hang out with you.” 갑자기 밖에서 보자고? 얼떨떨한 마음에 왜 그러냐 묻자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To celebrate your birthday!”


그때의 감정은 표현하기 어려운, 처음 느껴보는 어떤 것이었다. 설렘, 얼떨떨함, 감동적임, 걱정, 행복함, 울고 싶은. 이런 온갖 것들이 한 번에 섞인 그런 감정이었다.


그날 밤 우리는 타이 음식점을 갔다가 펍을 갔다. 술이 약한 나는 두 잔의 술을 마시고는 얼큰하게 취해 치즈카의 남자친구 차를 타고 집으로 실려갔다. 내가 얼큰하게 취한 이유는 술 때문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그 자리가 편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날 나는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이르는 어린아이처럼 내 감정을 토로했다. “사실 나는 이럴 때 힘들고 이럴 때 너무 속상해. 사실 가끔 네가 하는 말이 너무 빨라서 못 알아들을 때도 있었어! 그렇지만 항상 도와줘서 너무 고마워.” 부족한 영어 실력으로, 정돈되지 않은 말들로 내 감정을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예상했다는 듯이 내 이야기를 들어주며 괜찮다고 위로해 주었다. 그리고 “우리는 너의 친구야.”라고 웃으며 말해주었다.


생일 당일에는 아침 일찍부터 잉그리드 집으로 향했다. 그 전날 잉그리드로부터 한 통의 DM을 받았던 것이다.

“Judy, I heard tomorrow is your birthday. I wanna invite you to my house.”


디저트도, 음식도, 선물도 아무것도 가지고 오지 말라는 말에 고민하다 꽃다발을 한 아름 샀다. 초대해 줘서 고맙다는 말을, 내 생일이라는 이유로 시간을 내어줘서 고맙다는 말을 꽃에 담았다.


둘이서 먹는 간단한 점심을 상상했던 나는 잉그리드 집에 도착한 순간 무장해제되어 또다시 녹아버렸다. 잉그리드는 내 생일 파티를 만들어주고 싶어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수소문하고, 레시피를 찾고, 친구들을 부르고, 집을 정리했던 것이다. 그 정성의 시간들이 눈앞에 펼쳐져서 어떻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 할지 몰랐다.


"만난 지 얼마나 됐다고 다들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거야!" 속으로 행복의 절규를 하고 있는 나를 알아차리기라도 했던 걸까. 그런 나에게 잉그리드는 이렇게 말해주었다. “아니, 고마워해야 할 건 나지. 너의 소중한 날을 나와 함께 해줘서 고마워!”


생일 파티가 끝나고 나는 쇼핑센터에 들러 한국 친구들이 보내준 돈으로 전기장판과 토스터기를 샀다. 그리고 미역국과 잡채를 만들기 위해 장도 잔뜩 봤다. 혼자 먹는 생일상이었지만, 하나도 외롭지 않았던 것은 아마도 친구들의 진심이 내 마음에 이미 가득했기 때문이었으리라.


그날 밤, 나는 가장 깊은 잠을 잤다. 그건 아마 완전한 고립을 예상했던 내 하루에 기꺼이 동참해 준 사람들을 보며 안도감을 느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친구들이 보내준 다정함과 배려에 긴장해 있던 몸과 마음이 예고 없이 녹아버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는 누구보다 타인에게 마음을 잘 나누면서도 깊은 관계를 만들 때에는 누구보다 겁이 많다. 그래서 내 마음을 온전히 나누는 데까지는 시간이 꽤 걸린다. 어쩌면 그동안 나를 이방인으로 만든 건 사람들의 시선보다 나의 마음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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