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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쪽 문이 닫히면 다른 쪽 문이 열리는 법

퇴사 D-23

by 푸른국화

연휴가 끝나갈 즈음 생각지도 못한 연락을 여러통 받았습니다.


첫 째는 연구과제를 함께 해 보자는 교수님의 제안입니다. 퇴사하고 한동안은 공익활동과 간간이 들어오는 국선에 의지하며 무료하게 지내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타이밍 딱 맞게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둘 째는 전직장과 전전직장에서 친분 있었던 분들의 상담 문의가 이어졌습니다. 명절처럼 자주 못보는 일가친척들이 모인 날은 일가의 어떤 이가 겪고 있는 곤란한 일에 대해 '친족회의'를 하게 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누가 회사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거나, 부동산 거래 상대방이 무리한 요구를 했다거나, 상속이나 이혼과 관련된 고민이 있는 등 사람들이 모이면 여러 이슈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중에 아는 변호사로 제가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으니 감사한 일이었습니다.

지인들의 호기심이 수임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잘 없다며 달가워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긴 하지만, 저는 이런 사례들이 마치 '모의고사' 기회인 것 같아 몹시 신이 납니다. 모의고사 없이 본고사를 치는 것은 리스크가 너무 큽니다. 실전과 유사한 사례를 반복하여 접하며 내 스스로 법리를 정리하는 과정은 직업인으로서 내공을 쌓는데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과거를 돌아보면, 저는 모의고사를 치르는 그 과정에서 실전 실력이 폭발적으로 상승했던 것 같습니다. 단편적인 지식들도 결국 꿰어야 보배가 될텐데, 그 꿰는 능력은 문제풀이 과정에서 길러지는 것 같습니다.

바로 대답해 줄 수 있는 사례는 한번더 정리할 수 있어서 좋고 자신이 없는 사례는 이 참에 저도 새로 알 수 있으니 좋습니다.

어쨌든 아는 변호사를 생각했을 때 제가 제일 먼저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앞으로의 경력에 몹시 희망적인 일입니다.


몇년 전, 제가 처음으로 개업을 고민하였을 때 월급말고 부대수입 300만원을 만들 수 있으면 개업하겠다고 선언했습니다. 사업은 회사가 하고 그 돈 받는 월급쟁이말고 제가 스스로 돈 벌 능력이 있는지 확인하고 개업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평생 개업 못하겠네."

동기 언니가 박장대소하며 말했습니다.

"개업을 해야 시작이지, 개업도 안 했는데 월급 말고 무슨 돈을 벌어? 너 겸직위반으로 징계받고 개업하려고 그러냐?"

그러니까요. 그 땐 무슨 생각이었을까요. 파워 J라 할 수 있는 헛소리였습니다.

개업은 해야 시작이라던 그 말이 이제는 이해가 갑니다. 한 쪽 문을 닫으면 다른 쪽 문이 열립니다. 그게 운이기도 한데 꼭 운이기만 한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에필로그 혹은 쿠키.....

개업은 해야 시작이라던 동기오빠는 걱정하는 저에게 말했습니다.
"시작하면 반드시 주변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있다. 잘 못 살지 않은 이상. 나도 시작한다니까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더라. 그러니까 너도 지금은 걱정하지만 막상 시작하면 주변에서 도와준다니까."
"누가요?"
"그건 나도 모르지"
"........"

아주 오래 전 어디선가 보았던 짧은 우화가 떠오릅니다. 어떤 남자가 밤에 산을 넘다가 발을 헛딛어 낭떠러지에서 떨어졌습니다. 다행히 떨어지다 밧줄같은 긴 줄을 잡고 메달렸다고 합니다. 그런데 깊은 밤 산 속은 너무 추웠고 점점 체력과 체온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구조대는 오지 않고 남자는 추위와 두려움에 좌절했다고 합니다. 제발 살려달라고 신에게 기도하며 그 밤을 보낸 남자는 해가 뜨기 시작하자 깜짝 놀랐습니다. 손을 놓치면 안 되는 아주 높은 곳에 메달린 줄 알았는데 바닥과 거리는 한 뼘도 안되었다고 합니다. 진작 손을 놓았다면 추위와 두려움에 떨지 않았을텐데, 해가 뜨고서야 바닥을 보고 얼마나 허망했을까요?
어쩌면 걱정하는 어떤 것들은 일어나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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