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나라하게 드러난 기성세대의 후진적인 모습들
무해하였던 젊은이들의 죽음 앞에서
일요일 아침. 다음날 있을 원거리 출강 때문에 기차에 올랐다. 기차를 거의 세 시간 정도 타야했기에 자리에 앉자마자 습관적으로 스마트폰으로 포털 사이트 화면을 열었다. 그런데 포털사이트는 온통 이태원에서 100명 넘게 사망했다는 기사로 온통 도배되어 있었다.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100명이 넘는 사망자가 발생했다니, 도대체 왜? 건물이라도 무너진건가, 테러인가, 무슨 일인 것이지? 기사를 찾아보는데 믿을 수가 없었다. 길거리에서 압사로 150여명이 사망했다니....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한동안 멍하다 정신이 드니, 전날 밤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한채 그 장소로 향하던 사람들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가족을 잃은 이들을 생각하니 말할 수 없을만큼 마음이 아팠다.
어쩌다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 그 사람들은 이런 일을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
내가 만약 계속 서울에 거주하고 있었다면 어땠을까, 거기다 내가 조금더 어린 나이였다면 어땠을까?
언제든 나 또는 내 가족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 살아있는 것이 그저 운이 좋아서일뿐이라는 생각에 모든 것이 허무해지기도 한다.
세월호사건 때도 마찬가지였다. 사건 이후 사망자 수가 늘어가는 기사를 보며 매일밤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래서 대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전문가들이 나와 전국민 트라우마를 걱정하고 이를 예방하고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 말한다. 왜냐하면 사람은 꼭 자신이 그 일을 겪지 않더라도 타인에게 닥친 비극에 마음 아파하고 힘겨워하는 존재니까. 이러한 이유로 사람이 동물보다 우월하다 말해온 것 아니었나? 분명 동물에 속하는 종족임에도 사람은 자신들이 동물과 다르다고 철저하게 선을 그어왔다. 바로 이러한 근거를 대면서 말이다.
하지만 타인의 비극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 꼰대라며 어른들 말은 귓등으로도 안듣는 젊은 애들, 안전불감증에 질서도 없다
- 그렇게 지 잘났다는 MZ 세대들은 질서도 지킬 줄 모르나
- 할로윈에 파티를 왜하고 이태원은 왜가나.....
등등, 심지어 일 하다 죽은 사람이 더 안타깝지 놀러갔다가 죽은 사람을 뭐그리 안타까워하냐는 둥, 왜 세금으로 도와주어야 하느냐는 둥.....
나 또한 MZ 세대와는 결이 다르다고 생각해 왔던 80년대생(80년대생도 MZ 세대로 분류되긴 하지만 우리는 90년대생, 2000년대생과는 다르다며 선을 그어왔다)이지만 이런 댓글들을 보며 오히려 MZ를 진심으로 옹호하게 되었다. 무해하였던 사람들의 죽음 앞에서, 잘잘못이나 따지는 기성세대들은 어른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다. 그 정도 옹졸한 마음뿐인 사람들은 MZ에게 가르침을 주거나 설교할 자격이 없다. MZ들도 그정도 옹졸한 사람에게 배워서는 그 정도의 옹졸함이나 배우게 되겠지. 자신들이 그보다 나은 사람이라 가르침을 줄 수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보다 어리고 못하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의 비극 앞에서 그들을 비난하고 나무랄 것이 아니라 감싸안아야 한다. 같은 선상에서 비난할 거라면 결국 같은 사람인데 평소에 뭘 그리 가르치겠다고 애쓰고 다르다며 갈라치기나 했을까.
죽음의 등급이나 메기는 사람들에게서 무엇을 배우란 말인지, 그놈에 세금 뭐 얼마나 냈다고 세금 타령인지.
기성세대가 누리지 못한 것들을 누리고 기성세대가 하지 못했던 말을 하는 MZ가 얄미웠을지 모른다. 하지만 얄미웠을지언정 무해하였던 젊은 이들이 고통스럽게 죽어갔다. 그 죽음 앞에서조차 조.충.평.판을 일삼는 기성세대들은 꼰대가 아니다. 꼰대도 인간이라는 종의 한 부류인데, 인간이 가져야할 측은지심과 공감능력을 갖추지 못한 이들에게 꼰대라는 말조차 사치다.
출장을 갔다가 돌아왔더니 지나가던 어떤 이가 말을 건다. 주말에 이태원 갔었던거 아니냐며.
애도기간 중에 이 일을 농담으로 삼는 무지에 화가 났다. 남부지방 사람에게 이태원은 북부지방 어딘가인지. 그래서 경기도 모처로 출장을 다녀 온 사람에게 이태원 다녀왔냐는 말을 건네는 것인지.
살아생전 이태원에 가 본적도 없고 가보지도 않을 그의 처지를 불쌍히 여겨야 하나 싶다가도.
해외에서도 애도서한을 보내는 마당에 이 나라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반나절이면 충분히 도달할 그 곳에서 일어난 사건을 농담 소재로나 쓰는 그 무지가 혐오스럽다.
어떤 이들은 이태원이 어딘지도 몰라서, 20-30대가 아니라서, 노는 건 싫어하고 오직 노동만 하는 사람이라서, 그래서 위험이란 것과 멀고도 먼 자신의 모습을 자랑스러워한다. 거 봐, 내가 맞잖아. 너네 노는 것만 좋아하는 서울 젊은이들이 문제라며.
아마 MZ들에겐 이렇게 보일 것이다. 결국 기성세대들은 꼰대라고.
황송하게도 아직 MZ들은 기성세대를 겨우 꼰대라고 불러준다. 경험이 미천하여 이와 같은 비극이 자신에게 닥칠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도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에게 닥치지 않을 일이니 공감도 측은함도 가지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MZ들은 황송하게도 꼰대라고 말해준다.
덮어놓고 개인의 잘못은 하나도 없었다는 뜻이 아니다. 하지만 모든 비극의 순간을 돌아보면. 절대 한 개인의 일탈만으로는 대참사가 일어나지 않는다. "하필이면 그 때"라는 말이 열은 넘게 쌓여야만 한 인간의 실수나 판단미스가 사건으로 이어진다. 살아남은 모든 자들이 티끌 하나의 실수도 없어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웬만한 실수나 판단미스는 뭍힐 수 있게 해주었던 아홉가지가 있었고, 그러므로 그러하지 못한 순간을 마주친 같은 종족에게 최소한의 미안함과 슬픔은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