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푸른국화 Oct 26. 2020

우리 같이 준비합시다

아버지를 위하여

어느 날 아버지는 지갑을 찾지 못해 당황하셨다.

지갑에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당신이 뭔가를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 몹시 당황하고 계셨다.

그늘진 얼굴의 아버지는 내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는데라는 혼잣말을 반복하셨다.


아버지는 당신이 노년에 치매에 걸리실까봐 항상 걱정하셨다. 60대가 되시니 막연했던 두려움은 구체적인 공포로 다가오시나 보다.


- 아빠 걱정 마. 나는 십대부터 그랬어. 깜빡깜빡하다 잃어버린 지갑이 몇개야. 괜찮아요. 원래 그런거야.


모자란 딸의 셀프디스도 아버지께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아버지는 몇분 지나지 않아 지갑을 찾으셨지만 기분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으셨다.



부모님의 건강과 의사소통 능력도 예전같지 않고 뵐 때마다 노화의 속도가 빨라지는 게 느껴진다. 어린 아이가 크는 속도에 가속도가 붙는 것처럼 사람의 노화에도 가속도가 붙는다. 이런 부모님의 모습에 많이 슬프고 겁이 난다. 부모님과의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조급해진다. 마지막까지 부모님을 사랑하고 부모님께 친절한 딸이고 싶은데, 그럴 수 있을까? 지금도 친절한 딸은 못되는데 말이다.


그런데 아버지는 걱정은 그리도 하시면서 조금도 노력을 안하신다. 약주는 줄이시고  친구들 모임에 나가시든 취미활동을 하시면 좋을텐데, 친구도 귀찮다 이 나이에 무슨 취미냐시며 술만 물 마시듯 드신다. 그러니 나도 약이 오르고 화가 나 죽을 맛이다. 걱정이 되시긴 하시냐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른다.


가족끼리 나들이나 여행이라도 계획해보려 해도 차 막히는 거 싫다, 돈 쓰는거 싫다, 밖에서 잠 못잔다 하시니,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날 수 있다면 이런 말이라도 전하고 싶다. 부모님은 나중에 내 말 안들어 주실거니 너도 지금 부모님 속 엄청 썩이라고. 지금 말 잘듣는 착한 딸 하면 나중에 억울하니까 드릅게 말 안들어 보라고 말이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다시 어린 아이가 된다고 한다. 나는 항상 성인이었을 것 같지만 살아온 날 중 많은 날들이 말 안되는 고집 부리고 이해력 떨어지는 어린 아이 시절이었을 것이다. 부모님은 그 시절을 사랑으로 품어주셨다. 역시나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힘든 것인지, 다 큰 자식들은 부모가 다시 어린아이가 되는 시간들을 몹시도 힘겨워한다.

솔직히 나는 두렵다. 부모님의 변해가는 모습들을 품어 드릴 수 있을지, 어떠한 순간에도 부모님을 사랑할 수 있을지.

마지막까지 부모님께 사랑을 드리는 자식이고 싶어, 요즘 노년에 관한, 늙음과 죽음에 관한 책을 자주 읽고 있다.


부모님의 노년을 함께 준비하는 마음으로.  노년의 부모님들을 이해하는 것을 넘어 부모님들이 즐길 수 있는 소일거리, 취미, 놀이들을 만들어 보고 싶다. 그래서 부모님의 행복한 황혼을 응원하고 도와드리고 싶다.



매거진의 이전글 책으로의 도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