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이나 그렇게 지냈더니 특별히 우울하거나 속상하지도 않다. 이제 그러려니. 물론 어느 날 갑자기 무슨 포인트인지 이렇게는 못살겠다는 분노가 훅 하고 올라오는 날이 있다.
하지만 크리스마스인 오늘은 그날이 아닌지 아무렇지 않다. 오히려 아침부터 크리스마스란 핑계로 무슨 메뉴를 준비해볼까 설렌다.
거의 1년 만에 귀국한 친구가 드디어 자가격리기간이 끝났다고 연락이 왔다. 자유의 몸이 된 친구와 조촐한 홈파티를 하기로 했다. 크리스마스니까 유럽식 식사에 와인 한 잔 곁들이면 좋겠지. 친구는 마트에 들려 구이용 연어 한 팩, 자숙 문어 한 팩을 사왔다. 뭐 딱히 계획이 있어서가 아니라 대충 구워 먹자며.
오 맘이 통했다. 내가 연어 파피요트를 해 보려고, 나도 연어 한 팩을 샀지 하하. 이제 연어가 두 팩이네. 괜찮아. 어차피 3일 집콕 연휴인데 잘됐구먼. 문어는? 흠...파피요트와 문어숙회는 좀 아닌 것 같고 문어숙회는 주(酒)종도 바뀌는데 와인이랑 파피요트가 어울리는 문어는...아! 포르투갈식 문어요리 뽈보를 하면 되겠네.
만드는 법은 초간단이다. 종이호일을 깔고 가장 아래 양파와 감자, 그 위에 연어를 통으로 올리고 방울토마토, 레몬 슬라이스로 덮어준다. 레몬 슬라이스로 연어를 덮어주기 전에 연어는 소금&후추 간을 해준다. 그리고 올리브유를 두 스푼 정도 둘러주고 화이트와인을 넉넉히 둘러준다. 화이트와인은 새콤한 맛이 베이니까 기호에 맞게 양을 조절하면 된다. 연어가 기름기가 많고 자칫 냄새가 강할 수 있으니 개인적으로는 화이트와인의 새콤한 맛이 좋았지만 신맛이 싫은 사람들은 서너 스푼 정도면 괜찮을 듯하다.
토마토는 없으면 생략. 아스파라거스를 많이들 사용하던데 나는 없어서 생략. 야채는 기호에 맞게 넣어주면 될듯하다. 옆에 굴러다니던 귤 하나 같이 넣고, 자숙문어 한 다리도 같이 넣어줬다.
깔아준 종이호일과 같은 크기로 종이호일을 잘라서 덮어준다. 그리고 주머니가 되게끔 잘 말아 밀봉해준다. 이때 종이 호일이 찢어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예열된 에어프라이어에 190도로 30분. 200도로 설정해도 괜찮았을 것 같은데 각자의 에어프라이어 사양과 재료 양에 따라 조절이 필요하다. 아무튼 이게 끝.
조리법은 초간단, 비주얼은 최강이다.
그리고 뽈보는 더욱 초간단. 달궈진 펜에 올리브유를 충분히 두르고 통마늘, 토마토, 자숙문어를 굽다가 버터를 녹여 한번 코팅해주면 끝.
연어는 촉촉하고 문어는 부드럽다. 나가지 않아도 충분히 즐겁고 행복한 크리스마스다. 우아하게 와인 한 잔 하고 친구가 말했다.
- 우리 마무리는 라면 어때?
- 안 그래도 나도 라면 땡긴다. 기다려 봐.
파피요트와 뽈보가 맛없는 게 아니라 내 몸이 한국인의 매운맛을 찾는다. 나이 들었나 보다.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햄버거와 스파게티인 내 친구도.
매운 라면 한 개 끓여서 친구랑 나눠먹는데 바로 그 순간 어디 여행 온 착각이 들었다. 그 라면의 맛이, 언젠가 하루 종일 낯선 유럽의 골목골목을 돌아다니며 현지 맛집을 찾은 후 숙소로 돌아와 컵라면으로 하루 마무리를 하며 행복에 젖었던 그 순간을 소환했다. 그러니까 프랑스 가정식이라는 파피요트와 포르투갈 요리 뽈보가 아니라, 파피요트&뽈보 후의 라면 국물이, 그렇게 행복했던 기억을 소환했다. 예상치 못한 팝업창에 아주 조금 더 행복해진 크리스마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