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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Apr 11. 2020

저녁 7시,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 #11

무용하면 어때, 그냥

영어공부를 왜하냐는 질문을 받으면 기분이 나쁘다. 왜 기분이 나쁜지 애써 질문자 탓을 해보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물어보니 더이상 질문자 탓은 끝. 이제 이유를 내게서 찾아 본다.
왜 기분이 나쁘냐고?
딱히 할말이 없어서. 나도 이유를 몰라서.
딱히 제대로 하지도 않으면서 포기하지 못하는 미련인 것을 나도 안다. 알면서도 포기는 못하겠다.
그러니 왜 공부하냐의 답은 그냥. 그냥 하는거다, 이유없이. 좀 포장하자면 교양 있고 싶어서.


한국의 대표작가 김영하님은 이렇게 말하셨다.
"이제 뭔가를 시작하려는 우리는 그건해서 뭐하냐는 실용주의자들의 물음에 담대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 하는거야. 미안해. 나만 재밌어서. 라고 말하면 됩니다.
무용한 것이야말로 재미의 원천이니까요."
역시 대작가의 표현은 다르다.
대작가처럼 공감가게 풀어내진 못하지만 어쨌든 이제는 남탓이 아닌 내 이유를 찾았다. 그냥. 영어공부 왜하냐면 그냥 하는거야.
무용하더라도 그냥. 외국어가 유창하면 멋있어 보이니까.
고등학생이 오토바이 타는거랑 똑같아. 죽을 수도 있다는 것만 빼면. 내가 하겠다는데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남에게 피해주는 일도 아닌데.


그럼 오늘은 건강에 무용한 짜장라면을 끓여보자. 그냥. 먹고 싶으니까. 건강에 무용함에 죄책감 가지지 말고.



재료 : 감자, 양파, 돼지고기(카레용), 소고기 다짐육

1.고기볶기 : 카레용 돼지고기+소고기 다짐육
돼지고기는 원래 기름기 많은 부위를 볶아서 돼지기름이 녹아 들어야 맛있다고 하는데, 냉동실에 계속 두기 불안불안한 카레용 돼지고기와 파스타에 넣으려고 소분해둔 소고기 다짐육을 처리하기로 했다. 가니쉬로는 기름기 많은 고기보다 카레용 안심을 선호하기도 하고. 요리란 결국 내가 맛있어야지, 내가 만들면서 굳이 남에 입맛에 맞출거 있나. 남이 차려주는 밥상보다 내가 만든 요리가 좋은 이유는 내 입맛대로 할 수 있다는 것, 그거 하나인데.
어쨌든 대부분은 기름기 있는 돼지고기를 볶아서 돼지기름을 내주는 것을 선호한다고 한다.

아참, 기름 두르고 후추랑 소금으로 간은 살짝해주면서 볶는다.

2. 감자, 양파 차례대로 넣어서 볶기
고기가 살짝 익었을 때 잘게 썬 감자를 넣어주고 감자가 어느정도 익었을 때 양파를 넣어준다. 몇 센티, 몇 분 같은 건 없다.
모든 건 감이다. 내가 먹기 좋은 크기, 대충 색깔이 난다 싶은 시간.
다시 말하지만 중요한 건 내 취향이니까.
짜파게티든 짜장면이든 지금까지 수백 그릇을 넘게 먹어봤다.
그러니까 분명 맛있었던 모양새가 있었다.
기억이 안나면?
지금부터 다시 먹어가며 찾아야지

3. 면수 한국자에 짜장스프 +0.5
재료들이 얼추 볶였다 싶으면 면 삶은 면수를 한국자 둘러준다.
아참, 면은 미리 삶고 있어야 했다.
재료 볶으며 면 삶는걸 동시에 못하거나, 재료 다 볶았는데 면이 제때 안 삶길까봐 걱정되면 면을 미리 삶아 놓고 재료를 볶으면 된다. 단, 먹고 싶은 식감이 되기 3분전에 불을 끄고 면을 찬물에 담근다. 그보다 덜 삶긴건 괜찮다. 그러나 절대로절대로 더 삶지는 말것!
면수를 한 국자 둘러서 끓어오르면 스프를 넣어준다.
스프량는 면 한개  플러스1/2에 스프 두개, 면 두개에 스프 3개.  대충 2 : 3 비율
그렇게 잘 풀어서 다시 볶아준다.

4.면 넣고 살짝 졸여주기
고기+감자+양파+스프+면수에 이제 +면
적당히 먹기좋게 비벼서 졸인다.
면에 소스가 잘 베일때까지, 그러나 면이 퍼지기 전까지.
살짝 덜삶긴 면이면 이때 좋아하는 식감이 될때까지 볶아준다.
물이 부족하면 면수 한국자 더!
그러니까 처음부터 자박하게 시작하지는 말것.
물이 부족하면 조금씩 더해가며 조리하면 된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자박해서 망친 건 아님!
조릴 만큼 조린 뒤에 면을 넣으면 된다.
자박한데 면도 미리 넣었는데 그 면도 푹 삶은 면이라고?
그건 구제할 수가 없겠다....

5.수란 올리기
계란후라이 대신 수란을 올려도 좋다.
수란은 거창한게 아니라 계란 하나를 깨뜨려 잠길 정도의 물에 익혀내면 된다. 흰자만 익고 노른자는 익지 않도록.
그런데 이것도 익힌 노른자 좋아하면 다 익히면 되지.

짜란~
인스턴트 짜장라면이 고급음식이 되었다. 그대신 부엌은 난장판이 되었을 것이다....
혹시 오해할까봐 말하는데, 건강하게 먹으려고 이 정성을 쏟은 게 아니다. 맛있게 먹으려고 공을 들였을 뿐.
이렇게 공들인 한끼를 누군가 맛있게 먹어주면 세상 그런 낙이 없다.
그래봤자 고작 라면인데.

♧면이랑 스프 짝 안맞는거 어떡하지...고민하다가 두가지 생각이 떠올랐다. 남은 면으로 라면땅을 만들거나, 3분짜장이나 짜장가루를 사용하면 된다.


가니쉬로는 구운 스팸도 훌륭하다.

짜파구리와 불닭짜장은 전국민이 사랑하는 메뉴.

짜장라면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앞으로 그건 왜하냐는 타인의 무례한 질문에는 궁색한 변명 대신 "그냥"  한마디로 끝내기로. 설명도 설득도 필요치 않고 소용도 없다. Just en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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