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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푸른국화 Feb 08. 2021

나는 살고 싶은 대로 살고 있습니다만

+2,  -1 다음엔 +4, -2

아홉 개 가진 사람이 열 개 채우려 하나 가진 사람의 것을 탐낸다고 한다.

그런데 내 주변 사람들은 천사인 것인지, 아니면 90개를 가진 사람일까,

내가 하나 포기하고 아홉 개를 지키면 그 하나 포기한 거 쫓아가라고 그렇게 채찍질을 한다.

저기, 저는 지금 행복합니다만. 가끔 투덜거리죠. 아니 자주 투덜거립니다. 하지만 투덜거리면서도 이직하지 않는 것은 버틸만 하다는 뜻입니다. 버틸 수 없으면 조용히 자리를 옮기겠죠. 늘 그래왔듯이.


첫 직장은 법무법인에서 인턴이었다. 친구들은 나한테 멋있다고 했다.내가 무슨 일을 하는 줄 알고?

친척들 중엔 괜히 다른 사람들 앞에서 전화해 보는 사람도 있었다. 거기 사무실이 어디라고 했지? 아, 삼성역이랬지. 이야, 좋은데구나.

하지만 나는 주말에 사무실에 불려가느라 할머니와 허무하게 이별했다. 어쩐지 그 날 기분이 이상했다. 왠지 그주 주말엔 만사 제쳐놓고 할머니를 뵈러 가야할 것만 같았다. 주말에 가겠다고 전화를 하고 금요일 저녁에 퇴근을 했는데 금요일 밤 열시에 선배 변호사한테서 전화가 왔다. 판례 리서치가 필요한데, 토요일에 출근하냐 일요일에 출근하냐 물어본다. 지금은 모르겠지만 그 때는 토, 일 중에 하루 출근은 당연하고 이틀 다 출근하는 주도 있기도 하였다. 어쩔 수 없네, 할머니는 다음주에 뵈어야 겠네. 거짓말 같지만 그 다음주가 되기 전에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거짓말 같겠지만 진짜다. 누군가 가까운 사람을 잃을 때 나도 모르는 직감이란 게 있다고 하더니, 그 때 그 말을 믿지 않았는데, 실제로 그랬다. 왠지 이상한 기분. 그 기분을 믿었어야 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 회사 체육대회를 마치고 아빠를 만나 할머니 추모공원에 가기로 했다. 체육대회는 아침 일찍 시작해서 점심때쯤 끝날 예정이었다. 8시였나, 9시였나....체육대회 장소에 도착했더니 다들 빈 속에 막걸리를 마시고 있었다. 빈 속일테니까 배부르게 막걸리부터 마시라고 했다. 다른 회사는 모르겠지만 법무법인에서, 저는 술을 못마십니다라는 말은 할 수 없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그때는 첫 사회생활이었고, 회사 분위기도 그러했다. 눈이 벌건 채 인사불성이 되어있는 딸을 본 아빠는 당장 회사를 그만두라 하셨다. 회사가 거기 뿐이냐고. 회사가 거기뿐인 건 아니지만 마음에 안든다고 뒷 일 생각치 않고 때려칠 수는 없지요. 그렇잖아요.


두번째 직장은 한 동안 유행했던 신(god) 시리즈 직장이었다. 신의 직장, 신이 숨겨놓은 직장,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 뭐 그렇게 불리던 직장 중에 하나였다. 그런데 누구는 신의 직장이라 하고 누구는 신이 숨겨놓은 직장이라고 하고, 다들 다르게 부르니 정확히 뭔지는 모르겠다. 이직을 했다고 하니 어떤 사람은 왜, 어떤 사람은 잘했네, 어떤 사람은 오~ 신의 직장, 근데 뭐 하는 회사냐, 어떤 사람은 법무법인 좀더 있지, 어떤 사람은 부럽다, 어떤 사람은 편하겠네, 어떤 사람은 거기서 뭐하게, 어떤 사람은 돈 많이 받겠네....참 다양하다. 그리고 아빠는 몹시 마음에 안들어 하고 엄마는 몹시 기뻐서 여기저기 자랑을 했다. 그나마 나를 가장 많이 생각하는 우리 아빠와 엄마 마음도 이렇게 갈리니, 다른 사람 마음이야, 어차피 내가 다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 마디씩 얹는 말은 듣기 편하지 않다.

출근했더니, 변호사 뽑는다고 해서 지원한

 그 회사 사람들이 하는 말이, 변호사가 여기 뭐하러 왔냐고 한다. 어떤 사람은 좋은 회사니까 나갈 생각 말고 오래오래 다니라고 하고, 어떤 사람은 변호사면서 돈 더 많이 주는데 가지 뭐하러 여기 왔냐고 한다. 그런데 첫인상은 약과였다. 그날 이후, 책임 질 일 있을 때는 변호사, 필요할 땐 막내였다. 그리고 꼭 한마디씩 붙인다. 변호사가 여기서 뭐하러 이러고 있냐고. 그런 말을 들으며 5년 6개월을 버텼다. 후회는 없다.


나는 매번 생각을 하고 선택을 했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현직장의 부정적인 요소만 콕콕 찍는다. 정말 이해가 안되는건 대한민국에서 상위 몇프로 안에 드는 회사를 다니는데도 그런다는 것이다. 타이밍을 놓쳐서 답답하다. 그럼 나는 어디를 다녀야하는거냐고 묻고 싶은데. 거기 계속 있을거야, 니가 아까워서 했을 때 받아쳤어야 했다. 어디라고 하는지 보게. 거기가 어딘지 궁금하거든. 지금 물으면 싸우자는거잖아. 난 진짜 궁금해서 묻는건데.


 법무법인에 들어갈 때는 불안정한 포지션과 3D 근로조건에도 불구하고, 유능한 사람들 밑에서 다양한 업무를 해볼 수 있다는 데서 첫출발로 좋은 직장이었다. 계약기간이 끝나기 전 확정된 다른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계약기간 만료 후가 불안정한 그 회사에서 계약기간을 채웠다. 어쩌면 다시는 법무법인에서 일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법무법인에서 배울 수 있는 모든 업무는 여기서 다 해 봐야한다. 그리고 어디로 이직하든 법무법인에서 버틴 경력은 내게 자신감이 될 것이다.


나의 두번 째 회사, god 시리즈 회사에 지원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전문분야, 조직생활, 시스템이 갖춰진 회사. 어떤 분야에 특화되어 있는가는 결국 어느 회사에서 일했는가로 결정된다. 그리고 법무법인, 법률사무소 전부 통틀어 우리가 로펌이라고 부르는 회사는 변호사라는 전문 고급인력으로 구성된 회사지만, 조직과 시스템면에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오랜시간 유지되어 온 규모 큰 기업은 연공서열로 조직의 질서가 유지되고, 누구 하나 빠져도 돌아가는데 문제 없도록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연공서열이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조직생활을 하면 사람이 다듬어진다. 사회생활에서 필요한 기본적인 매너와 눈치를 배우게된다. 당연히 좋은 조직일때 말이다. 다행히 전직장은 완벽하진 않아도 꽤 괜찮은 직장이었다. 시스템도 어느 정도 갖춰진 회사였다. 아니, 다닐땐 부족하다 비판했지만 돌아보면 대한민국 상위 1퍼센트 시스템을 갖춘 회사였다.

그런데 왜 퇴사했냐고? 그렇게 계속 다니다간 절대로 이직도 독립도 못할것 같아서. 정년까지 그 회사를 다니는 것 외에 다른 길은 선택할 수 없을 것 같아 하루라도 일찍 나왔다. 하지만 나올때도 쉬운 건 아니었다. 전직장의 조건과 비교하여 오직 플러스만 있고 마이너스가 없는 직장은 감히 지구상에 없다. 그러니 신이 어쩌구저쩌구하는 회사라 불리겠지. 연봉이든 업무량이든 조직문화든 뭐하나 마이너스를 감수해야 다른 곳으로 갈 수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어느정도 체급에서 이직이란 이럴 수밖에 없다. 플러스, 플러스로만 이직을 한다? 그게 가능하다면 슬프게도 첫직장을 잘못 선택했다는 뜻이겠지.

아무튼 내가 감수할수 있는 마이너스를 내주고 플러스를 취했다. 그래서 지금의 직장은 어찌되었든 플러스다.


그런데도 엄마는 지금의 직장을 무지하게 싫어한다. 아마도 가끔 내가 열폭하는 이유와 같겠지. 엄마에겐 그것이 결정적인 이유니까 그러실테지. 하지만 내겐 오늘 한잔 해보자는 핑계거리, 그래서 맥주 500 마시고 나면 쭉 내려가는 그 정도 문제일 뿐이다. 사실 아빠는 전직장을 싫어했었지. 차라리 지금 직장을 낫다 하고.

이렇게 내 생각해주는 유일한 두사람도 마음이 맞지 않다. 그러니 내가 이직할 때마다 이러쿵 저러쿵하는 말들은 그냥 흘려버려야 하는 걸 알지만, 솔직히 기분 안좋다. 좋을 리가 없다.

너 그 대학 다닐거야, 아니 니가 아까워서...

너 그 남자 만날거야, 아니 니가 아까워서...

뭐 이런 말 듣는 기분이다 하면 이해가 되시려나.


순전히 내 감정 쏟아내는 이 두서 없는 글을 읽어주신 분들께 너무나 감사하고 죄송해서, 오직 내 한풀이 글로 시작한 이 글에 조금이나마 공익을 더해 마무리 하고자 한다. 그러니까 당신의 선택이 당신의 앞날에 어떤 한 요소를 -1 했다하여 당신의 미래 총합이 -1인 것은 아니다. 다른 요소의 +2 때문에 당신은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이다. -1을 지적하는 사람들에게 +2를 설명할 필요없다. 다음번엔 +4, -2해서 +2가 되고 그 다음엔 +6, -3해서 +3이 되겠지. 남에 시선 따윈 신경쓸 필요없다고 하지만 솔직히 나의 선택에 대놓고 부정적인 의견을 내놓는데 기분 나쁜게 당연하지. 그 기분 때문에 평생에 +2, +4, +6을 놓치지 말라고, 오늘도 -1을 선택한 당신의 그 선택 뒤에 +2가 있음을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는 알고 있으니 오직 나 자신을 믿고 나아가라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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