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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가 주는 긍정 에너지

퇴사 D-30

by 푸른국화

강의가 있어 학교 가는 날은 아침부터 설렙니다. 공부를 다시 하려니 막막해서 미루고 미루다 이제서야 학교로 돌아가게 되었는데 막상 학기가 시작되니 강의날이 기다려집니다.

스티븐 킹이 말했듯, 가장 두려운 순간은 시작하기 직전이고 막상 시작하고 나면 모든 것이 나아지나 봅니다.


학교가 주는 가장 큰 에너지는 바로 사상의 자유입니다. 회사에서는 정형화된 인간형에 벗어나지 않으려 눈치를 봤는데 학교에선 범죄가 아닌 한 어떤 자유로운 사상, 의견, 취향이 모두 허용됩니다. 말하자면, "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데." 라는 말을 언제든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생각이 밥 먹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로운 생각은 자존감과 존엄성의 양분이 됩니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말을 했던 것도 어쩌면 궤를 같이 하는 것일지 모릅니다.


학교가 좋은 또다른 이유는 재테크 이야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돈이 아닌 다른 가치도 존재하고 추구되는 것을 보며 아직 세상에 희망이 있음을 느낍니다. 물론 재테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아니며 학업 또한 일정 부분 재테크의 성격을 가집니다. 다만 부동산 공화국에서 집값까지 경쟁해야 하는 현실에 피로감이 컸습니다. 오직 코인과 부동산만이 인생의 목표이고 전부인 것 같은 세상은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코인과 부동산이 아닌 다른 가치들이 아직 존재한다는 것을 확인하며 사회적 연대와 협력의 희망을 볼 수 있었고, 세상을 향한 부정적인 시각이 정화됩니다.


무엇보다도 젊음이 주는 순수, 열정, 절박함이 초심을 돌아보게 합니다. 며칠 전 예능프로에서 유명한 뮤지컬 배우가 시간과 노력을 들이면서도 대학강단에 서는 이유를 말하였는데, 바로 그 절박함에서 영감을 얻고 그 절박함이 자신을 다잡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 같이 출연한 유명 뮤지션도 본인이 오디션 프로를 끊지 못하는 이유도 같다고 합니다. 쉬운 길로 가고 싶고 타성에 젖으려 할 때쯤 학교는 저에게 초심을 돌아보게 해 주었습니다. 저 절박함 앞에서 부끄러운 기성세대는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한 때 존재하였던 나의 절박함을 돌아보면 오늘 하루도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그리고 젊은 에너지가 가득하니 저도 마음만은 젊어지는 것 같습니다. 사실 늙는다는 것은 무언가 배우기를 멈추었을 때라고 합니다. 배움이 계속되고 있는 이 공간이 저는 너무 좋습니다. 생업과 병행하는 만학도들 덕분에 저도 나태한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세상엔 존경할 만한 열심히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그래서 그랬나 봅니다. 회사를 그만두거나 휴직하고 학교를 다니던 그 시절 그 언니오빠들은 뭐가 그리 좋아서 표정이 밝았는지. 나는 공부하기 싫어 죽겠고, 모든 것이 불안하고 힘든데, 저 언니오빠들은 어떻게 항상 밝을까.

오랜만에 학교에 돌아오면 이런 기분이었나 봅니다.


이 나이에 공부하겠다고 하면 응원하는 사람도 많지만 그놈에 공부 지겹지도 않냐며 공부 그만하라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행히 공부만큼은 그만하라고 하는 사람은 그닥 가까운 사람은 아니라서 분노를 차단으로 응징하였습니다. 모델 한혜진이 말했습니다. 뭔가를 도전한다고 하면 주변사람들이 절대 응원만 하지는 않는다고. 제일 걸림돌이 주변사람들이니 주변사람들한테 얘기하지 말고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고 합니다. 사실 제가 공부하는 게 세상에나 나 자신에게나 해가 될 게 없습니다. 그리고 내 인생은 내가 제일 많이 고민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더 고민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면 답이 보입니다.
분명한 것은 내 고집대로 했다가 결과가 좋지 않아도 절대 후회하지 않지만 남 말 듣고 안 한 것은 반드시 후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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