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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Apr 20. 2020

저녁 7시,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15

우리 꽤 잘 어울려요

병원에 다녀왔다. 시절이 시절인 때라 웬만큼 아파서는 참고 참았더니 병은 무럭무럭 자랐었나 보다. 멈추지 않는 극심한 두통에 덜컥 겁이 나서 병원을 찾았다.


주말이라 대기환자가 많았다. 접수하고 기다리려니 따끈한 차도 대접해 주시며 대기하는데 양해를 구하신다. 친절한 대접에 오히려 내가 미안해졌다. 나는 휴일에 놀고 싶으면서 누군가의 휴일노동을 소비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

대기하면서 둘러보니 병원 인테리어도 여느 카페, 갤러리 못지 않게 세련되고 고급스럽다.

어릴적 기억을 더듬어 보면 병원은 오래된 낡은 건물에 그닥 위생적으로 보이지 않는 가구들이 있는, 명의일지는 모르나 불친절하고 무서운 의사선생님이 계신 곳이었다.

병원 공간의 쾌적함 증가, 전문가의 친절도 향상은 소비자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나, 돌아서면 나 또한 어느 분야의 노동자이기에 조금은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주말 근무, 병원 관리, 친절 응대, 무한경쟁, 까다롭고 짜증스러운 고객들...문득 직업을 불문하고 모든 대고객 업무 종사자들에게 연민이 들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진료실로 호명되었다. 신체활성도가 현저하게 떨어지고 혈액순환이 잘 안되는 상태인데 원인은 스트레스라고. 상태는 나이에 비해 아주 안 좋은 상태라고 한다. 요즘 스트레스 받는 일이 많았냐고.

직장다니다 보니 하며 머쓱하게 웃고 말았다.



이렇게 처음 방문한 병원 걱정까지 하는 성격이니 평소 스트레스가 오죽 하겠나 싶다. 그래서 다짐하건데 첫 째 차가운 음료 금지, 둘 째 세상사 관심 끊기.

첫 째는 얼마간 지킬지 모르겠지만 둘 째는 될까 모르겠다.

병원문 나설때까지 이 걱정, 저 걱정.

민원 상대 업무를 하다보니 누군가의 서비스를 받을 때 더 조심스러워 진다. 나도 누군가에겐 진상 고객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자꾸 눈치를 보게 된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도 이렇게 물어야하나 저렇게 물어야하나 몇번 다시 생각하게 된다. 서비스를 제공할 때보다 제공받을 때 한없이 소심해진다.


꽃샘 추위라더니 병원 문을 나서니 으슬으슬하게 찬바람이 분다. 건강상태가 좋지 않다는 말을 들어서 바람이 더 차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이런 날은 마늘향 깊게 배인 칼칼한 찌개가 최고!
두부스팸찌개를 끓여보자.



재료 : 국간장2 고춧가루2고추장1맛술1다진마늘 두부180그램 스팸200그램 송송파 양파 청량고추
양념장 만들기
나는 두부 180그램, 스팸 200그램 기준, 국간장 2 고춧가루 2 고추장 1 맛술 1 다진마늘 1 로 양념장을 만들었다.
고추장도 짜고 스팸도 짜다는 걸 생각지 못해서.
간장은 양념장 만들땐 빼고 다 끓은 후에 혹시라도 간이 안맞을때 넣어주는 것으로.
궁중팬에 채썬 양파를 깔아주고 그 위에 두부와 스팸을 올려준다.



두부와 스팸 위에 양념장을 듬뿍 얹어 육수를 자작하게 부워 끓여주면 완성! 육수는 1200원짜리 시판 사골국물, 마지막에 청량고추와 파를 넣어 주면 별거 안들어가고 별거 안한거에 비해 맛있게 밥 한그릇 뚝딱할 수 있다.



두부와 스팸은 의외로 찰떡궁합이다. 네모난 것이 크기 맞추기 좋고 한놈은 몹시 짜고 한놈은 몹시 싱거우며 부드러워, 간간하니 속이 편하다. 이런 게 궁합인가 보다.


매일이 스팸같은 평일에 두부같은 주말이 있어 짜지도 싱겁지도 않게 살아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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