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나 잘 하고 있다고 오해하고 있었지 말입니다
착한 사람만큼 나쁜 사람은 없다.
(니체의 인간학 中)
착한 사람만큼 나쁜 사람은 없다.
회사를 다니며 이 말만큼 뼈저리게 느낀 말이 없습니다.
어쩌면 "진짜 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도 그 착한 사람들의 벽이었던 것 같습니다.
저는 착하다는 말을 싫어합니다. 특히 회사에서 착하다는 말을 들을 이유도 없고 듣고 싶지도 않습니다. 다행인지 회사에서 누구도 저를 착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 강단(剛斷)있다.
제가 제일 많이 듣고 있는 말입니다.
"강단"의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1. 굳세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는 힘 2. 어떤 일을 야무지게 결정하고 처리해 내는 힘입니다.
사전적 의미만 봐서는 제가 추구하는 바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는 시선과 나의 추구미가 일치한다는 것은 감사하고 행복한 일입니다. 그래서 저는 강단있다는 말을 듣는 게 싫지 않습니다. 오히려 기쁩니다.
그런데 한 단어가 품고 있는 의미는 사전적 의미에 그치지 않습니다. 집단에서 자주 쓰이는 단어들은 집단만의 정의가 따로 있습니다. 물론 사전적 의미에서 영 벗어나지는 않겠지만 집단의 평가와 판단이 더해집니다. 우리 회사에서 "강단"이라는 단어는 그다지 긍정적인 의미로 쓰이지는 않습니다.
성깔있다는 말이 하고 싶을 겁니다. 해 달라는 거 순순히 안 해주고 까탈스럽게 군다는 말을 돌려서 표현한 게 강단있다는 말입니다.
저는 사실 성깔있고 까탈스러운 게 단점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제 자리에서 들어야 할 말이라 생각합니다. 법무팀에서 된다 말만 해 주면 결재받을 수 있으니 대충 된다 말 좀 해달라기에 안 된다고 했습니다. 분명 자기네 팀에서 해야할 일인데 "규정" 들어가고 "법" 들어가는 일이라고 저희팀에 떠넘기길래 성깔 부리고 까탈스럽게 굴었습니다. 해 줘도 좋은 소리 못 듣고 해 달라는 대로 안 해 주면 불친절하다고 욕 얻어 먹는 것은 법무팀의 숙명입니다. 그 숙명은 기꺼이 받아 들일 생각이었습니다. 게다가 내가 좋은 소리 듣고 싶어서 안 되는 걸 된다고 하거나, 우리 업무도 아닌 걸 받아다가 팀원들한테 떠넘길 수는 없습니다. 대단한 신념이나 정의감이 있는 건 아닙니다. 쪽 팔리기 싫어서입니다.
팀원일 때를 생각해 보면 초임 팀장과 일 하는 건 굉장히 힘든 일입니다. 슬프게도 조직은 팀장 노릇 잘 할 사람을 팀장 시키는 게 아니라 시키는 일 잘 했던 사람을 팀장으로 승진시킵니다. 그런데 팀장은 더이상 시키는 일만 잘 해서 될 일이 아닙니다. 팀의 역할을 생각해서 해야할 일을 기획해야 합니다. 또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다른 팀과 협조도 잘 되어야 합니다. 하지만 협조는 하되 실속없이 이일저일 떠 맡아서는 안 됩니다. 팀을 위한 울타리가 되어 칼같이 단호하기도 해야 합니다.
당연히 처음부터 잘 할 수는 없습니다. 애초에 이런 일을 잘 하는 사람을 팀장으로 승진시킨 것도 아니었고 말입니다. 그러니 팀원 입장에선 초임 팀장과 일하는 게 힘들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행운이게도 좋은 직책자들과 일할 기회가 많았습니다. 업무능력뿐만 아니라 팀원들을 리드하고 다른 팀들과 업무조율도 잘 하시는 분들이었습니다. 그런 분들 밑에서 일하며 보고 배운 걸 흉내만 내도 중간은 할 것 같았습니다. 마치 좋은 팀장 매뉴얼이란 걸 가진 것처럼요.
그래서 제 나름대로 원칙을 세워 성깔 부리고 까탈스럽게 굴었습니다. 특히 초임팀장이라 안그래도 짬에서 밀리는데 공채 출신도 아니고 경력직이라 회사내 정치적 기반도 없는 팀장이라, 그런 팀장 둔 죄로 우리 팀원들 이 부서, 저 부서 업무 다 떠맡게 될까봐 그것만은 막아주려 했습니다. 그건 꽤나 잘 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초짜는 어쩔 수 없는 초짜인가 봅니다. 그때 그 시절 좋은 직책자 중 한 분은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균형감각이라구요. 그 말씀을 이제야 이해했습니다. 어느 한 쪽만 지나치게 신경쓰면 약한 쪽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이거 하나는 완벽해야지가 아니라 골고루 적당했으면 더 좋았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이제서야 듭니다. 그러고보니 처음치고는 팀장 노릇 꽤나 잘 하고 있다고 스스로 만족한 게 부끄러워집니다.
잘 하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쩔 수 없는 초짜였습니다. 그런데 앞으로 더 잘 해보자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은 업무에서의 까탈과 의사결정을 위한 성깔이 전혀 수용되지 않는 조직 분위기 때문입니다. 저의 추구미는 강단인데 다들 서로에게 착함을 원하는 이 분위기에 영 적응이 되지 않습니다. 제가 맞고 틀리고를 판단할 자격은 없지만 적어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착한 사람 만큼 나쁜 사람은 없다."
전 기꺼이 미움받을 용기를 낼 생각이었습니다. 그걸 넣어두라 하니, 그러지는 못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