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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May 05. 2020

저녁 7시,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 #18

굳이

올해는 가야지란 말을 몇 년째 듣고 있는지 모르겠다. 듣는 나는 지겨운데 말하는 사람은 나만 챙기는(?) 것도 아닌데 전혀 지치지 않는 걸 보면 나는 저사람들 못 이길듯. 그러니 정색하는 대신 그러려니 하며 모자라는 척하는 게 상책.

그렇죠, 올해는 가야겠죠.

어차피 늦었는데요 하하.

그러면 기다렸다는 듯이 살아보면 다 똑같다, 그만 고르고 착실한 사람 있으면 그냥 붙잡아.

네, 그렇죠, 그러게요 아하하.

이직할 때도 그랬었지. 옮겨봤자 똑같다고. 아니던데요, 옮겨보니 안똑같던데요.

한 번도 안옮겨 본 사람이 옮겨봤자 똑같다는 말을 하고, 평생 한 사람과 살아본 사람들이 살아보면 다 똑같다는 말을 한다. 이제 믿지 않습니다.

그렇게 결혼 안 한 사람들은 못 보내서 안달인 사람들이 결혼하겠다는 20대에게는 또 이렇게 말한다.

왜 벌써. 왜 굳이.

혹시나 결혼 상대방이 신혼집도 변변찮게 구했으면 거보라며 여기저기서 폭격을 해댄다. 집은 커녕 취업도 못했으면 아마 걔 중에 한 명은 꼭 있을거다. 아직 늦지 않았다는 말을 진짜로 하는 사람. 취업했어도 정규직이 아니라면, 정규직이지만 대기업이 아니라면, 정규직이고 대기업이라도. 영혼이 한줌 재도 안 남을 정도로 집중폭격한다. 이미 폭격 대상은 폐허가 되었는데 포탄은 아직 한창이라 목표물을 수정한다.

그러고 보니 자기는 집도 샀다며, 왜 안가?


가겠다는 사람 말리고 굳이 생각없는 사람 등 떠미니 참 알다가도 모를 심리다. 나는 타인이 듣기 싫을 말은 굳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 심리는 더 모르겠다.

굳이 해보려 해도 할 말이 없다.


대신 말린 오징어를 굳이 다시 불려본다. 생오징어 놔두고 굳이 말린 오징어를. 말린 오징어 볶음을 만들어 본다.



어떤 방송 프로그램에서 봤는데 말린 오징어를 불릴 때 막걸리에 24시간 담궈두면 잘 불릴 수 있다고 한다. 말린 오징어 두 마리에 막걸리 한통+막걸리와 동일한 양의 물로 불린다. 24시간 조금 넘게, 거의 30시간을 담가뒀다.

그러면 사진에 보이는 정도로 불어난다.


불린 오징어는 흐르는 물에 깨끗하게 씻은 후 물기를 닦고 한 입 크기로 썰어준다. 그리고 한 입 크기의 꽈리고추를 함께 준비하는 것이 정석이나 냉장고 사정상 꽈리고추 대신 청양고추를 얇게 썰어서 같이 볶기로 했다.


잘 달군 팬에 다진 마늘 한 숟가락과 준비해둔 오징어, 고추를 볶는다.

오징어 한 마리 기준으로 간장을 자작하다 싶게 넣어 볶다가 고춧가루를 넣어준다. 마른오징어는 이미 간이 되어 있기 때문에 간장을 절대 많이 넣으면 안 된다. 그리고 맛술 한 스푼. 꿀 두 숟가락과 잘게 썬 양파 한 줌을 넣어줬다. 물엿이나 꿀, 설탕은 웬만해선 잘 안 넣는 편인데 꿀 두 숟가락 넣으니 막걸리 쓴 맛과 마른오징어 특유의 짠맛이 잡힌다.

오징어에 어느 정도 양념 색이 베어 들면 불을 끄고 참기름 한 숟가락과 참깨 한 줌을 둘러준다.



[오답노트] 막걸리에 오랜 시간 불렸지만 생오징어에 비해서는 확실히 딱딱하다. 그래서 다음부턴 오징어 결 방향과 직각 방향으로 오징어를 썰어주는 것으로.


굳이 남 듣기 싫은 소리는 못하겠고 굳이 힘들게 말린 오징어나 불려보는 것으로, 소심하게 삐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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