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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사 D-69

다정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by 푸른국화


퇴사 결심이 서고 첫 번째 주말. 혼자서 알 수 없는 미래를 고민한다고 답도 없으니 먼저 경험한 사람들을 만나보려 합니다 . 잘해 나가는 사람들에겐 용기와 희망을 얻고, 좀 어려운 사람들에겐 현실을 배울 수 있을 테니 말입니다. 퇴사 결심을 할 땐 잘 나가는 사람이 장밋빛 미래를 보여줬으니 오늘은 조금 주춤하는 사람에게서 그림자를 보려 합니다. 그를 만나기 위해 KTX에 몸을 싣습니다.


예약된 좌석을 찾아 앉아 두어 시간 책을 읽을 생각이었습니다. 장밋빛 미래를 보여줬던 잘 나가는 사람이 추천해 준 장강명 작가의 <먼저 온 미래>라는 책입니다. 장강명 작가는 <표백>이라는 소설로 알게 된 작가인데 20대 끝자락에서 만난 그 소설은 큰 충격이었습니다.


이 작가는 천재다.

생각은 할 수 있지만 감히 남에게 말할 수 없는 위험한 사상들을 적나라하게 표현해 내는 것.

자신이 생각하는 바를 loss 없이 혹은 최소화하여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재능.

동시에 타인에게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문장을 쓸 수 있는 재능.

그래서 이 작가는 천재다.


라고 생각하며 어느 한 세계가 깨져버리는 것 같은 충격을 받았었는데 몇 년 전 다시 <표백>을 읽으려 했더니 무슨 말인지도 모르겠고, 그 시절 내가 무엇에 그렇게 흥분했는지도 모르겠던 기억이 납니다. 그 시절의 감성과 문제의식을 잊은 탓이겠지요. 책 또한 시절인연란 생각이 듭니다.


<먼저 온 미래>라는 책은 소설이 아니라 인공지능을 먼저 경험한 업계가 그동안에 어떤 영향을 받아왔는지, 그래서 다른 업종들은 어떤 변화를 겪을 것인지에 관한 논픽션입니다. 표백에 흥분하던 그 감성은 잊은 지 오래지만 작가님의 문장력은 여전하시니 가독성이 좋은 편입니다. 흔들리는 기차 안에서 이동시간을 보내기엔 적절한 친구입니다.


커피 한 모금 후 책을 펴려고 하는데 앞 좌석에 곱게 원피스를 차려입으신 여사님이 분주하게 들어와 앉으셨습니다. 왜소한 몸에 큰 가방을 두 개나 지니시고 캐리어까지 드셨으니 의도치 않으셔도 요란스러울 수밖에 없으셨을 겁니다. 그렇게 힘겹게 앉으신 여사님께 순하디 순한 인상의 20대쯤으로 보이는 여성 두 분이 다가와 머뭇거립니다. 자기들 폰을 들여다봤다 좌석 번호표시를 봤다 자기들끼리 뭔가 한참 이야기하는 걸로 봐서는 좌석에 문제가 있는 듯하고 제대로 말을 못 하고 한참 곤란해하는 걸로 봐선 생김새로 티는 안 나지만 외국인인 듯합니다.


다가온 여성분들은 번역기를 돌려 이 자리가 본인들 자리라고 대화를 시도해 보지만 연세 있으신 여사님은 상황을 알아차리지 못하십니다.

- 여사님, 이분들 자리라고 하시는데요. 제가 표 한 번 확인해 드릴까요?

제가 상황을 정리하고 나섰습니다.

- 여기, 6A 석 아닌가? 맞는데.

- 여사님, 제가 호실 한 번 봐 드릴게요.

- 7호실 맞잖아.

- 아, 여사님 여기 6호실이고 7호실은 다음 칸으로 가셔야 되세요.

- 아이고, 미안해요. 내가 7호실 확인하고 탔는데.

부랴부랴 짐을 챙기십니다.

- 제가 좀 들어 드릴까요? 제가 자리까지 들어 드릴게요.


한동안 말입니다, 저는 길에서 어떤 사람이 그저 시간을 물어봤을 뿐인데 가슴이 쿵쾅거리며 호흡이 가빠질 때가 있었습니다. 저도 놀랄 정도로, 타인의 사소한 도움 요청에도 가슴이 짓눌리는 것 같은 부담과 압박이 느껴지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이어폰을 보여주기식으로 귀에 꽂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른 걸음으로 걷던 때가 있었습니다. 살짝 화난 듯 인상도 쓴 채로요.

번아웃이 이런 식으로 찾아왔습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이 무관여로,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경계심으로, 그리고 조금 더 발전하여 적개심으로.


언젠가 초행길에 지도를 열심히 보며 목적지를 찾아가려는데 당시 지도어플의 초창기라 정확도도 떨어지는 데다 복잡한 골목 안에 어느 곳이라 거의 다 와서는 헤맨 일이 있습니다. 근처 편의점에서 음료수를 사고 혹시 OO 초등학교는 어느 쪽으로 가야 하냐고 물었더니 직원이 거기 휴대폰 들고 계시네요, 지도 보시면 되잖아요라고 퉁명스럽게 대답했습니다. 지도를 봐도 어느 방향으로 가라는 건지 모르겠어서 여쭤봐요 했더니 한참 저를 쳐다보더니 "모릅니다." 하고 인상을 찌푸려 몹시 당황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분도 반복된 민원에 지쳐 있지 않았을까 오랜 시간 흐른 후에 그 마음을 이해해 봅니다.


이랬던 제가 오늘은 스스로 오지랖을 부렸지 말입니다. 곤란에 처한 누군가를 기꺼이 돕고 싶고, 그런 도움을 수고라 생각지 않게 되었습니다. 아는 사람이냐 모르는 사람이냐 좋은 사람이냐 나쁜 사람이냐도 따지지 않습니다. 그저 사람은 어여쁜 것 같습니다.


퇴사를 한다고 마냥 좋기만 할 거라고 생각지는 않습니다. 회사를 떠난다고 마냥 후련하지도 않습니다. 하지만 반복된 상황에서 오는 무력감과 절망은 상황의 변화만으로 충분히 치유됩니다. 마음의 병은 힘든 상황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희망 없음에서 오는 것이니까요. 변화는 생각지 못한 시련을 줄 수도 있습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현재의 시련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무엇이든 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게 꼭 퇴사일 필요는 없습니다만. 저는 퇴사를 선택했고 아직 퇴사한 것은 아니지만 결심만으로도 저는 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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