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럽지만 장래희망이 작가입니다. 제대로 문학을 배워본 적은 없지만 언젠가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소설을 쓰겠다는 꿈 한자락을 포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혼자 끄적끄적 글 쓰는 걸 좋아하지만 아직 창작을 할 만한 실력은 못됩니다. 다만 데이먼 나이트라는 소설공모전의 대가가 말씀하시길, 소설가라는 꿈을 이루기 위해서는 3단계를 거쳐야 하는데, 1단계가 혼자쓰는 단계, 2단계가 쓴 걸 주변사람들한테 보여주는 단계, 그리고 3단계가 공모전 당선이라고 합니다. 비록 생애 첫 소설공모에서 떨어진 것 같지만(당선작 발표일이 며칠 지났는데 아무 연락이 없으니 아마 떨어진거겠죠ㅠㅠ), 그래서 부끄럽고 속상하긴 하지만 3단계에서의 좌절이라기 보다는 1단계에서 벗어나 이제 2단계라도 되어 보고자 브런치에 공개합니다.
주어진 분량과 주어진 시간 안에 맞춰 글을 써보는 것은 저에게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제일 힘들었던 것은 주어진 분량에 맞춰 글을 줄여나가는 것과 감정을 덜어내는 과정이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 국어선생님이 감정을 전부 담으면 글이 촌스러워진다고 하셨던 말씀을 이번에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탄생한 저의 첫 공모용 단편소설 <고슴도치 속마음>입니다. 언젠가는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진짜 작가가 되고 싶습니다.
<고슴도치 속마음>
곧 탑승수속을 마감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오고 있는데 도무지 발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마도 엄마는 마음이 많이 상했겠지. 솔직히 내잘못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엄마에게 사과를 하지 못했다.
한 달 전, 그날은 아침부터 몹시 힘들 날이었다. 남의 부서 신규업무를 이사회에서 설명하고, 문제없이 통과시켜야 했다. 대체 내가 왜 그래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직을 걸고 읍소를 했다. 오전에 그 야단을 치고 났더니 명치가 콱 막혀서 점심도 못 먹었는데, 오후 늦게 그 남의 부서 대리가 찾아왔다.
‘법무팀’에서 ‘도와 준’ 덕분에 일이 잘 끝나서, 그 부서 부장님이 티타임 초대하신다는 말을 전한다. 팀장님은 갑자기 회의가 있다며 자리를 뜨시고, 다른 팀원들도 곧 재판 가봐야 해서, 곧 보고가 있어서, 부장님께 말씀 좀 잘 전해 주시고, 어차피 고생한 건 우리 김 변호사잖아, 김 변호사만 대표로 가면 되지라며 선수를 친다. 진짜로 재판 때문에 곧 나가봐야 하는 건 나인데도,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너만 믿는다는 눈빛을 보내니 어쩔 수 없다. 그 부서 사람들과 티타임이라니. 오전 이사회 보고가 차라리 편한 업무였다는 생각이 든다. 내 명치는 막히다 못해 터질지도 모르겠다.
“다른 분들은 일이 있으시대요.”
“뭐가 그리 바빠? 차 한 잔 할 시간도 없대?”
“그럼 김 변호사가 제일 한가해서 온 거야? 하하하!”
하여간에 말을 해도 꼭. 딴에는 농담이라고 하겠지만 재미도 없고 기분만 나쁘다. 역시 이 티타임 시작부터 쉽지 않다.
“근데...김 변호사는 몇 살이야? 아직 결혼은 안 했지?”
또 시작이다. 이 회사에서 여자는 두 종류다. 결혼을 한 여자와 못한 여자. 그리고 결혼을 한 여자도 두 종류다. 애가 있는 여자와 애가 없는 여자. 어쩌면 이 이야기가 필요해서 부른 건지도 모르겠다. 간식에도 안주가 필요한 그들이니까.
내 이름이나 제대로 알면서 나이를 묻는 걸까? 누구는 저기, 누구는 김 변, 누구는 마지못해 변호사님, 누구는 심지어 지숙 씨라고도 불렀다. 물론 내 이름은 지숙이가 아니다. 하지만 지숙 씨라 부르면 네 하고 만다.
“네.... 서른여섯이에요.”
“서른여섯이야? 아 난 또 서른이나 되었을까 했더니...이야 동안이네.”
“이 팀장, 뭐했어? 우리 김변 남자 소개도 안 시켜주고.”
“어휴, 내가 김변 눈에 찰 만한 사람을 알겠어? 아 맞네, 외국계 기업 어때? 사진이 있었는데, 어디 보자....응, 여기 이 친구 잘 생겼지? 머리가 좀 빠졌는데, 나이는 뭐, 안 따지잖아.”
아, 싫다. 너무너무 싫다.
“저도요, 저도 볼래요. 저도 소개시켜 주세요.”
아까 우리팀에 자기 부장님 말씀을 전하러 왔던 그 대리였다.
“아니, 최대리, 유부녀가 무슨 소리야? 뭐, 남편이랑 안 좋아?”
“아니, 저 말고. 엄마 친구가 딸이 시집을 못 가서 걱정이라고, 괜찮은 남자 없냐고 걱정을 해서요.”
“몇 살인데? 이뻐? 뭐하는 사람인데?”
“서른아홉인가.... 서울대 교수래요.”
모인 사람들은 난리가 났다.
“서울대 교수라고? 서울대 교수래.”
“그래도 얼굴이 좀 되어야 소개를 시켜주지, 사진 없어?”
“사진은 없는데, 아, 대학교 홈페이지 들어가 보면 있을 거예요.”
“그래? 찾아봐, 찾아봐.”
그렇게 그들은 뜬금없이 한 컴퓨터에 옹기종기 모여서 서울대학교 홈페이지에서 모교수의 사진을 찾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이렇게 빠릿빠릿한 사람들이었나?
“이름이 뭔데?”
“이름이.... 뭐였더라... 엄마한테 들었었는데.... ”
“이 사람이야?
“맞나? 아닌 것 같은데.....”
“그럼 이 사람이야?”
“잠시만요...맞는 것도 같고... 아, 아니에요...아, 여기 이 사람 같아요. 맞네, 이 이름인 것 같아요.”
“찾았어, 찾았어? 맞아, 맞아? 어디, 어디?”
아주 잠시 정적이 흐른 뒤로 한 사람씩 품평이 이어진다. 못 생기진 않았네...그럼 이쁘냐....왜 이 정도면 괜찮지, 서울대 교수라는데......야, 서울대 교수면 뭐할거야, 그래봤자 낼모레 마흔에, 어휴 세 보여.....내가 총각이면 절대 저런 여자랑 결혼 안 한다, 생각만 해도 숨 막힌다.....
나는 여러분과 같은 회사에 다닌다는 사실에 숨이 막힙니다. 업무시간에 어느 직원의 엄마 친구의 딸 결혼까지 걱정해 주는, 이런 박애적인 사람들과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네요, 제가.
그 여자. 꽤 젊은 나이에 서울대 정교수에 임명되었다는, 그 여자는 오늘 본인이 한 번 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그저 나이 많고 성격도 별로일 것 같은, 신부감으로는 하 등급 판정을 받았다. 나야 그들과 같은 회사를 다니는 게 죄라지만 그 여자는 어쩌다. 그 여자의 엄마는 왜 최대리의 엄마에게 딸 남편감을 부탁해서는.
잘 먹었다며, 저까지 불러주셔서 감사하다고 돌아서는 등 뒤가 따가웠다. 그들은 여전히 자리를 파하지 않았다. 내가 잠시 등장했다 먼저 자리를 피해주니 아주 신났을 것이다.
서른여섯살이라고. 어휴, 지금까지 뭐했대. 학교는 어디랬지? 심지어 서울대야? 서울대 나와서 변호사라니 나중에 남편한테도 따박따박 옳은 말 하겠네. 딱 봐도 성깔 있어 보이잖아. 어휴, 저런 마누라를 어떻게 데리고 살아. 쉽지 않겠어. 어쩌냐. 부모가 걱정이 많겠네. 나중에 우리 딸도 저러면 어쩌냐. 공부 잘해봤자 소용도 없어.
그렇게 오전엔 업무에 지치고, 오후엔 사람에 더 지쳐서 퇴근한 바로 그 날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전화를 받으니 엄마는 들떠서 인사도 잊은 채 본론부터 쏟아냈다.
“이모가 선자리 있다더라, 나이는 한 살 많고, 목포라든가, 검사래, 학교는 서울에서 나왔고, 연대라든가, 집은 서울이라, 이번 주말에 서울 간다던데, 한 번 만나볼래?”
나는 끼어들 사이도 없이 엄마 혼자 할 말을 했다. 엄마의 신난 표정이 전화기 넘어로 보이는 것 같았다. 엄마가 신나서 읊어주는 정보를 듣다 보니 나는 아까 그 최대리의 엄마 친구 딸이라는 그 여자가 떠올렸다. 화가 나고 창피한데, 내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신난 엄마에게 울컥했다.
“엄마 왜 쓸데없는 짓은 하고 그래? 됐어, 끊어!”
화가 나서 식식거리다, 분해서 눈물이 차 올랐다. 그렇게 전화를 끊은 후로 한 달 동안 엄마에게 연락 한 번 하지 않았다. 그건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엄마와 화해를 하지 못한 채 엄마의 집으로 향하고 있는 설연휴 前夜. 탑승 마감 직전에서야 겨우 탑승구를 통과했다.
김포공항에서 비행기가 이륙한 지 40분도 안되어 김해공항에 도착했다.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고 시계를 보니 아직 채 열시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공항을 나와서 택시를 타고 엄마 집에 도착했더니 밤 열한시가 훌쩍 넘었다. 먼 곳은 서울과 부산 사이가 아니었나 보다.
엄마는 거실 소파에 기대어 티브이를 보며 애써 졸음을 참고 있었다. 엄마에게 인사를 하러 다가갔다. 걱정한 것과 달리 엄마는 딱히 한 달 전 일을 마음에 두고 있지 않았다. 작게 쪼그라든 엄마의 모습에 가슴이 뭉클하다. 환갑을 넘긴 나이에 명절상을 차릴 엄마가 측은하고, 저 작은 몸으로 혼자 종종거리며 장을 봤을텐데 얼마나 힘이 부치고 처량했을까 마음이 아프다.
며느리를 봤으면 나도 마음의 짐을 벗을 텐데. 엄마에 대한 측은함은 동생에 대한 원망으로 바뀌었다.
아니, 그러고 보니 지가 장손인데, 지는 뭐하고 나만 골병이지? 갑자기 억울하고 화가 나서 닫힌 방문을 한참을 쏘아봤다. 동생은 오늘 같은 날까지 집으로 일을 싸들고 와서 유난을 떤다. 자리 잡았으면 착한 여자 만나서 결혼이나 할 일이지. 참, 부질없는 짓을 한다.
유난을 떨고 부질없다.... 내가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을 속으로 뱉고 있는 나 자신에 놀랐다.
하지만 사실이지. 부질없는데 무슨 유난일까. 그렇게 심통을 부리며 잠자리에 들었다.
괜히 심통을 부리느라 간밤에 제대로 잠들지 못하고 한참 뒤척였다. 아침이 다 되어서야 깜빡 잠이 들었나본데, 눈을 떴더니 이미 기름 냄새가 집안에 진동을 하고 있었다. 부엌으로 나가보니 아야야를 내뱉으며 쭈그리고 앉아 전을 부치고 있는 엄마 옆으로 노릇하게 굽힌 전이 세 바구니였고, 식탁 위에는 도라지며 시금치며 가지런히 다듬어져 있었다.
“이걸 엄마 혼자 다 했어? 깨우지 그랬어....,”
“이거 얼마 된다고. 와서 먹고 싶은 것 좀 담아. 엄마가 챙겨줄 손이 없어.....새우 방금 튀겼다. 식으면 맛 없으니까 따끈할 때 먹어....국산 새우를 튀겼더니 얼마나 맛있는지, 아주 달다, 달아.”
엄마는 잠시 허리를 젖혔다가 주먹으로 통통 두드리며, 다시 부치고 있던 전을 향해 몸을 숙인다. 그런 엄마 모습에 마음이 아프고 이유 모를 죄책감이 가슴을 누른다.
화장실에서 나와 손으로 전 하나 집어먹고는 지 방으로 쏙 들어가는 동생을 보니 또 화가 난다. 그런데 슬쩍 흘겨보는 표정을 보니, 동생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말은 안 하지만 엄마 혼자 고생하는데 이제야 일어났냐는 뜻이겠지. 그럼 니가 좀 돕지, 왜 내가 딸이라, 아님 맏이라? 세상이 어느 때인데 아직 부엌일은 딸 찾고, 지는 서른이 넘어도 마냥 동생이냐...
“형주는 무슨 일을 집에까지 가지고 와서 한대....그것도 명절에....”.
“그러게 말이다... 저렇게 밤낮없이 일을 한다냐... 몸도 성치 않은데... 젊으니 한창 일 욕심 부릴 나이지만... 내가 하루하루 불안하다. 몸도 성치 않은 놈이....
“만나는 여자는 없대? 결혼은 안 한대?”
“안 그래도 내가 아주 속이 상해 죽겄다. 너네는 둘 다 왜 그런다냐?”
“나는 결혼 안 할 거니까 형주나 만나는 여자 있으면 나 기다리지 말고 먼저 가라 그래.”
“아이가, 까분다. 그런 소리 할 거면 다신 집에 오지 마라.”
결혼하라는 말은 마치 담배를 끊으라는 말처럼 들린다. 애연가들이 비흡연자들에게 담배 끊으라는 말을 들을 때 이런 기분이지 않을까. 나는 담배를 피워본 적이 없어서 담배의 가치를 비혼의 가치만큼 생각치 않지만, 그럼에도 나는 흡연자에게 담배 끊으라는 말을 한 적이 없다. 심지어 그들이 담배를 피우지 않는 내 머리카락에 담배 냄새를 베이게 하고, 새로 산 비싼 코트에 담배재를 떨어뜨려 구멍이 나게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누구에게도 담배 끊으라는 말을 해 본 적이 없다.
"아이고, 그만 먹어라. 새우가 콜레스테롤이 얼마나 높은데...그거 많이 먹어서 좋을 게 뭐 있다고......맛만 보라니까!"
나도 모르게 벌써 네 개째 집어 먹고 있었다. 그렇지, 새우가 콜레스테롤도 높은데다 밀가루 입혀 기름에 튀겼으니 안 먹는 게 좋겠지. 하지만 새우는 칼슘과 키토산 함량이 높아서 튀겨서라도 먹는 게 골다공증 예방에는 도움이 된다잖아. 무엇보다도, 언제 닥칠지, 닥치기나 할 지도 모르는 고혈압, 뇌졸증을 막으려고 지금부터 새우튀김을 포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엄마도 말은 새우튀김 몸에 안 좋은데, 나물을 먹어야지라고 하면서 매 번 새우튀김을 제일 많이 하는 것이겠지.
그렇더라도 많이 먹었더니 속이 더부룩해졌다. 기름진 속을 잠재우려 식혜 한 모금 넘기는데, 집에서 만들어서 그런지 편의점에서 파는 식혜와 달리 단 맛이 하나도 없다. 오히려 속은 더 편안히 내려가는 기분이다. 식혜를 한 국자 더 뜨면서 나는 문득 조카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엄마.....”
“왜?”
“난 말이지, 조카가 있었으면 좋겠어. 형주가 착한 여자랑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았으면 좋겠어.”
엄마는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
“아이고, 네, 형주도 그럽디다. 조카가 있으면 참 잘해줄 거라고. 그러면서 저는 안 하지. 어쩜 둘 다 그리 이기적이냐, 내가 속이 터진다.”
우습다. 나는 사실 결혼을 안 하고 있는 동생과 한 편일까, 결혼을 안 하는 자식 때문에 애가 타는 엄마와 한 편인 것일까? 삐죽한 내 속마음은 나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