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쁘게 일하던 오전, 갑자기 휴대폰이 울렸다. 오늘 만나기로 한 친구 알리나가 갑자기 자기네 집 주소를 보낸 것이었다. '밖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뭐지?' 문자를 보고 다양한 생각이 스쳤으나 밀려오는 주문에 빠르게 답장을 보내야 했다. '알겠어. 집으로 갈게.' 일을 마치고 알리나네 집으로 향했다. 알고 보니 알리나는 감기에 걸려 밖을 나갈 수가 없는 상태였다. 그제야 알리나의 문자가 이해됐다.
집으로 들어갔더니 다른 친구 풀칸도 와 있었다. 풀칸은 알리나가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되어 집으로 왔다고 했다. 오래간만에 만난 불칸과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하던 것도 잠시, 풀칸이 물었다. "터키식 티 먹을래?" 괜히 부담을 주는 거 같아 괜찮다고 했더니, 약간 실망하는 눈빛이었다. 그래서 나는 곧바로 말을 바꾸었다. "준비하는 게 힘들지 않다면 먹어보고 싶어!"
그때부터 갑자기 한 상차림이 시작되었다. 터키식 과자와 온갖 과일, 크래커와 올리브, 치즈까지. 온갖 것들이 쏟아지기 시작한 것이다. 다과만으로 배가 부를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순간이었다.
친구들은 내가 잘 먹는 게 보기 좋았는지 유튜브로 여러 가지 터키 음식을 소개해주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알리나가 말했다. "너 혹시 오늘 저녁에 시간 괜찮아? 괜찮으면 우리 터키 식당에 밥 먹으러 가자."
초롱초롱 기대에 찬 4개의 눈을 보고 안된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마침 시간 여유도 있었기에 크게 외쳤다. "콜!"
가게에 도착해서 친구들이 추천하는 메뉴에 도전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주문을 하려고 하는데, 갑자기 친구들이 내 앞을 가로막고 터키어로 점원과 대화하기 시작했다. '커스텀 메뉴가 있는 건가, 단골이라 스몰톡을 하는 건가.' 혼자서 온갖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친구들의 계산이 끝나고, 그제야 내 차례가 되었다. 점원에게 메뉴를 말하려는 찰나 친구들이 나를 테이블로 밀었다. 알고 보니 내 메뉴까지 이미 계산을 다 했던 것이었다.
그때부터 미안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아니 오늘 대접해 준 게 얼만데, 이것까지 사주면 어떡하자는 거지?', '다음에는 한국 식당을 가자고 해야 하나? 집에 불러서 요리를 해줄까? 무슨 메뉴를 좋아할까?'
이런 생각이 이어지자 그 자리가 마냥 행복하지는 않았다. 걱정되는 마음과 미안한 마음이 동반되었던 것이다. 이런 마음을 친구들에게 말하자 친구들은 이렇게 대답했다.
"우리가 좋아서 하는 건데, 그냥 너는 즐겨주기만 하면 돼.", "그리고 꼭 우리한테 갚아줄 필요는 없어. 우리가 너를 대접하고, 네가 또 다른 사람을 대접하고, 이게 반복되다 보면 결국 나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대접받게 되겠지."
머리가 띵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 잘 보답하려고 애쓰는 것도 결국 내가 이 마음을 계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깨닫게 됐던 것이다.
나는 남들에게 나누는 것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지만, 그만큼 잘 돌려받고 싶은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내가 사랑 표현을 했을 때 상대가 그만큼 리액션해주기를 바랐고, 만약 표현한 만큼 돌아오지 않았을 때는 남몰래 흥! 하는 마음을 가지기도 했다.
그런데 반드시 그 사람한테 돌려받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들으니 그동안 내가 얼마나 근시안적인 사고를 가지고 있었는지 실감이 되었다. 그동안은 참 주고받기 식의 사고를 많이 했던 것 같다.
내가 준만큼 돌려받았는지 계산하며 누군가를 미워하기도 하고, 앞으로는 주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하기도 했었다. 인간으로서 당연한 마음이지만, 스스로를 참 힘들게 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이제는 사회의 선순환을 만드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나의 호의가 언젠가 돌고 돌아 나에게 닿을 것임을 기억하며 선행을 시작하는 사람.
나의 소중한 친구들은 늘 나에게 울림을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