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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좀하는 엄마 Mar 18. 2021

저는 자연주의 출산을 하고 싶었습니다.

자연주의 출산 준비기

흔히 자연주의 출산이라고 하면 출산을 하긴 하는데 이벤트로 거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연예인들이 주로 해서 매스컴을 탄 영향인지 자연주의 출산은 특별한 사람만 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첫째를 임신한 당시, 자연주의 출산을 준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면 주변에서 “그게 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 그만큼 생소한 출산방법이었다.    

  

출산을 위해서는 어느 정도 준비를 해야 할까. (출처 : pexels)


내가 자연주의 출산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출산’에 관한 경험담과 공유가 내게는 너무 폭력적으로 다가왔고 그러한 이야기들이 내게 공포를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내 아기를 처음 만나는 순간에 나는 공포에 질려 있고, 그리고 그 과정이 너무 힘들어서 그 기억밖에 없다면 나는 너무 슬플 것 같았다. 뱃속에서 열 달 동안 아이를 품고 있다가 아기를 처음 마주 대하면서 ‘힘들다’밖에 생각나지 않는다면 그 기나긴 여정이 너무 안타까울 것만 같았다.   

   

그런 생각 끝에 출산에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모든 출산은 이런 것일까. 엄마들은 모두 이런 고통 속에서 아기를 낳고 그들과 대면하는 것일까. 나는 모두는 아닐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나처럼 아기를 처음 대할 때 좋은 기분으로 아기를 제대로 마주하고자 하는 엄마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찾아낸 것이 바로 자연주의 출산이었다.    


자연주의 출산은 ‘의료 개입을 최소화하고 엄마와 아기를 기다려주고 엄마와 아기가 주체가 되는 출산’이다. (출처 : 두려움 없는 출산, 그랜들리 딕리드지음) 매스컴에 보이는 것처럼 수중 분만 혹은 특별한 분만 방식을 선택해서 출산을 하는 일종의 이벤트성 출산이 아니다.   

   

자연주의 출산의 뜻에서 이야기했듯이 ‘자연주의’에는 여러 조건이 함축되어 있다. 일단 의료 개입을 최소화한다. 의료 개입을 최소화한다는 것은 의료진이 없는 상태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의료진이 없는 상태에서 조산사의 도움만으로 출산을 하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자연주의 출산은 의료진이 지켜보는 상황에서 출산을 하는 것이었다. 

    

흔히 우리나라 산부인과에서 보통 자연 분만을 하면 제모, 관장, 회음부 절개 여기에 무통 주사를 권하게 된다. 하지만 자연주의 출산을 하게 되면 이러한 과정을 본인이 선택할 수 있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아도 되고 이 중에 필요한 한 두 가지를 선택할 수도 있다. 의료진은 산모나 아이가 위험하지 않으면 특별한 지시를 하지 않는다. 시간이 지체된다고 재촉하거나 제왕절개 수술을 권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한 이 출산은 엄마와 아기가 주체가 되는 출산이다. 엄마는 충분히 아기를 기다려주고 아기는 자신의 페이스 혹은 시간에 따라 자궁에서 좁은 산도를 통과하여 세상으로 나오게 된다. 아기가 새로운 환경에 노출됐을 때 받을 수 있는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아기를 맞이한다.

     

출산은 엄마의 감정이나 준비가 중요하다. 엄마가 너무 감정적으로 힘들어하거나 겁에 질려 있으면 아기가 그 감정을 같이 공유하기 때문에 아기 또한 감정적으로 힘들 수 있다. 그래서 자연주의 출산은 엄마가 아기와 협력하여 출산을 가장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내고자 노력하게 된다.      


나는 첫째를 위해서 이 출산 방법을 택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실행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보았다. 사실 자연주의 출산을 표방하는 병원은 여럿이 있었으나 제대로 실행하고 있는 병원은 별반 없었다. 그리고 자연주의 출산을 하기 위해서는 출산에 관한 병원비 외에도 ‘자연주의 출산’을 위한 추가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비용이 더 드는 출산인 셈이다.   

   

그리고 이 출산은 무엇보다도 남편의 협조가 절대적이었다. 남편이 출산의 효율성만 따진다거나 이러한 출산 방법을 번거로워한다면 이 출산은 애초에 실행하기가 어렵다. 이 출산을 위해서는 남편과 같이 운동도 해야 하고, 출산에 관해 적극적이고 능동적인 목소리를 내는 아내 옆에서 남편이 늘 힘을 보태줘야 한다. 그리고 일반 병실이 아닌, 가족실에서 분만하기 때문에 남편이 옆에서 출산의 모든 과정을 함께 해줘야 한다.  

    

병원에 가서 자연주의 출산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히면, 임신 과정부터 출산 과정까지 함께 해 줄 전담 의료진을 한 명 붙여준다. 흔히 조산사 자격을 갖춘 간호사인 경우가 많은데, 나 또한 그랬다. 

     

그분과 많은 부분을 상의하고 모르는 게 있으면 물어보면서 이 출산을 준비했다. 자연주의 출산을 위해서는 음식 조절은 물론 상당한 운동을 해야 한다. 흔히 임신하면 많이 먹고 잘 먹고 무리한 일은 하지 말라고 권하지만, 이 출산을 준비하면 음식은 건강하게 먹어야 하고 살도 일정 몸무게 이상은 찌면 안 된다. 그래서 식단 관리가 필요하다.      


또 아기를 잘 맞이하기 위해서 하루에 2시간 이상의 운동을 해야 하고(주로 걷기나 짐볼, 요가 위주로 운동을 한다.) 아기와의 대화 시간도 많이 가지려고 노력해야 한다. 엄마가 이런 출산을 준비하고 있고 너와 함께 잘 해내기를 바란다고 격려하며 서로에게 힘을 주는 것이다.  

    

사실, 나는 아기와 소통하고 교감하는 이 부분이 가장 좋았다. 하루에 1시간에서 2시간 이상 걸으면서 내가 아기를 무척 기다리고 있으며 너를 만날 날을 기쁘게 준비하고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내게 큰 기쁨이었다. 학습된 출산의 고통이나 두려움을 없애는 데도 효과적이었다.

좋은 노래도 같이 듣고 좋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서 뱃속의 아기와 함께 있는 시간을 충분히 즐길 수가 있었다.   

   

그리고 지정 의료인과 함께 내가 출산을 할 가족분만실에서 운동도 하고 회음부나 다리 마사지도 하면서 출산 준비를 차근차근 진행해 나갔다. 가족분만실은 적당한 빛과 적당한 따뜻함이 있었고 잔잔한 음악도 흘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남편과 함께 가족 분만실에 있었는데 남편과 같이 아기 이야기도 하면서 차분히 출산을 준비할 수 있었다. 백색 현광등이 가득해서 눈이 부시고 의료진들이 부산스럽게 움직이던 일반 분만실과는 완전히 다른 분위기였다.  

    

이렇게 입덧이 끝난 임신 중기부터 임신을 건강하게 준비할 수 있었고 출산까지 별다른 어려움이나 산모나 아기의 건강 문제 없이 차근차근 자연주의 출산 과정을 준비할 수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았다. 자연주의 출산을 위해 열심을 냈지만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양수가 점점 줄어들었고 나는 아기가 위험해질 수 있다는 말에 유도분만을 하게 되었다. 유도분만은 1박 2일 동안 내가 출산을 준비했던 가족분만실에서 진행되었지만, 아기는 산도를 통과하지 못했고 나는 결국에는 제왕절개를 하게 되었다. 

     

안타깝게도 내가 하고자 했던 자연주의 출산을 하지는 못했지만 나는 이를 준비하는 과정이 참 좋았다. 임신과 출산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고 ‘출산은 고통이고 공포다.’는 학습된 잘못된 출산 교육에서 어느 정도 자유로울 수 있었다.   

  

현재 ‘자연주의 출산’은 우리나라에서 정착 과정에 있는 것 같다. 나와 같은 마음을 품고 이 출산에 도전했다가 의료진들의 가치관 때문에 상처 입은 분들도 보았다. 또한 말은 자연주의 출산을 표방한다고 해놓고는 결국에는 똑같이 기존의 방식으로 출산을 진행하는 병원도 있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딸에게 혹은 주변 산모들에게 자연주의 출산이 있다는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그리고 이러한 출산을 준비하는 과정이 나름 매우 행복했었다는 말을 하고 싶다. 

     

엄마에게는 출산전까지 열 달의 시간이 주어진다.(출처 : pexels)

엄마들에게는 아기와 함께 보내는 열 달이라는 시간이 모두에게 주어진다. 그리고 드디어 아기의 얼굴을 보면서 기다리던 아기와 대면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개개인의 사정이 다르고 임신을 했을 때 나타나는 증상이 다르겠지만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는 전적으로 엄마의 선택에 달려 있다.  

    

그리고 그러한 엄마의 선택에 따라서 아기가 엄마 뱃속에서 지내는 시간과 감정도 달라질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아기를 뱃속에 품은 엄마들이 출산에 고통에만 매여 있지 말고 아기와 협력하여 아기와의 첫만남인 출산을 보다 행복하게 즐겁게 만들기를 희망한다.  

    

경험해 보지도 않은 출산의 고통과 공포를 미리 학습하지 말고 나와 아기만의 출산을 준비해보는 게 더 현명한 방법일 것 같다. 모두의 출산이 힘들 필요는 없지 않을까. 그리고 그렇게 힘든 출산을 무의식적으로 그냥 받아들일 필요도 없다. 다시 말하지만 출산은 아기와 나와의 첫 만남이다. 이러한 첫 만남을 힘들어 죽을 뻔했다는 기억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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