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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Apr 08. 2020

저녁 7시,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10

게된장 하려다 냉이된장

우리집 근처에 소문난 빵집이 있는데, 일주일에 딱 이틀만 빵을 판다.  그래서 오픈하는 날은 관광객들까지 소문을 듣고 찾아와 영업 전부터 줄을 선다. 영업시간 맞추기도 어렵고 좁은 가게라 길거리에 줄서야 하는 불편도 있지만 좋은 재료 아끼지 않아 꽉 찬 빵, 쿠키는 불편함을 감수할 가치가 있다. 물론 이 것은 지극히 개.취. 그래서 매번 시간 맞춰 찾아오는 단골도 있고 남들 줄서서 먹는 게 뭔지 호기심에 찾아오는 이들도 있다. 그러면 본인 취향이 아니더라도 요즘 핫하다는 그것 한번 먹어봤음에 만족할 수도 있을텐데 줄서서 먹을 정도 맛은 아니었다, 너무 달다 덜 달게 만들어달라고 꼭 DM 남기는 사람들이 있다, 아니 많다고 한다.
얼마나 시달렸으면 주인장이 공개적으로 줄서서 먹을 정도 맛 아니니까 일부러 줄서지 마시고 다니까 단 거 안좋아하면 다른집 이용하시라고 할까. 사람 참 다양하고 걔 중엔 참 고약한 사람도 많다.


요리라 하긴 부끄럽지만 요즘 들어 부엌 살림에 재미가 붙었다. 그리고 내 입으로 말하기 뭐 하지만, 솔직히 맛있다.

인디언이 기우제를 지내면 무조건 비가 내리는 것은
비가 내릴 때까지 기우제를 지내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도 맛있을 때까지 뭐든 넣는다. 그래서 맛있을 수밖에 없다. 이만하면 음식솜씨 나쁘지 않고, 사람 만나는 것도 좋아하니 인생 번외편으로 심야식당을 열어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런데 우리동네 빵집 사장님의 고충을 보고 절레절레.

오늘의 메뉴는 게된장이었는데 맛있을 때까지 이것저것 넣다보니 결과는 냉이된장. 죽은 된장을 냉이가 살렸다.

레시피랄 것도 없다.
게, 나박 썬 무, 감자, 호박에 물을 붓고 끓이다 된장을 풀어준다.
양파와 청량고추 넣고 한소끔 끓였는데 뭔가 부족한 맛.
간이 안맞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부족함이다.
뭐랄까...이 지방 어른들 말씀으로는 개미가 없다.
한마디로 된장 푼 물 맛이다.
냉동게라 맛이 덜한가 싶기도.
무와 감자가 푹 익도록 끓여줘도 아무 맛이 안나길래 냉이를 긴급투하했더니 국물 맛이 좀 난다.
마지막에 두부를 넣고 한소끔 끓여주면 완성.
우와 언젠가 사다놓은 손질 냉이가 냉동실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이야.
역시나 해산물엔 청하 한스푼으로 비린내를 잡아준다.


어쨌든 맛있다.
그래서 다시 한번 심야식당에 미련이 남다가 지나쳐간 별난 민원인들이 떠오른다.
어휴...누구는 짜다, 누구는 싱겁다, 게 싫다, 냉이 싫다 메뉴 이게 다에요 얼마나 시달리겠어.

그 정도면 다행이게...
다시 절레절레. 오늘 끓인 된장을 한 술 뜨며 상상만 해본다.
메뉴는 그날그날 내 마음대로. 오늘은 이거 먹어. 어제 메뉴는요? 그건 오늘 안해. 어제랑 똑같이는 못 만들어.
야 안팔아 꺼져 나 장사안해.

그리고 오늘 다짜고짜 화내고 진상부렸던 민원인에게도 말해 주고 싶다.
나 너님이랑 상담안해!
그러나 공공서비스 종사자는 가슴으로 하고싶은 말을 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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