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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Nov 03. 2020

친밀감이라 쓰고 무례라 읽는다

님아, 안전거리 유지 좀

얼마 전 한 예능프로에 대한 비판기사가 났고, 그 비판기사 아래에는 메인 진행자에 대한 악플이 달렸다.

비난 혹은 비판의 요지는 이러했다. 언젠가부터 프로그램의 본래 취지에서 벗어나 특정 출연자를 나머지 출연자가 공개디스하거나 출연조차 하지 않은 지인을 웃음거리로 만드는 자극적인 방법으로 시청자들의 흥미를 유발한다는  것이었다. 비난의 근저에는 인기프로그램에 대한 흠잡기와 블랙마케팅, 잘 나가고 있는 연예인에 대한 시기 질투가 없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프로그램과 출연자의 '선넘음'이 없었다면 체면과 양심이라는 이름으로 누루고 있던 사람들의 시기, 질투가 정당한 비판의 이름으로 세상밖으로 나오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타인을 웃음거리로 만들어 재미를 유발하는 것은 가장 쉽고 저급한 유머이다. 누구 하나 바보 만들어서 웃기는 일은 전문가가 아니라도 누구나 할 수 있다.  반대로 누구 하나 바보 만들지 않고 웃기려면 참신한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 내놓거나 아니면 타인이 아닌 자신을 웃음거리로 내놓는다. 그러니 누구 하나 웃음거리로 만들어 웃기는 일은 인성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웃음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들이라면 이는 능력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또 다른 관점에서 생각해 보면, 웃음을 만들어 내는 사람들은 저렇게라도 웃음을 만들어 내어야 할지 모른다.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매일 나올 수 없고 대중은 더 자극적인 것을 원하는데 아이디어도, 자기비하도 한계일지 모른다. 그렇다면 웃음을 만들어 낼 필요가 없는 내 주변의 그대들은 어찌하여 사람 하나 바보 만드는 것을 즐기는 것인가?


아주 평범한 직장의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 분위기 띄운다는 명목으로 누군가를 불편하게, 불쾌하게 만드는 일을 자처한다. 상대방이 허허 웃고 말면 그 사람 성격좋다고 말하며 바로 단골 소재 리스트에 올리고, 정색을 하는 이가 있으면 뭐 그런 걸로 예민하게 구냐며 오히려 앙심을 품는다. 단골 소재가 된 사람에 대해서는 강도를 점점 높이다 정색하면 그 때부터 알고보니 예민했다며 앙심을 품는다. 도대체 왜 그러냐고 물으면 친하니까라고 하는데, 님아, 저는 당신과 친할 생각이 조금도 없습니다.


문두에 말한 프로그램은 나도 즐겨보지만 비판기사와 동일한 이유로 나도 가끔씩 불편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더 불편한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그 모습이 사실은 일상에서 비일비재한데 많은 사람들이 바람직하지 못한 것을 아는데도 현실에서 전혀 개선이 이루어지지 않는 아이러니이다.  그러면서 또 불편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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