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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Apr 07. 2020

저녁 7시,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9

인생이 소풍

어제는 월요일인데 퇴근하면서 다음주에 뵙겠습니다 해버렸다. 너무 지쳤는지 "오늘은 금요일"이라고 주문을 걸었나봐.
오늘은 출근등록 해야하는데 퇴근등록 해버렸다.
고의가 아니었다.
코로나블루라고 말하고 싶은데 자꾸 말은 코리안블루라고 나온다. 솔직히 코로나 땜에 블루인지 코리안 원래 블루인지 모르겠다. 코로나 전에도 다짜고짜 화내고 짜증내는 사람이 많아서.
어제는 못댄 아줌마가 전화와서는 받자마자 자기 할 말부터 한다. 전화예절은 유치원에서 배우잖아요. 진짜 놀라운게, 전화를 하면 안녕하세요, 저는 어디 소속 누구입니다, 뭐 이름까진 안밝히더라도, 무엇 때문에 전화드렸어요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라 다 물어봐서 대답해줬더니 그거 궁금해서 전화했던 거였어요로 마무리. 이런 유형 진짜 많아. 그거 말 안해도 저 이미 혼자 알아냈습니다요. 아무튼 그 못댄 아줌마는 전화 받자마자 전화를 끊고 싶었다. 이미 목소리에 화가 가득 찼어. 다들 왜 그래요? 참내...왜 그러는거야
암튼 토욜 쉬는데 투표일에도 투표할 시간 달라고 하면 줘야 하냐고.
네, 주셔야 합니다.
사전투표일에 쉬는데도 줘야 하냐고.
네, 주셔야 합니다.
공직선거법 제6조의2에 따르면 사전투표기간 및 선거일 모두 근무하는 경우 투표에 필요한 시간 청구할 수 있다는데 그래도 줘야 하냐.
네, 주셔야 합니다.
그랬더니 내 이름 물어본다.
보통 맞는 말 하는 사람은 화를 안낸다.
화가 찬 사람은 대충 틀린 말 할 가능성이 85프로 이상.
여러분, 나한테 화나신거 아니죠? 코로나블루이신거죠? 그냥 예의가 없으시거나

우리 화내지 맙시고 소풍 기분 나도록 김밥 한번 싸 봅시다.



클래식한 김밥은 준비해야할 재료도 많고 엄청 공이 드는 음식이다. 직딩이 퇴근 후 준비하기엔 사치.

뭐 오늘 같은 날 내면을 다스리려는 노동으로는 나쁘지 않겠지만.

퇴근 후 공복시간이 길어지면 더 우울하므로 약식 김밥으로 준비해보자.

매운 어묵과 우엉만 넣은 김밥

인기 유튜버의 매운 어묵 양념을 따라해 봤다.

다진 마늘 1/2, 맛술 1,  간장 2, 고춧가루 2, 식용유 1, 물 5 넣었더니 간이 딱 맛있다. 그러므로 간장 2를 더한다.

좀 짠데 싶어야 밥이랑 쌌을 때 간간하니 맛있다.

단 맛은 별로라 물엿은 생략.

맛술은 없으니 집에 있는 청하로 대신한다.

어묵을 양념에 잘 버무려 약불에서 볶는다. 거의 다 볶였을 때 세로로 길게 잘라 씨를 제거한 청량고추 같이 볶아낸다.


밥은 식초 1, 참기름 1, 소금 적당

밥은 짜지 않게, 아니 좀 싱겁나 싶게, 하지만 고소하고 새콤하게.

이제 김발에 김 놓고, 밥 놓고, 어묵 폭탄, 청량고추는 한 줄, 조미우엉은 두 줄 놓고 싸준다.



어묵을 더 넣었으면 좋았을텐데.

짭조름 매콤하니, 든 게 별로 없는데도 맛있다.

거봐요, 김밥 싸고 김밥 먹으니 봄소풍 기분 나잖아요.

화내지 말고, 할 수 있는 즐거움을 찾아봐요.

우리 어릴 때 소풍이 왜 좋았어요?

산에 가는 게 좋아요, 보물찾기가 좋아요?

에이~ 아니잖아요. 소풍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김밥과 치킨이지~

그러니까 김밥 한 번 말아봐요, 나를 위해, 내 기분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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