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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Aug 20. 2021

기차안 그녀의 뒷모습

대전행 기차안에서

아무 계획없이 그저 친구를 만날 생각으로 대전행 기차를 탔다. 친구를 볼 생각에 그리고 오랜만에 기차여행이라 코로나도 잊을만큼 설레었다. 창가에 기대어 지나쳐 가는 풍경을 아무생각없이 멍하니 한참 바라보다 멍도 지칠때쯤 책 한권을 꺼내들었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 최근에 고전 다시 읽기를 시작하였는데 평소엔 집중이 안되어 읽다말다만 반복. 무슨 심보인지 조용한 집에서는 십분 집중하기도 어러운데 기차안에서는 무슨 책이든 잘 읽혔다.


한창 책에 집중을 하고 있었는데 아이의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반사적으로 짜증이 올라오며 인상이 쓰였다.

'아니, 유아동반칸은 따로 있는데 왜 1호차에 탄거지? 유아동반칸 피하려고 일부러 1호차 좌석 예약한건데.'

열차의 1호차와 맨 마지막 호차는 탑승구에서 가장 멀리 걸어야하다 보니 승객들이 그닥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잔여좌석도 다른 호차에 비해서 많다. 물론 매진이 아닐 때 말이다. 유아동반호차를 피하고도 하나더 안전장치로 승객들이 가장 선호하지 않을 호차를 택했던 것인데 갑자기 들려온 아이의 짜증스런 칭얼거림은 설렜던 여행기분을 상하게 했다.


물론 아이의 웃는 얼굴은 세상 무엇보다 사랑스럽다. 하지만 어린 아이 칭얼거리는 소리는, 미안하지만 몹시 참아주기 어렵다. 내 아이가 없다보니 더더욱. 그렇다고 아이나 아이 부모를 탓하려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견디기 힘들어하는 나에게서 죄책감을 느낀다. 성인이 아이에게 짜증이라니. 나도 분명 어린 시절이 있었고 그 때의 민폐를 감싸준 어른들이 있었을텐데.


열차 안에서 칭얼거리기 시작하는 아이 때문에 아이 엄마는 좌석에서 일어나 아이를 어르며 계속 움직여야 했다. 더운 여름에 얼마나 힘들까 안쓰럽긴하지만 나는 겨우 찾아온 내 평안에 안도하고 말았다. 그렇게 칭얼거리는 아이를 달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아이 엄마 모습에 몇년 전 독일로 출장갔던 때가 생각났다.


장거리 비행이라면 이유 불문하고 신나는 나였지만 방문해야 할 기관도 많고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아서 돌아와서 보고서 쓸 걱정에 프랑크푸르트를 향하는 기내에서는 극도로 긴장하고 걱정하는 상태였다. 평소에는 기내의 웅하는 소음에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기내식 먹을 시간에 맞춰 눈이 떠지고, 기내식 먹은 후엔 또 스르르 잠이 들었다가 내릴 때쯤 깨는, 장거리 비행에 아주 최적화된 신체리듬을 자부하였건만 업무출장은 여행과 달랐다. 그래서 사람들은 말한다. 돈 주는데는 다 이유가 있다고. 해외는 내 돈내고 여행가야 좋지 회사돈 받으며 일하러 해외가는 것은 안 가느니 못하다고. 그랬다. 일정이 시작되기 전 비행시간 13시간부터 초긴장상태로 잠이라고는 한숨도 자지 못했다. 그렇다고 기내에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으니 곤욕이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남들 몰래 내 마음 속에서 전쟁이 일어나는 게 다였다.


안그래도 바짝 예민해져 있었는데 기내에서 아이들이 울기 시작했다. 기내에서, 그것도 장거리 비행기 안에서 아이가 울면 어떻게 피할 방법이 없다. 거기다 한 아이가 울면 울음도 전염되어 사방에서 아이 울음 소리들이 울리기 시작한다.

젊은 엄마들은 칭얼거리는 아이들을 안고 내 앞으로 오기 시작했다. 일찍 발권을 한 덕에 내 자리가 비상구쪽 좌석이어서 다리를 뻗고도 공간이 한참 남았기 때문이다. 말도 못하는 아기들을 안은 엄마들이 모이니 곧 반상회가 시작되었다. 앉아 있는 나는 정말 곤욕이었다. 한 엄마가 다른 엄마에게 묻는다. 몇 개월이냐고. 대답하며 되 묻는다. 몇 개월이냐고. 그리고 묻기 전에 말한다. 남편 출장 따라간다고. 그러니 상대방도 묻기 전에 맞장구를 친다. 자기도 남편 출장 따라간다고.

극도로 예민해져 있던 나는 그들의 대화에 거의 폭발하기 직전이었다. 그러니까 남편 일하러 가는데 따라가는 거잖아. 몸도 제대로 못 가누는 아이까지 데리고. 나는 일하러 가는데, 이 사람들은 남편 일하러 가는데 따라가서 노는 거구나.


사회생활 초년생이었던 나는 스스로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전업주부에게 얼마간의 우월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물론 지금은 그렇지 않다. 취업준비생이었다가 취뽀하였으니 그때는 그럴만도 하였다고 이해해 주시길) 그러니 4박5일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와서 동료에게 나는 일하러 가느라 비행시간부터 스트레스였는데 남편 따라 놀러 가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하소연을 하였지. 앓는 소리는 일종의 우월감을 확인하고 싶은 의도에서 나왔을 것이다. 내 앓는 소리에 동료는 웃으며 말했다.

"니가 애를 안 키워봐서 그러지. 애 데리고 가는 게 노는 거겠어? 애 한 번 데려가 보면 차라리 일 하러 가겠다고 할걸. "

그렇다. 생각해 보면 아이를 데려가는 것이 절대 편할리 없다. 내 소지품 몇이나 든 조그마한 가방 하나 몸에 걸친 나와 달리, 아이 짐 때문에 큼지막한 가방을 매고 가만히 있지 않으려는 아이 챙기느라 진땀을 빼던 엄마들 모습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면 엄마라는 직업은 24시간, 365일 업무의 연속이다. 바로 직장인들에게 공포의 단어인 24365 시스템인 것이다.


그런데도 아이 엄마를 '집에서 논다'고 표현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많다. 대학동기 모임을 하다보면 아이를 낳고 육아에 전념하고 있는 동기들에게 어떤 동기들은 너도 놀지 말고 뭔가를 좀 해보라는 말을 쉽게 한다. 육아도 육아 나름이겠지만 육아능력시험이 있다면 우수한 성적을 받을 것 같은 내 동기들의 육아일지를 보자면 육아 하나만도 24시간이 부족한 것 같건만 놀다니요? 누가 논다는 거죠?


생각해보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이야 나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다른 사람이 한다하여 크게 달라질 게 없다. 어차피 일이라는 과정보다는 결과가 중요한 것이니. 하지만 한 사람을 길러내는 일은 오직 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영역이다. 육아를 하는 사람은 양육하는 사람의 성격, 기질, 인성, 심지어 외모에까지 영향을 준다. 그러니까 이 아이는 오직 그 엄마만 이렇게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이 좋은 의미이든 나쁜 의미이든.  


자본주의의 최대 비극은 돈으로 환산되는 않는 재능과 수고의 가치를 절하한다는 것이라고 한다. 분명 육아에 대한 재능도 천차만별이고 그 수고도 천차만별일 것인데 '주부'라는 말로 퉁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직장인도 마찬가지이다. 직장인들도 업무능력, 성실성이 천차만별이다. 같은 월급을 받는다고 해서 같은 노동의 가치라고 할 수는 없고, 더 많은 돈을 받는다고 해서 꼭 더 높은 가치의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닌 것을, 사회생활 할수록 느낀다.   


대전행 기차안에서 아이 엄마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내 시선은 독일행 항공에서 아이 엄마들을 바라보던 시선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놀러 가느냐 일하러 가느냐에 따라 마음의 넓이가 달라진 탓도, 아주 짧은 여행시간 탓도 있겠지만 결혼과 육아를 아주 진지하게 고민하고 포기한 탓에, 오히려 전혀 내 일 같지 않은 일이 내 일 같아졌다. 결혼과 육아를 위해 포기해야 할 것들을 결국은 놓지 못했다. 결혼은 은퇴한 후에나 하기로 합의를 봤으니 언젠가 결혼은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은퇴 후 결혼이라면 육아는 이미 포기한 것이나 마찬가지겠지. 아주 오랫동안 놓기 싫어 고민했던 것들을 결국은 움켜쥐고서 바라본 아이 엄마의 뒷모습에서 내가 포기하지 못한 것들을 과감히 포기하고 엄마의 삶을 선택하였다는 행간을 읽게 되었다. 앞으로는 장거리 비행을 하다 칭얼거리는 아가를 만나더라도 조금은 관대해지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p.s. 연관검색어가 '노잼도시'라고 뜨는 대전은 전~~혀 노잼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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