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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푸른국화
Feb 25. 2022
왜 읽냐면 웃지요
잔잔바리 꿈을 찾아서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지 2년 정도 되었을 때였다. 책 한 권 손에 들고 퇴근하는 나를 보며 직장선배가 그 책은 뭐냐고 물었다.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읽고 있는 책이라 하니 선배는 적잖이 놀란다.
"책 좋아해요?"
책 좋아하는 게 그렇게 놀랄 일인가. 나는 책을 좋아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에 더 놀랐는데 말이다.
"난 입사한 후로는 책이란 걸 본 적이 없는데."
헐, 그게 자랑인가?
그 선배는 퇴근하는 지하철 안에서 읽겠다며 책을 들고 나서는 나를 신기하게 보았지만, 나는 입사한 후로 책이라는 걸 읽은 적 없다는 그 선배가 정말로 신기했다.
입사한지 4-5년은 되었을 텐데, 사람이 어떻게 4-5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안 읽을 수 있지?
결혼해서 육아를 하고 있다면 이해가 가지만 그 선배는 미혼의 남자 선배였다.
그렇다고 매일 야근을 하고 휴일에 근무를 해야 하는 회사였냐면 그 정도는 아니었다.
저 선배는 대체 뭘 하고 사는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그런데 뒤돌아 보니 어느새 나도 그 선배와 같은 직장인이 되어가고 있었다.
작년에 내가 책을 몇 권이나 읽었던가, 작년에 서점은 몇 번이나 갔었나?
끝까지 완독한 책이 아니라 읽다 만 책까지 넣어줘도 열 손가락을 다 채우기 어렵다.
도서관에 가지 않은 지는
아주 오래 되었고 책을 사지 않은지는
그보다 더 오래되었다.
서점은? 이사를 앞두고 있는 책을 처분하느라 몇 번 방문을 하였으니 안 간 것만 못하다.
나는 그동안 뭐 하느라 책과 멀어졌던 것일까?
작년은 코로나 때문에 모임, 여행, 운동 뭐 하나 한 게 없는데 뭐 하느라 책을 읽지 않았을까?
퇴근 후의 내 모습을 떠올려 보니 쇼파에 비스듬히 누워 티비 리모컨을 이리 돌렸다 저리 돌렸다 하는 모습이었다.
으악, 내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절대 이런 모습의 직장인은 되지 말자고 다짐했던 바로 그 모습이다.
그러나 티비를 마냥 비난할 수 없는 것이 그렇게 책에서 멀어졌던 나를 다시 책으로, 그래서 서점으로 인도한 것 또한 티비였기 때문이다.
한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한 한 작가의 책이 궁금하여 아주 오랜만에 서점으로 발걸음을 하였다.
서점에 들어서니 나는 흥분하기 시작했다. 빼곡한 책꽂이에 가지런히 정리된 책들.
나에겐 그 모습이 놀이동산이거나 잘 나가는 쇼핑몰 모습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오랜만의 방문이었지만 내 속엔 여전히 살아 있었다. 책에 대한 애정과 책으로부터의 즐거움.
이 책은 뭘까, 와 이 작가는 어떻게 이런 제목을 생각해 냈지, 이 책도 참 재미있겠네, 이건 지금 딱 필요한 책이야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서점을 휘젖고 다녔다.
사방이 책으로 둘러쌓인 이 곳에서 집에 대한 나의
어린시절
꿈이 떠올랐다.
어린시절 나의 드림하우스는 여기 이 서점처럼 사방의 벽면이 빼곡하고 정갈한 책장으로 둘러쌓인 방이 있는, 마당 딸린 작은 집이었다.
언젠가 내 집을 사서 방 하나는 책장으로 채우고 그 책장은 내가 좋아하는 책들로 채워야지.
영화 미녀와 야수에서 서로에게 마음을 연 후 야수가 벨에게 보여주었던 그 방처럼 말이다.
어린시절 나의 꿈은 그런 것이었다.
책으로 가득찬 방이 있는 집을 가지고 싶어, 아니면 책 대여점 주인을 해도 좋을 것 같아,
도서관을 세울 수 있다면 최고일테고.
하지만 어느 새 어린 시절의 꿈은 사라지고 나에겐 어른의 욕망이 싹트고 있었다. 바로 "강남 입성".
그리고 이 어른의 욕망은 지방 대도시에 46평 자가 아파트를 마련하고도 매일 나는 불행해, 행복하지 않아를 외치게 만들었다. 그 많던 잔잔바리 꿈들은 다 어디로 가고, 이런 걸 키웠단 말인가.
오랜만에 마주한 빼곡하고 정갈한 책꽂이들을 보며 이게 다 책을 끊어서였던가 물어 본다.
그리고 오늘 다시 책을 시작하고, 어른들이 비웃을 잔잔바리 꿈들을 만들어 본다.
나도 언젠가 직업란에 '작가'라고 쓸 수 있는 사람이 될테야, 그리고 문학상 상금을 받으면 여행을 가야지!
잔잔바리 꿈들이 다시 차면 강남입성이란 욕망은 사그라들 수 있을까, 나는 다시 행복해질까?
p.s. 알라딘 중고서적은 사진촬영이 환영이라고 합니다. 절대 규정위반 도촬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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