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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May 02. 2020

저녁 7시, 나를 위해 요리하는 시간#17

6일간의 리틀 포레스트

적당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기에 적당한 것은 항상 어렵다.

누군가에게는 당연한 것이 누군가에게는 유난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어쨌든 내 존재로 남에게 피해는 주지말자며 전전긍긍 살아 왔는데 문득 내가 배려라고 생각한 모든 것들이 타인에겐 부담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당신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으려고 바짝 긴장해 있다. 그러니 당신도 나한테 불편을 끼칠 생각일란 말아라. 나는 조심한다. 그러니 당신도 조심해라.

어쩌면 내가 바짝 긴장해 있어서 타인의 행동들이 자주 거슬리는 것일지 모른다. 그런 생각이 든다.



내 이웃사촌은 박스를 이렇게 쌓아뒀다가 더이상 쌓을데가 없어야만 버린다. 다른 이웃사촌은 아예 생활쓰레기를 복도에 내놓는다. 내집 앞이니 괜찮은 걸까?


원본기사가 실린 언론사가 기억나지 않아 출처 공개 곤란

출처가 기억나지 않은 한 신문기사의 일부이다. 이 정도를 민폐라고 해야한다면 집이 휴식공간일 수 있을까?


그러고 우리  이웃사촌을 돌아보니, 그래 소음도 안나는 재활용 쓰레기 정도야  그럴수 있지. 내가 예민했나 싶다. 뭐, 복도형이 아니라 계단형이면 아무 문제 아닐수 있잖아.

역시 거슬리는 게 많은 내 성격이 문제인가봐.

 

어디까지가 나의 정당한 권리주장이고 어디서부터가 진상인지 모르겠다. 당연하다고 생각되는 선마저 지키지 않는 사람들과 저 세상 선을 당연하게 요구하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이 세상. 나는 선을 제대로 지키고 있나 검증하고 싶어도 이제 그 선을 모르겠다.


비단 공동주택 생활에서만이 아니다.

회사에서, 대중교통 이용 중에, 운전하다 보면, 음식점에서, 카페에서, 사람과 부대끼는 어디든 선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로 인한 피로감은 누적되지만 내가 바라는 선은 저 세상 선이 아닌지 의기소침해진다.


피로감이 쌓여가는 요즘, 나는 자연인이다 또는 리틀 포레스트가 절박하다. 자연 속에서, 혹은 리틀 포레스트에서 사람과 부딪히지 않고 살고 싶다. 식물들 틈에서. 기한은 사람이 그리워질 때까지.


하지만 현실은 나는 자연인이다는 커녕, 리틀 포레스트가 웬말. 복작복작 대도시 부산에서, 연휴가 끝나면 또다시 출근을 하고, 하루에 마주치는 사람만 근 100명인 그런 삶을 살고 있다. 6일 연휴나마 리틀 포레스트를 상상하며. 그래서 준비한 메뉴는 제철 냄새가 날 것 같은 애호박과 새송이로 만든 전.



딱히 레시피랄 것도 없다. 재료도 애호박, 새송이, 계란물, 부침가루 끝. 애호박은 일정한 크기로 썰어서 부침가루 얇게 입혀준다. 표면이 매끄럽기 때문에 부침가루를 입히지 않으면 계란물을 입히기 어렵다. 부침가루 쉽게 입히는 방법은 아마 요리프로나 유튜브에서 한번쯤 보았을 그 방법이다. 비닐봉지에 부침가루와, 옷 입힐 재료를 넣고 공기 빵빵하게 채운 후 쉐이킷, 쉑킷.

부침가루 잘 뭍혔으면 계란물 입혀 구워준다. 새송이도 마찬가지.



애호박전은 계란물 대신 부침가루를 물에 개어 부쳐낸 게 개인적으론 더 맛있다.


부침가루 푼 물에 구워낸 애호박전

출근하지 않는 연휴에 회사도, 대중교통도, 음식점을 비롯한 다중이용 시설도 이용하지 않으며 풀냄새 가득한 음식들을 만들며 마음 해독 중. 풀냄새 가득한 음식 덕분에 초식동물처럼 순해지길 바라며. 그래서 초식동물은 무리생활을 잘 하는 것일지도.


황금연휴라 코로나가 무색하게 제주도는 관광객으로 빈다고 한다. 6일 연휴에 집에만 있기 답답한 심정은 이해하더라도 최소한 마스크는  주셔야지. 관련 기사 밑에 달린 댓글들은 "댓글"이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가관이다. 마스크 안쓴다고 안걸린다는 둥, 유난이라는 둥, 오늘 기온이 몇도라는 둥.

등교하지 못하는 아이들, 귀가하지 못하는 의료진과 생업을 잃은 많은 국민들을 생각하면 바깥 기온이 몇도라도 더워서 못쓰겠다는 말은 사람된 도리로 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닐까? 안써도 안걸린다는 말은 전문가도 하지 못하던데. 그리고 나만 안걸리거나 나만 걸려도 안죽으면 되는 게 아니죠. 나는 증상 없거나 나는 안죽는데 나 때문에 누군가 감염되고 그 사람으로부터 또 다른 사람이 감염된다면? 묻고 싶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인지, 그래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인지.

다른 선은 모르겠지만, 이 시절 마스크를 쓰라고 요구하는 것 만큼은 저 세상 선이 아님을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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