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D-26
오늘은 2025년 한가위 당일입니다. 독자 여러분 풍요롭고 따뜻한 추석연휴 보내시길 바랍니다.
역대급으로 길다는 이번 연휴는 제 인생에서 어쩌면 마지막 연휴일지 모릅니다. 유급휴일은 근로자와 공무원에게 의미있는 날이니 근로자에서 벗어나면 연휴가 길고 짧은 것은 더이상 의미가 크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래 전 수험공부를 할 땐 직장인의 삶이 너무 부러웠습니다. 아홉시에 출근해서 여섯시에 퇴근하면, 퇴근 후와 휴일의 삶이 있는 직장인들이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그때는 그랬습니다. 직장이 아무리 괴로워도 직장 외의 삶이 있는 게 어디냐고, 수험생활처럼 내 삶을 통으로 독점하는, 그런 삶을 또 계속할 수는 없다고, 그래서 나는 직업인이 아니라 직장인으로 살겠다는 꿈을 꾸었던 것 같습니다. 그때 그 선택이 잘못된 선택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원하는 대로 직장인의 삶을 살았고 이제는 직장인이 아니라 직업인으로 살아보고자 함이며, 나중에 또 어떻게 생각이 바뀔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인생에 목적지가 있다면 오직 죽음만이 유일한 목적지가 될 뿐, 그 외에 모든 것은 과정입니다. 더빨리 무엇이 되었다고 더 오래 한다는 법도 없고 죽기 직전 도달한 곳만이 정답인 것은 아닐테니까요. 오히려 유한한 인생에 이렇게도 살아보고 저렇게도 살아볼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연휴를 맞아 서울에 잠시 다녀 갑니다. 볼 일을 보고 사람들을 만나 식사를 하며 실없는 이야기도 했다, 앞날에 대한 조언을 얻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후식을 먹으러 들린 "카페 163". 너무나 만족스러웠던 무화과 케이크에서 사장님의 마인드를 배워갑니다.
지도에서 카페 163을 찾으면 큰 길가도 아닌 좁은 골목으로, 이런 데 카페가 있을까 싶은 데로 안내를 합니다.
"영업 안 하나 본대."
"내가 올라가서 확인해 볼게."
다행히 영업 중입니다.
그리고 허름한 외관과 달리 카페 내부는 감성적인 인테리어가 돋보였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케이크와 음료가 너무 맛있었습니다. 층층이 가득한 무화과와 많이 달지 않으면서 부드러운 생크림에 어여쁜 무화과 케이크를 국밥 먹듯 후루룩 마셔버렸습니다.
우연히 찾은 카페에서 인생 케이크를 맛보게 되어 카페에 대한 후기를 찾아봤습니다. 다양한 후기들을 한 마디로 요약하자면 "한 번도 찾지 않은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찾은 사람은 없는"이 되겠습니다. 외진 곳에 뷰도 없는 카페라 선뜻 찾기 쉽지 않지만 일단 찾아서 케이크 맛을 보면 또 찾을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앳된 얼굴의 어린 사장님께 사업을 배워갑니다. 입지나 홍보를 압도할 실력만 있으면 사람들은 찾게 되어 있나 봅니다. 조급해 하지않고 의뢰받는 일마다 집요하게 물어 뜯어 보려 다짐합니다. 회사에선 일에 집요하면 과하다고 비난받지만 의뢰받은 일에는 집요함은 미덕이 될 것입니다. 변호사를 반복해서 찾는 게 의뢰인 입장에선 좋은 일은 아닐 것이나 누군가에게 믿고 추천해 줄 만한 사람이 되려 애써 보겠습니다. 당장은 손익을 따지지 않고 묵묵히 신뢰부터 쌓아보고자 합니다.
모두들, Happy 추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