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옆집엔 고향이 이북이신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살고 계셨다. 그 집 손자가 나랑 동갑, 손녀는 나보다 두 살 언니다 보니 거의 문지방이 닳도록 서로의 집에 왕래하곤 하였다. 우리 집에서건 할머니 집에서건 놀다 밥때가 되면, 밥때가 되었다고 각자 집에 돌아가는 게 아니라 당연하게 그 집 밥상에 숟가락을 보탰다. 딸 친구가 왔다고, 아니면 손주들 친구가 왔다고 더 차리는 것 없이, 편식하면 편식한다고 궁둥이 맞으면서 말이다.
여느 날처럼 할머니 댁에 놀러 갔더니 할머니는 마루에서 만두를 빚고 계셨다.
"할머니, 만두도 집에서 만들어요?"
우리 엄마도 장이건 김치, 반찬 웬만해서는 집에서 직접 만드시지만 만두는 직접 빚는 모습을 본 적은 없는 터라 집에서 만두를 빚고 계신 할머니 모습이 꽤나 신기했다.
"할아버지가 만두국 드시고 싶대. 만두국 끓일 테니까 놀다가 먹고 가라."
"나 만두국 싫은데...."
지금은 k-만두 열풍이라 할 정도로 우리나라 냉동만두는 맛도 퀄리티도 좋지만 내가 어린 시절 공산품 만두는 종류도 얼마 안 되고 그나마 퀄리티도 그다지 좋은 편이 아니라서 군만두로는 그럭저럭 먹을만했지만 국을 끓이면 만두피가 다 풀어지고 속이 터지곤 하였다. 그러다 보니 어린 시절 나에게 만두국이란 만두피 풀리고 속 터진 만두가 떠다니는 이상하고 맛없는 음식이었다.
그러니 할머니의 만두국 먹고 가란 말이 반가울 리 없고 놀다가 밥때가 되기 전에 내빼야겠다고 생각했었다.
"손 씻고 와서 밥 먹자."
놀다 밥때 되기 전에 내빼려고 했는데 놀다 보니 시간 가는 줄을 잊었다.
"할머니 나는 집에 가서 먹을래요."
"밥때 되었는데 밥은 먹고 가야지. "
할머니 말씀에 영 내키지 않지만 쭈뼛거리며 밥 상 한쪽에 앉았다.
그런데 할머니가 끓여주신 만두국은 그동안 내가 알던 그 만둣국이 아니었다. 만두피가 풀리긴커녕 속 터진 데도 하나도 없는 동그랗고 예쁜 만두가 빨갛지만 맑은 국물에 담겨 있었다. 버섯과 닭고기 고명이 올라간 만두국은 보기도 좋고 맛도 좋았다.
"아마 이런 거 처음 먹어 볼 거다. 이게 할머니 할아버지 고향 음식인데, 국물도 맛나고 만두도 맛날 거야."
진짜 국물도 맛있고 만두도 맛있었다. 안 먹겠다더니 금세 한 그릇 뚝딱해 버렸다.
한 그릇 잘 먹고 집에 돌아와서는 엄마한테 그렇게 맛있는 만두국은 처음 먹어봤다며 이북식 만둣국 찬양설을 한참 풀었다.
어린 시절 그리 허물없이 지내던 그 집과는 자라면서 점점 멀어지고 그 집 먼저, 그리고 몇 년 후 우리 집도 그 동네를 떠나며 소식이 끊기게 되었다. 시간의 흐름에 살갑던 이웃의 정도 잊혀갔지만 종종 할머니의 만둣국이 생각난다. 그때 그 만두국이 나의 인생 만두국, 지금까지 먹어본 만두국 중에 원탑이다.
이북식 만두국은 닭고기 육수에 만두를 넣고 빨간 양념을 한 소고기 고명 또는 닭고기 고명을 양념장처럼 올려 먹는다. 그래서 국물은 시원하고 얼큰한 경상도식 소고기국 맛이고 집에서 빚어 두부를 많이 넣은 만두는 담백하고 속이 편하다.
내 손으로 할머니 손 맛을 흉내 낼 자신은 없고 맛있다는 이북식 만두국 집을 찾아보아도 그때 그 맛을찾을 수 없었다. 그런데 며칠 전 드디어 찾았다. 어린 시절 옆집 할머니가 끓여주셨던 그 만두국의 바로 그 맛!
출처 : 네이버 지도
가게명 : 평양집
주소 : 부산 북구 금곡대로20번길 21
얼큰한 맛의 빨간 국물이지만 맑고 시원하다. 만두는 두부가 많이 들어서 네 개나 먹었지만 질리지 않고 속도 편하다. 만두, 육수 다 포장이 되니 포장해 와서 집에서 끓여 먹을 수도 있다.
별다른 포장용기 없이 냉동상태 만두를 투박하게 비닐봉지에 싸주신다. 일회용 용기가 없으니 오히려 환경에 죄책감은 덜해서 자주 사러 갈것 같다.
앉은자리에서 만두국 한 그릇 깨끗하게 비우고 그냥 오기 아쉬워 만두 한 봉지 덜렁 사들고 왔다. 대중교통을 이용할거라 육수까진 사지 못했다. 그냥 오긴 섭섭해서 만두는 샀는데 육수도 없이 이걸 어쩌지?
모르겠다. 일단 냉동실에 잘 넣어두자. 먹고 싶을 때마다 먹을 수 있잖아.
일인가구가 스스로 요리하고 집밥을 먹으려 아무리 노력을 한다 해도 배달음식의 유혹을 완전히 거부하기는 어렵다. 특히 출근했다 퇴근하면 대충 시켜먹자, 좀 편하게 먹고 빨리 쉬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렇다고 매번 패스트푸드만 시켜먹을 수는 없다. 배달음식이라도 가급적 제대로 된 한 끼를 먹으려 노력한다.
그래서 시켜두었던 소고기무국. 시켜 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국, 찌개류는 1인분이 진짜 1인분이 아니다. 2인분, 소식하는 여자분들은 세 끼도 버틸 양이다.
며칠 전 배달시켜 먹고 남은 소고기무국에 무, 숙주를 더하고 포장해온 만두를 넣어 끓였다. 진하고 걸쭉한 소고기무국은 무와 숙주를 더 했더니 취향에 맞게 시원하고 깔끔한 맛으로 변신, 평양집 만두를 넣고 끓였더니 얼추 옛날 옆집 할머니가 끓여주신 만두국의 그 맛 비슷해지는 것 같다.
영원히 찾을 수 없을 것 같던 그 맛을 내가 살려내지 못해도 지역 맛집들의 힘으로 오마주는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