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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Apr 06. 2020

저녁 7시,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8

흑역사

옛 직장선배를 오랜만에 만났다. 여전히 반가운 얼굴이지만  장난끼가 사라진 얼굴은 안타까웠다. 나이탓이라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은것 같다. 그렇다고 꼬치꼬치 캐묻지는 않았다. 나도 캐물음을 당하는 게 썩 유쾌하진 않으니 딱히 남에게 그러고 싶지 않다.
아이러니하게도 나와 별사이 아닌 사람들은 그리도 캐묻고 성가시다. 오히려 오래 친한 사람들은 나에게 캐묻지 않고 나또한 그들에게 캐묻지 않는다. 친한데는 다 이유가 있다.



선배는 고등학생인 딸이 요즘 엄마와 데면데면하다고, 그래서 와이프가 요즘 힘들어 한다고, 너도 그랬냐 묻는다. 암요, 그랬죠, 안그랬을리가요.
나의 고등학교 시절을 생각하면, 한창 그럴때지, 누구 탓이 아니라.
그렇지만 안타까울 수밖에 없는 건, 다들 지나가는 시절이지만 이 시절이 지난 후에 후회는 고스란히 그 딸의 몫이라는 것.
내가 알지란 말을 하지 않겠다. 그 말을 안한다 하여 꼰대가 아닐수 있어서가 아니라, 그 시절을 처음 사는 딸에 대한 예의로, 내가 알지란 말은 하지 않으려고.
다만, 나또한 그랬던 날이 있어서 많이 아타까울 뿐이다.

-엄마는 아무것도 몰라. 엄마랑은 말이 안통해.

그 때는 그랬다.

나랑 제일 가까우면서 나를 몰라주는 엄마가 야속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며 그 때 야속했던 사람은 엄마가 아니라 나였다는 것을, 나는 참 못대 먹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준 상처에 대해서는 나 자신도 변호할 수 없다. 그 시절에 당연한 감정일지라도 지난 후엔 나의 부끄러움과 후회로 남는다. 특히 부모에게 드린 상처는 더더욱. 그때 세상에서 내가 제일 잘난 줄 알고 기고만장하던 여고생은 내게는 그래서 흑역사다. 그때는 왜그랬을까.


엄마는 저 밉상 딸이 집에 오는 날이면 생선조림을 준비하신다. 구이든 조림이든 생선이라면 고양이처럼 덤벼드는 딸래미 먹이려고. 사실 아빠는 생선을 먹지도 않는데 나 하나 먹이시겠다고 새벽시장에서 생선을 고르러 가신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해 드리기로 했다. 딸램이 했으니 생선 안드시는 아부지도 한번 잡솨봐.



무, 감자를 듬성듬성 썰어 쌀뜰물을 붓고 끓인다.

생선을 같이 넣고 끓이면, 감자와 무는 설익고 생선은 곤죽이 되는 대참사가 일어나므로 생선은 한번 끓은 후 넣는 것으로.


양념장은 고추장 1, 고춧가루 1, 간마늘 1/2, 된장 1/4

오늘의 생선은 갈치.



감자, 무를 넣고 팔팔 끓은 후 갈치를 넣고 한소끔 끓인 후 졸여준다. 비린내를 잡기 위해 맛술 두스푼. 간을 보고 약간 간간할 정도로 국간장으로 간을 마무리. 생선에 양념이 베이고 감자, 무에 젓가락이 푹 들어갈 정도로 익으면 완성.


끓이면 끓일수록 갈치에선 단 맛이 올라온다.

국산 생물은 생선살에서 달큰한 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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