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D-29
명함 제작 30,000원, 업무용 컴퓨터 2,000,000원, 사무실 월세와 직원 월급 분담금 월 3,000,000원.
근로자일 때는 생각지도 못했던 비용이 이제 제 주머니에서 나가야 합니다.
사직서를 제출하고 나니 퇴사가 실감나고 이제 현실의 벽이 더 높게 다가옵니다.
'잘 할 수 있을까? 쉽지 않다는데.'
먼저 개업한 이들이 말합니다. 그래도 자기 주변에 망한 사람은 없다고. 망할 사람 같으면 자기가 먼저 뜯어 말렸다고.
그리고 어떤 이는 말합니다. 설사 망해 봤자 컴퓨터 한 대라고. 더 망해 먹을 것도 없다고. 이 정도면 사업치고 리스크가 없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말입니다.
며칠 전 우연히 로스쿨 동기를 만났습니다. 다니던 회사를 퇴사하고 미래를 고민하며 잠시 쉬고 있다고 하며, 언제 제대로 만나서 진로 상담 좀 해 달라고 합니다. 내 앞가림도 걱정인데 상담이랄 것은 없고 고민을 공감하며 나는 왜 이런 결정을 내리게 되었는지 정도 말해 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루라도 빨리 개업하는 게 답이었을까? 빨리 개업해서 버틴 게 맞았던 것 같죠?"
동기는 말합니다. 동기와 저는 다른 동기들에 비해 어린 나이에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고 기업 사내변호사 취업시장에서 비교적 경쟁력이 있었기에 별다른 고민 없이 사내변호사로 취업하였습니다. 그 때는 기업에서 기업법무를 하겠다는 꿈도 있었고 조직생활을 통해 제가 더 성장하고 전문성이 생기리라는 기대를 했습니다. 짧은 기간 어쏘 변호사로 있다가 곧 개업을 하는 동기들을 보며 그 용기에 감탄하면서 당시에는 무모하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하지만 십년이 지나니 일찍 개업한 동기들은 대표 변호사가 되어 있고, 저는 이제 한계를 슬슬 느끼게 되었습니다. 10년차가 넘은 변호사가 조직 안에서 더 성장할 수 있을지 불안하고 고민이 됩니다. 변호사 업무만 하면 조직에서 성장은 제한적이고, 그렇다고 조직에서의 성장을 위해 업무영역을 넓히면 변호사 자격증이 장농면허가 될까 두렵습니다. 비단 변호사만 하는 고민은 아닐 것입니다. 조직내의 모든 전문직들의 고민이 아닐까 싶습니다. 또 직원들과 사적으로 가까워질수록 내 업무의 범위가 모호해집니다. 회사의 변호사라기 보다는 회사에서 무료로 쓸 수 있는 변호사가 되어 가고 있었습니다.
"어차피 마주해야 할 현실인데 하루라도 빨리할 걸 싶네요. 하지만 아직 자신은 없어요."
라는 동기의 말에, 나도 썩 자신은 없어. 수입 없이도 버틸 수 있는 최대 한계를 정해놓고 일단 해보는 거지. 말아먹어도 다시 일어나려면 지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아,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에 하자며 헤어졌습니다.
이제 믹스커피 한 잔도 제 몫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숨이 턱 하니 막힙니다.
다행인 것은 함께할 동료가 있고 그동안의 직장생활하며 모아놓은 돈으로 한 동안은 버틸 수 있다는 것입니다.
멘탈과 체력만 받쳐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